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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숙이 Sep 15. 2021

가진 것을 공유하고 공동의 것을 만들어 나눈다

한국의 커먼즈 <1-1편>커먼즈(Commons)란 무엇인가

“커먼즈(Commons)요? 옛날로 치면 동네 우물 같은 것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도 커먼즈 맞아요. 다 함께 동네우물가 같은 곳을 만들고 있으니까요.(변경미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겸 홍은둥지공동체주택 입주자)”


“커먼즈는 공통의 부로 정의됩니다. 학술 지식이 대표적인 커먼즈죠. 학술 지식은 기존 지식 바탕으로 학문공동체가 협력해 탄생하며 설사 개인이 만든 것이라도 기존 지식, 공통의 부의 영향을 받습니다.(박서현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혼자서 혼자를 돕는 건 힘들어요. 여러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돕는 게 편해요.(김선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


혼자 사는 처지에 혹시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불안해 없는 형편에 무리해가며 순수보장성 보험을 붓는 대신, 서로 어려울 때 돕자며 각자 형편에 맞게 5000~1만 원 모은 돈이 55억 원을 넘겼다. 


청약저축 부으며 아파트 분양권 받아 대박 내는 미래를 꿈꾸는 대신,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이웃들과 함께 전세보증금을 뽑아 서울에 6층짜리 공동의 건물을 올리고 마을 주민 공동의 공간까지 만들었다. 


앞엣것은 전국의 38개 주민협동회가 만든 자활공제, 뒤엣것은 서울 홍은동 주민들이 만든 홍은둥지공동체주택 이야기다.


‘공동의 것’을 만들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웹사이트에선 자기 논문조차 이용료 내고 봐야 했던 학자들은 학회를 통해 논문을 무료로 공유하면서 공동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 이건 한국기록관리학회 등 문헌학 8단체를 비롯해 지식공유연대 39곳 참여기관의 학자들이 발동을 걸고 있는 일이다. 


독거노인들한테 도시락 갖다 주며 저소득가정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꾸려나가던 여성들은 ‘언제든 여성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는 여성공간’을 꿈꾸다가 도서관과 까페에 교육공간까지 갖춘 마더센터를 열었다. 이건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 조합원 320여 명이 한 일이다. 


농사를 지을 후계자가 없어 애써 가꾼 유기농지를 잃게 된 생산자와 소비자는 각자 토지와 출자금을 모아 7000평 농장을 확보했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을 기반으로 괴산에 설립된 ㈜한살림우리씨앗농장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의 것을 내놓아 공동의 것을 만든다(Common Goods). 집단으로 대표자를 뽑고 중요한 결정은 함께 내린다(Polycentric Governace). 공동의 것을 운영하기 위해 함께 만든 규칙이 있다(Rules). 이해당사자 공동체를 만들어 공동의 것을 직접 운영하고 돌본다(Caring). 그 결과 생성적인 집단 활동을 육성한다(Generative Practices). 


이것을 학자들은 ‘커먼즈’라고 부른다. ‘공동자원 체계’라고도 부르는 이들도 있다. 커먼즈에 고도의 주의와 인내를 갖고 돌보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커머닝(Commonig)이라 불린다. 그 결과, 개인의 부가 아니라 공통의 부(Commonwealth)가 나온다.


커먼즈에 대한 정의는 현실 속 커먼즈의 유형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중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와 법학자 우고 마테이가 한 정의는 비교적 최근 등장하고 있는 한국의 새로운 커먼즈들에 가장 적합하게 들린다.


“커먼즈란 시장 거래의 바깥에서 부분적으로 실제 필요와 기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 공동체가 인정한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커먼즈에는 물리적인 공적 공간과 더불어 협동조합, 연합체, 미래 세대의 이익을 위한 신탁, 마을 경제, 물 공유 장치, 그 밖의 다른 제도적 장치와 같은 과거 및 현재의 제도 조직이 포함될 수 있다. 커먼즈의 유용성은 공동체에서 접근(권)과 분산된 의사결정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커먼즈 제도는 면대면의 상호 감시(monitoring)와 멘토링, 지지를 통해 이윤 동기, 불평등, 그리고 근시안을 상쇄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커먼즈란 용어가 보편화되지 않은 한국에선 물론 현재의 서양에서도 커먼즈는 낯선 개념이다. 카프라와 마테이의 말처럼 “(과거의) 세상은 커먼즈가 풍성하고 자본은 매우 적었”지만 “오늘날은 그 반대로 자본은 가득한데 커먼즈는 사실상 남아 있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커먼즈는 커먼즈나 공동자원을 주어로 해선 설명할 수 없다. 자신의 시간과 자산을 내놓으며 커먼즈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즉 커머너(Commoner)들이 주어가 되어야 커먼즈가 뭔지 말할 수 있다. 그 변화를 표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조선 후기까지 한반도에선 물, 바다, 땅, 숲 같은 자연자원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엔 ‘밭 가는 사람이 밭을 가져야 한다(耕者有田)’는 원칙이 있었다. 함께 밭 갈면 공동경작지가 됐고 함께 가꾸면 마을 숲이 됐다. 그 주변에 모인 사람들, 공동체가 계, 두례, 향약 등 규칙을 만들어 그것을 함께 돌봤다. 


한일합병 직후의 토지 조사 사업,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을 거치며 자원 소유는 사유화됐고, 생산수단은 자본화됐다. 함께 돌볼 커먼즈가 사라졌다.


그러나 서로 도와야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돌봐야 할 땅과 바다 역시 여전히 있다. 사람들은 지향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뭉치게 됐다. 그들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내놔 ‘공동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공동의 상점과 유통망(생활협동조합), 공동의 병원(의료생협), 공동의 백과사전(위키백과)이 생겼다. 


사회적기업지원법,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커머닝 참여자 즉 커머너는 더욱 늘었고 커머닝하는 자산도 다양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공제기금, 서민들의 공동체주택, 모일 곳 없던 마을주민·여성·청년의 공동 공간, 학자들이 무료 공유한 학술·지식 데이터베이스, 유기농민들의 공동 농지, 비싼 임대료를 피해 모인 법인들의 공동 건물 등등.


과거엔 커머닝할 자원이 있어 커먼즈가 생겼다면, 이제는 자원과 자산이 부족한 커머너들이 공동의 것을 모으며 커머닝을 한 결과 커먼즈가 생긴다. 때로는 땅이나 건물을 가진 사람들-예를 들어 천수텃밭을 공유하는 땅주인 마명선 씨와 임대인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괜찮아마을을 공유하는 ㈜공장공장-이 자신의 것을 내놓아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쓰도록 하면서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활동으로 커먼즈가 생기지는 않지만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커먼즈처럼 ‘생성적 집단 활동을 육성’한다. 과거의 커머너와 현재의 커머너는 어떻게 다를까.


#CC_BY #이 저작물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공동진행 연구결과입니다.저작자명 및 출처, CCL 조건만 표시한다면 제한 없이 자류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사진 설명 : 해질녘 언덕에서 춤 추고 있는 괜찮아마을 참여자들. 목포 원도심에서 공유주택, 공유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공장공장은 입주자들을 ‘주민’이라고 부르며 지역 살이를 함께 하는 청년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공동자산은 없지만 공동체 문화가 없던 청년 세대가 모여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먼즈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사진제공= 괜찮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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