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 or Treat
파티와 기념일에 진심인 캐나다에서 할로윈 같은 큰 기념일 준비는 두어 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9월 초부터 마트에 호박이 진열되기 시작했고, 곧 할로윈 소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할로윈이 끝나지도 않은 10월 중순에 크리스마스 용품 진열을 시작한 곳도 있었는데, 모든 일처리가 느린 캐나다에서 이 정도라면 기념일 준비에 어느 정도 진심인지 느껴지지 않는가?
각설하고, 10월 31일 할로윈을 앞두고 학교 아이들의 관심사는 어떤 코스튬을 입을지, 얼마만큼의 캔디를 받을지 기대하는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도 역시 사탕을 많이 받고 싶다며 기대가 한가득이었는데, 와이프와 나는 속으로 걱정만 커져갔다.
이유인즉슨, 둘 다 매우 내성적인 아이들이라 어른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입을 잘 열지 않고, 심지어는 할머니 할아버지 등 친인척에게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인데, 과연 낯선 집 문을 두들기고 ‘Trick or treat’을 말할 수 있을지,
두 번째는, 내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생면부지의 아이들에게 기꺼이 무언가를 내주기 위해 준비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성적이고 멘탈 약한 아이들이 혹시라도 문전박대를 당해 상처를 받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이왕이면 할로윈 분위기로 꾸며놓은 집들을 찾아가는 게 수월할 거란 생각이 들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돌아봐도 할로윈 분위기로 꾸며놓은 집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집에서 코스튬으로 갈아입을 동안 차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쓱 돌며 할로윈처럼 꾸민 집들이 모인 장소를 찾아둔 뒤, 코스튬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첫 번째 집 앞으로 걸어가는데 아이들도 긴장했는지 머뭇거리며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길래, 걱정 말고 가서 문 두드린 뒤 크게 말해보라고, 엄마아빠가 뒤에서 보고 있다고 용기를 주니 큰 애가 작은애 손을 잡고 현관문을 두드린 뒤 크게 소리쳤다.
“TRICK OR TREAT”
잠시 뒤, 한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고 ‘Welcome, happy halloween!’이라는 환영인사와 함께 아이들 바구니에 사탕을 담아주셨고, 아이들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입꼬리가 귀에 걸려 돌아 나왔다.
이후로는 매우 순조로웠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의 집 앞에 할로윈 장식이 설치되고 불이 켜지기 시작하니 ‘할로윈 준비한 집이 거의 없어서 아이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하던 걱정이 ‘저렇게 준비하셨는데 우리 애들이 안 들리면 서운하시겠군’이라는 걱정으로 바뀌어 오히려 아이들에게 빠짐없이 들러서 인사하고 받아오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상황이 역전 돼버렸다.
개중에는 아이들 기준으로 너무 무섭게 꾸며놔서 문 앞까지 함께해 준 집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집들은 아이들 둘이 손잡고 들어가 ‘trick or treat‘을 외쳤고, 어느 순간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지어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니 마치 온 동네 축제가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집 앞 할로윈 장식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노부부들, 젊은 부부, 십 대 자녀들, 심지어는 어린 자녀들까지 분장하고 준비한 집도 있었다.
아파트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매우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켜보는 동안,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든 내 돈 들여가며 할로윈 장식, 소품, 간식을 구입하고, 저녁시간을 온전히 할애해 아이들을 기다리는 풍경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집에 오는 길에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니 맞이해 주신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 할로윈 이었다.
참고로 할로윈에 참석하는 집은 현관에 불을 켜두고, 불 꺼진 집은 할로윈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인이니 현관 불 점등 여부를 확인하면 되고, 할로윈 데코까지 설치돼 있다면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 불을 켜있지만 부재중인 집은 아이들이 자율로 가져갈 수 있도록 현관 앞 바구니에 과자를 담아두기도 한다.
캐나다의 할로윈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