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가 더 입에 착착 붙죠?
제게는 조부모님의 기억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형제의 막둥이셨던 아버지는 그나마도 늦둥이 셔서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두 분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신 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두 분이 살아계셨다면 나를 어떻게 대하셨을까? 예뻐는 하셨을까? 늘 내 상상 속에만 머물러 계실 뿐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말할 때마다 내게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도록 조부모(祖父母)님의 함자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이런 저의 무심함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으시지요? 집안 어른들 누구도 두 분의 함자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제가 너무 자란 뒤였습니다. 사진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께서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은 아냐?” 묻지 않으셨으면 지금도 모르며 지냈을지도 모릅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저는 호적등본을 떼보기로 맘먹었습니다. 시청이었는지 동사무소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기억에 선명한 검은색 손글씨는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다행히 조부모님까지는 나와 있었습니다. 덕분에 큰아버지와 고모들께서는 어느 한자(漢字)를 쓰셨는지도 알게 되었고 조부모님의 함자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항렬을 따르셨던 할아버지는 별 성(星) 자를 쓰셨고 문(文) 씨셨던 할머니도 별 성(星) 자를 사용하셨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두 분의 함자를 오물오물 읊조려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 손자 욱곤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당시에는 집안 어른이라고 해야 연로하신 고모할머니, 그리고 큰아버지, 고모들이 계셨는데 다른 모든 분이 그러셨듯 큰아버지는 근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큰아버지와 크게 다르시지는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반면 고모들은 유머도 있으셨고 다정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고모의 모습에서 할머니의 성정을 유추하기에 무리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 할머니는 이런 분이셨겠구나!라고 말입니다.
당연히 지금 아버지의 동기간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도 90이시니 세상을 떠나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세가 되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시고 장로님이 되시면서 당신의 모든 남매가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라셨지만 100% 모두 이루지는 못하고 먼저 보내셨습니다. 나중에 천국 가시면 우애 좋으셨던 동기간을 뵙고 서로 알아보실 수 있을까요? 서로 반가워하며 안아보실까요?
그런 논리라면 나도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면 우리 조부모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는 서로가 마찬가지일 터 가끔은 누군가를 졸라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사진이라도 보여달라 졸랐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참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한 세대가 가고 그렇게 세대가 바뀌면 그렇게 서로서로 잊히나 봅니다. 나도 그렇게 될까요? 우리 부모님께서도 제 손자 이후로는 서서히 잊히겠지요? 하지만 크나큰 나무처럼 때가 되면 열매가 열리고 그에서 씨가 맺혀 대대로 또 다른 나무로 이어진다면 이처럼 잊히고 망각하는 일이 생각처럼 슬프고 섭섭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때가 되고 시간이 되면 12남매를 두신 외조부모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분들과 어머니 남매간의 이야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