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홀 Dec 27. 2023

그 많은 고기는 다 어디서 왔을까?

- 살아보지 않은 20세기 경험 -

오클랜드에 사는 친구가 왔다. 20대에 만났으니 30년 지기다. 코로나 시국 몇 년을 빼고는 1년에 한 번 정도 만난 것 같다. 항상 친구가 한국에 올 때 서울에서 만났기 때문에, 못 오는 해에는 만나지 못했다. 뉴질랜드로 내가 만나러 간 적은, 출장 말고는 거의 없다. 이번에 오로라를 보러 뉴질랜드를 가겠다고 했더니 친구 역시 다른 사람과 같은 반응이었다. “여기서 오로라를 볼 수 있어?” 30년 넘게 산 친구도 몰랐던 사실이다.  

    

오로라를 보는 건 사실, 이번 여행의 찐 목적은 아니다. 버킷리스트에 있으니 보면 좋은 거고, 운이 좋다면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진짜 목적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 나한테 집중할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혼자 다니는 건 걱정되었다. ‘혼자 다니지 마라’는 괜한 소리를 들은 탓도 있지만, 나이 탓도 있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에는,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 잘 다녔다. 코로나 이전까지도. 혼행은 내게 낯설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암튼,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봤다. 퀸스타운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지.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는 했어도 우리가 함께 여행한 건,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뉴질랜드 살 때 이외엔 없던 일이다. 그래서 친구를 꼬셨다. 같이 여행하자고.      


친구는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왔다. 일하는 사람이라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국내선에 대한 터뷸런스(turbulence) 트라우마(trauma)를 갖고 있어서 비행기 타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이었다. 그래서 남섬에 잘 오지도 않고, 부득이 움직여야 하면 크라이스트처치까지만 타고 거기서 차로 이동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 때문에 퀸스타운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줘서 정말 고마웠다. 게다가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세심하게 챙겨줬다.      


호텔에서 만나자마자 친구는 너무 긴장했던 국내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다행히 이번 비행은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마침 아는 승무원이 탑승했는데 간식거리를 이것저것 챙겨주었다며 주섬주섬 침대에 내려놓았다.      

친구는 일하는 사람답게 퀸스타운에서 만나야 할 사업 파트너들과 약속을 잡고 그 중간중간 나와 놀러 다닐 일정을 짰다. 그런데 약속 하나가 어그러졌다면서 증기선을 같이 탈 수 없겠다고 하는 것이다. 혼자 타고 오면 그 후에 같이 다니자고 했다. 처음엔 “같이 못 탈 거 같네~~”라고 운을 떼길래 나도 가볍게 “약속 못 옮겨? 안돼, 같이 가”라고 했다. 시간 약속을 다시 해보겠다고 하더니 여의치 않았는지 또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좀 더 강하게 말했다. “안돼~~, 우리 같이 다니는 거 정말 오랜만인데, 퀸스타운은 처음인데, 같이 가자.”라며 우겼다. 떼를 쓰듯이 도리질 치며 강하게 거부했다. 친구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상하다~ 너 독립적인 애가 왜 그래?”     


평소의 나라면 우기는 일은 잘하지 않는다. 내심 서운하고 속상해도 표시를 내지 않는다. 수긍하고 참고 아쉬운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덮어버린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탈 증기선에 혼자 덩그러니 있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마음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로 충분했다. 친구가 테카포에서 퀸스타운까지 동행한 그 가족도 같이 가니까 혼자가 아니라고 설명해 줬지만, 절친과 함께하고 싶었다. 친구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애처럼 굴었더니 친구가 마지못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에스에스 언슬로우(TSS Earnslow) 증기선을 타고 월터피크 농장(walterpeak farm)에서 점심을 먹고 양 떼 쇼를 관람하는 것은 퀸스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상품 중의 하나다. 퀸스타운에 오는 거의 모든 관광객이 이용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월터피크 농장은 가지 않더라도 증기선은 꼭 타본다. TSS Earnslow는 1912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석탄을 연료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상업용 증기선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증기선 중의 하나이자 남반구에서는 유일하다.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는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고 길이는 80km로 최장이다. 얼마나 큰지 파도가 치고 갈매기가 날며 해변까지는 아니지만, 자갈, 모래가 깔려있다. 이 호수에서 하는 수상 활동이 많은데 증기선도 이 호수를 가로지른다. 배 갑판에서 와카티푸 호수와 그 주변의 마을을 둘러보는 풍경이 정말 멋지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선내로 들어와 석탄을 때는 연통(?) 위에 앉았더니 뜨듯하다. 동력이 석탄이어서 아직도 그 배에는 석탄 넣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배 안에는 각종 간식거리와 와인, 맥주, 커피 등 주류와 음료를 같이 판매했는데 우린 얘기 삼매경에 빠져서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월터피크 농장은 동화 속에 나오는 집처럼 예뻤다. 빨간 지붕과 하얀 목조건물. 선착장에 마중 나온 목동(?)과 양몰이 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선했다. 모두가 점심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 식사를 해야 하는 인원이 너무 많아서 직원들이 손님들의 양해를 구하고, 먹는 순서를 구역별로 나눴다. 우린 사진 찍고 식당 안을 구경하느라 그리 지루하진 않았다. 음식은 뷔페였는데 양, 소, 돼지, 닭고기 바비큐가 주 메뉴였다. 아무리 농장이라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먹을 고기를 어떻게 수급하는지 꽤 궁금했다. 친구한테 이 농장은 돈을 긁어모으겠다고 했더니, 고정비와 운영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아마도 “떼돈” 버는 수준은 안 될 거라고 귀띔해 줬다. 농장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친구는 동물관리가 쉽지 않을뿐더러, 숙련된 고용인을 구하는 것부터 농장 유지까지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양털 깎기 쇼는 숱하게 봤기 때문에 기대가 없었는데, 그 농장에선 양털 깎기 쇼는 생략하고 개의 양몰이 쇼를 보여줬다. 그 광경도 여러 번 본 모습이었지만, 이 농장에선 갇힌 공간이 아니라 무대 뒤가 들판이어서 개와 양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통방통하게 양을 모는 개의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농장에서 전화기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했던 친구는, 여기 온 김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도 같이 먹기로 하여, 친구 지인이 운영한다는 중국식당에 갔다. 주인도 요리사도 모두 중국 사람인 찐 중국식당이었다. 중국에서 식당 음식을 볼 때마다 경이롭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닭이면 닭, 생선이면 생선이 통째로 원래의 모습을 살려서 나온다는 것인데, 이 식당에서도 그랬다. 그렇게 원형을 살려서 나오지 않으면 더 맛있게 먹을 텐데, 맛보다 모양 때문에 먹기 힘들 때가 있다.      

중국식당답게 아주 푸짐한 요리가 나왔다. 양, 소고기 볶음, 청경채 볶음, 랍스터 구이, 돼지고기 튀김, 연어회, 생새우, 볶음밥에 소주와 와인이 나왔다. 대략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엄청 열심히 음식을 먹고, 소주를 연거푸 시켜 먹었다. 술 못하는 나는 와인 한 잔 정도만 마셨는데, 술 마시는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실없는 농담들을 들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이전 05화 여왕의 마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