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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Sep 21. 2023

관제엽서, 노출된 내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숨은 내면

(이미지출처:STAMP INSIDE) 우편번호 6자리 시절입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 특히 고등학교 다니던 어린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 하나 낀 채로 오후 10시에 방송하는 음악 방송을 듣는 일은 거의 모든 친구의 공통적인 routine이었습니다. 이종환, 황인용이라는 유명한 두 DJ의 양 갈래 파벌도 재미였지만 아쉽게도 지방에 사는 우리는 그 두 사람의 방송을 들을 수는 없었고 대신 지역방송에서 같은 이름으로 송출하는 자체 제작 프로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아쉬움을 대신하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많이 애용하는 방법은 직접 엽서 사연을 보낸다든지 정말이지 어쩌다 한 번 전화로 참여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형편상 전화는 언감생심일 뿐 엽서 참여가 대세였습니다. 정성을 다해 사연을 적고 보내면 그 내용이 언제나 나오나?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DJ의 목소리로 내 사연이 소개되기라도 하면 세상 다 얻은 듯 기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행여 누락이라도 되면 그날 이후 잠시 잠깐 다른 프로로 넘어가는 소심한 복수를 감행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친숙한 단어가 다름 아닌 ‘관제엽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이 단어가 무슨 뜻이냐 물으면 즉각 답변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듣고 나면 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지요. 한자로는 官製葉書입니다. 정부(官)에서 발행한(製) 일정한 규격의 우편엽서(葉書)라는 뜻으로 그 가격에는 이미 우표가 포함되어 있어서 바로 우체통에 집어넣으면 배달되는 편리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규격은 시중에서 팔리는 엽서 크기의 기준이 되었고 미세하게 차이는 있지만 대략 시중에서 유통되는 엽서 크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실 엽서의 특성상 간편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내용을 적어 보낼 수는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정보 노출이라든지 남들에게 노출하기가 어려운 내용을 담을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 달콤한 내용을 나누기에는 결코 적절한 방편은 아닙니다. 그냥 라디오의 사연 정도에 적당한 정도였을 것입니다.     


문득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 친구가 나에게 있기나 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조금 전 다른 이의 글을 읽다가 소소하게 안부를 나누는 친구에게서 엽서를 받았다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부럽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그 엽서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드러내 놓고 나누어도 부끄러운 내용은 아니었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다행히 엽서에는 펜으로 그림 몇 개, 짧은 문장 몇 줄 정도가 다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문학을 한다는 게 큰 자랑이요 사치였던 옛적에 엽서는 낭만을 대표하는 귀한 소재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잉크를 찍어 쓰는 펜으로, 때론 만년필로 목탄으로, 아니면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시 하나면 족한 그런 엽서가 배달부를 통해 전국을 누볐을 것입니다. 그것을 모아 책을 삼기도 하고, 아니면 상자 안에 고이 두어 마치 가보처럼 놓아두기도 했다지요.     



행여 누군가가 나에게 엽서라도 보내주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짧은 답장이나마 보내줄 마음의 정성이 내게 남았는가, 아니 다른 건 다 양보하더라도 내 정성을 응축시킨 엽서 하나라도 보내줄 친구가 내게도 있는가? 물어야 할 판입니다. 돌이켜 보니 엽서 파는 가게에 가서도 예쁜 엽서 하나에 눈길 준 적이 없고 관제엽서를 요즘에는 어디서 파는지(어릴 적에는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엽서를 팔았습니다) 우표는 얼마짜리를 붙여야 하는지, 우체통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숨어있는 내 감성을 꺼내기는커녕 점점 안으로, 안으로 숨으려고 하는 암중투쟁(暗中鬪爭)을 치러내야 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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