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왼쪽 눈 아래가 떨리는 일이 종종 있다.
흔히들 이 증세는 마그네슘이 부족 때문이라 하길래 냉큼 마그네슘을 사서 매일 아침 한 알 씩 먹었다.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똑같은 증세가 또 생긴다.
이게 계속 생기는 증세가 아니고 아주 가끔 하루에 한 두 번 드물게 생기는 것이다 보니 증상을 보여주기도 어렵다. 어쩌다 증세가 나타날 때 잽싸게 와이프한테 잘 보라고 보여줬는데 심드렁하다. "잘 모르겠는데..."
"자세히 좀 봐봐"라고 닥달했지만 역시나 "왼쪽 맞어?"라고 되물었다.
나의 불안에 공감해주지 않는 것이 무척 섭섭했지만 내가 거울을 봐도 잘 모르겠다.
50이 넘어가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건강이다. 대학동기 모임에 가면 하나같이 어디가 안 좋고 뭘 먹으면 좋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스스로가 터득하고 발견한 건강상식을 전하기 바쁘다.
90학번 대학 동기들이 만난 이래 처음 한 10년은 연애=여자, 취직, 학업 얘기 그리고 그 뒤 한 10년은 결혼, 회사, 재테크 얘기를 했고 그 뒤 한 10년은 아이들, 골프, 여행얘기를 했고 정치와 야구 얘기는 그에 아울러 30년 이어진 듯 한데 최근 5년은 모두 다 시들해져 건강이 팔할, 노후가 나머지 정도로 채워진 듯하다.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어딘가 하나씩 불편하거나 예전 같지 않은 몸상태가 되니 어찌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나가 가장 큰 관심사일수 밖에.
암튼 눈 아래가 떨리는 일에 이어 눈에 충혈이 생기는 경우도 두어 번 생겼다. 어디서 들은 얘기로 나이먹고 문턱을 가장 낮춰야 하는 곳이 병원이고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을 가라는 것이니 나도 병원에 가보기로 맘먹었다.
근데 어떤 과 병원을 가야하나? 눈 떨리는 거니까 안과인가? 신경과 관련 있는 거니 신경과인가? 결국 내장 기관과 관련된 것이니 내과인가? 그렇게 주변 병원을 검색하던 '눈떨림' 치료를 주요 치료 분야로 내세운 병원이 있다. 한의원이다.
다음날 부리나케 달려갔다. 소위 구안와사 즉, 입돌아가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환자를 줄곧 봐오던 한의사선생님은 너무나 멀쩡한 내 얼굴을 보더니 상당히 뜨악한 표정이다.
"그래서 그 증상이 얼마나 일어나나요?"
"하루 한 두번 정도요"
"아 네… 그럼 전기치료 겸해서 저희 병원에서 하는 약침치료가 있는데 10번 하시면 1번 추가로 해드려요. 시력향상이나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눈이 번쩍 떠졌다. "당연히 해야죠!"
이어서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비보험이라 20만원쯤되는데..."
주춤했지만 이미 말을 뱉은 후다. 멀쩡한 신사분이 20만원 때문에 자존심을 구길수는 없었다. "네...해야죠"
그렇게 열흘하고도 하루를 점심시간 혹은 퇴근시간에 가서 1시간씩 약침, 뜸, 부황, 물리치료를 받았다. 물론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눈떨림의 빈도가 조금 줄었다는 정도. 그것도 심리적인 느낌이지 데이터로 before & after를 확인한 것은 아니니 정확한 치유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회사일로 피곤할 때 병원가서 1시간씩 따땃한 침대에 누워 한숨 푹 자고 오는 거라 돈이 아깝거나 완쾌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또 몇 주가 흘렀는데 이제는 하루 한 두번씩 어지럼증이 생긴다. 뭐랄까 머리에 순간적으로 피가 공급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눈떨림, 충혈에 이어 어지럼증까지, 필시 뇌쪽 혈관 혹은 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역시 또 덜컥 겁이 났다. 뇌졸중, 뇌경색, 중풍 뭐 이런 무시무시한 병명이 뇌리를 스친다.
아직 아이들이 겨우 고등학생이고 우리집에 돈 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가장인데 이렇게 갈수는 없다는 생존본능이 생긴다.
또 병원을 간다. 한의원에서 한번 마케팅에 당한 경험이 있던터라 이번에는 결코 그런 상술에 넘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비보험치료가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신경과'를 찾았다. 또 몇가지 검사를 한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라고 하거나 일어서서 한쪽 눈을 감으라고 하거나 눈을 세게 감았다가 뜨라고 하거나 손바닥을 뒤집어보라고 하거나 양쪽 검지손가락을 맞춰보라고 하거나… 당연히 시키는대로 잘 해냈다. 뿌듯했지만 내심 뭐라도 하나 이상하기를 기대하는 의사선생님께는 좀 미안했다. 의사선생님은 '멀쩡한데 그럼 왜 온거냐?'는 듯 의아해하신다.
그러면서 메모장에 굵은 색연필로 쓰시면서 설명을 해주신다. 어지럼증이나 눈떨림등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신경계통은 아닌 것 같고 갑상선쪽 문제가 있어도 그런 일이 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더니 영어로 병명 같은 걸 쓰신 후에 (찾아보니 Myokymia라고 쓰셨고 Brain Fog라고도 쓰셨다) ①스트레스 ②수면부족 ③커피, 술 ④운동부족이라 쓰신 후 하나씩 짚어가면 설명을 하신다.
고작 이 결론을 들으려고 시간내고 예약해서 난생 처음 신경과를 온 것인가. 너무나 뻔한 얘기라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을 실망시킬수는 없어서 "커피도 안 좋은가요? 그건 진짜 몰랐네요. 줄여야겠어요" 정도 호응을 해주고 병원을 나섰다.
그냥 보내기 미안했는지 의사선생님은 일시적으로 증세를 완화해줄 수 있다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러나 약국에 들리지 않았다. 그 약 역시 내 염려를 완화해주는 정도의 효과라는 것을 알기에 굳이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 증상은 잘 자고 운동 많이 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자극적이지 않게 먹고 술을 덜 마시면 해결되는 지극히 당연한 input-output인 셈이다. 다만, 놀라운 점은 병원에서 "당신은 멀쩡하오"라고 확인을 받고 나니 마음도 가볍고 증세도 훨씬 줄어든 느낌이라는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염려증은 더 심해질 것이고 나는 또 병원을 들락거릴 것이고 귀를 팔랑거리며 치료를 받고 약을 받아먹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열에 하나 백에 하나라도 우연히라도 맞아떨어져서 건강해질수만 있다면 그 정도 시간과 노력은 감수해야지.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