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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an 06. 2024

뉴질랜드의 마지막 밤

- 잘 가라, 청춘 -

오클랜드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뉴질랜드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베트남 쌀국수, 월남쌈, 얌차 (Yum cha)였는데 얌차를 먹지 못하고 있었다. 뉴질랜드 음식이라고 할만한 것은 호주, 영국과 비슷한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라서 그걸 먹고 싶진 않았다. 서울에 식당이 있고 베트남이나 홍콩, 대만에 가면 있는 것이지만, 뉴질랜드에서 먹는 맛은 또 다르다. 어쩌면 향수의 맛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먹었던 '양갱이'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가끔 사 먹는 것처럼. 초등학교 때 소풍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양갱이. 그 단팥의 맛이 너무 달고 맛있었다. 혼자살 때는 그 기억으로 가끔 양갱이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친구, 친구 남편, 친구 동료 이렇게 넷이서 공항 근처 얌차 집으로 갔다. 예전에는 시내에만 주로 있던 음식점이었는데 도심 외곽으로 많이 확대된 것 같았다. 베트남 쌀국수 집도 외곽에 있었다. 그만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딤섬(Dim sum)은 이름을 외우기가 어렵다. 모양과 맛은 알지만 이름을 몰라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샤오롱바오를 빼놓고는 죄다 모른다.  옛날 그 맛은 아니었지만,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혼자 시간을 보낼 곳으로 미션베이(Mission Bay)를 정했다. 처음 미션베이에 갔을 때 그 이국적인 동네 분위기에 반했었다. 바다가 바로 앞에 있고, 해안도로가 있고 예쁜 카페와 식당이 그 도로가에 늘어서 있는 모습은 20대 젊은 청춘에게는 무척 럭셔리한 곳으로 보였다. 그 기억으로 다시 방문한 미션베이는 조금은 초라해 보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바다도 같은 바다이고 집도 좋은 집들인데, 느낌이 달랐다.  미션베이는 지금도 오클랜드에서 부자 동네 중의 한 곳이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럭셔리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폰슨비 동네를 방문했을 때처럼 날씨 탓일까? 비가 오고 바람 불어 추운 날이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다.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미션베이의 환상이 깨진 것은.


그래도 이 해변에서 저 해변 끝의 80퍼센트 까지 걸어보았다.  혼자 셀프카메라로 찍기도 하고, 사진 찍어달라는 관광객의 사진도 찍어주고. 그가 배경으로 찍어달라던 랑기토토 섬(Rangitoto Island) 쪽을 보니 먹구름으로 회색빛과 푸른색이 뒤엉킨 하늘과 맑게 개인 하늘이 공존하고 있었다. 오묘했다.  한 곳에서 이렇게 다른 하늘이라니.  사진과 동영상을 열심히 찍고 더는 추워서 밖에 있을 수 없어 카페로 들어갔다. 원래는 예쁜 로컬 카페를 가려고 했는데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로컬 카페는 와이파이가 잘 되지 않고,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울 거라고 스스로 핑계를 대고 스타벅스로 갔다. 스타벅스는 그냥 친숙한 곳이라 어느 나라에 가든 거부감 없이 들어가게 된다.  


역시 스타벅스에는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좀 더 오래 머물러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나도 노트북을 켰다. 여기 스타벅스도 음료가 준비되면 이름을 불렀다. 스타벅스의 이 이름 부르는 제도는 개인적으로는 별로다. 조용히 진동벨을 울려도 될 것 같은데, 스타벅스의 취지인 고객과의 친근감은 별로 형성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직원들이 목청껏 소리 지르느라 안타깝게 보일 뿐.  여기 오클랜드 매장은 비교적 작아서 큰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다 들렸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따뜻한 차를 시켰는데, 매장 문이 활짝 열려있고 바람이 들어온 탓에 그 음료는 금방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문을 닫고 싶었지만, 손님 중 누구도 춥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 혼자만 그런 것 같아 참았다. (영업방침이 문을 열고 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스타벅스 매장에 날아든 참새 한 마리 (가운데 사진)

마지막 저녁은 20대 때 잠깐 같이 일했던 사람(A)과 먹었다. 친구와 A는 뉴질랜드 교민으로 교류가 꽤 활발했던 모양이다. 친구의 주선으로 오랜만에 얼굴 보자고 하여 흔쾌히 만났다. 스타벅스로 나를 데리러 왔다. 한창 노트북에 정신 팔려 있는 와중에 친구가 나를 불렀다. 나는 눈을 들어 친구를 확인하고 "어, 잠깐만." 하고 서둘러 정리를 했다. 친구는 A를 소개해 주려했는데 내가 너무 부산하게 굴어서 타이밍을 놓쳤다.  A는 바로 친구 옆에 서 있었는데 처음엔 몰라봤다. 손으로는 정리를 하고 눈으로 A를 발견하고, 하던 일을 멈추었다.


"어?" 하고 바보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A는 그게 나의 반갑다는 소리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무척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이에요, 지현 씨."  나는 악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말했다.

"어? 어! 아니, 머리가 왜 그래요?"  

"뭐~어. 시간이 흘렀죠" 그는 나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고 머리를 쓱 만지며 말했다.

나는 예의에 어긋나는 줄도 모르고 "아니, 머리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고 했다.   


태국식당에 들어서서야, 나의 반응이 얼마나 무례했는지를 깨닫고 사과했다. A가 오클랜드 대학생 시절, 풋풋한 청춘일 때 보고 처음 보니 그런 반응일 수 있다는 듯 이해를 해줬다. 그러면서 농담을 던졌다.

"나는 두 번이나 결혼할 동안 왜 한 번도 못했어요?" 그는 지금의 부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폐인이 되었을 거라면서 뒤늦게 만난 새로운 짝의 예찬론을 펼쳤다.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맞다. 이혼과 재혼이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평생 동안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더 사랑할 수 있는,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가진 A가 부러웠다.


앞으로 종종 연락하자며 카톡방을 열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 셋 모두 이십 대의 그 모습이 보였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뭐든 열심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던 그 시절의 얼굴이.

마지막 오클랜드의 밤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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