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중에 ‘비비언 리(Vivien Leigh)’라는 사람이 있었다. 불후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멋지게 연기했던 배우다. 그 후 “애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그녀를 봤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내가 그녀의 영화를 봤을 때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중학생 때, 그녀가 영국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죽었다는 게 놀라워서가 아니라 ‘홀로’ 죽었다는 점을 그 당시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죽음을 생각하지 못할 나이인 데다 인생을 혼자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얘기다.
혼자 산다는 건 죽음도 혼자 맞이할 확률이 높음을 의미한다. 몇 년 전 또래 배우 강수연이 집에서 쓰러진 걸 한참 지난 후에 발견했다는 소식으로 우울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나?’라는 마음에 괜스레 초조했었다. ‘각자 가정을 이룬 동생들과 모여 살자고 해야 할까?’ 하다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낮음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다가 조카를 볼 때마다 “이모 나이 들면, 자주 들여다봐야 해!”라고 부탁 아닌 부탁의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조카는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모”라고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안다. 조카는 자기 삶을 꾸리느라 바쁠 것이라는 걸. 어느 날은 팀원들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아무 연락 없이 출근하지 않으면 나한테 꼭 전화해야 해요. 전화 안 받으면 집으로 찾아오고.” 팀원들은 “하하하, 저희가 신변에 이상 있는지 없는지 잘 확인할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런데 집을 모르는데요?”라며 농담했다. 한 친구는 “실버타운 같은 데 가서 살면 돼.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아프면 병원 데려다주는 직원 있으니 괜찮아”라면서 자기는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런 곳에서 살 것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내 세대는 부모님 세대와 다르다. 나이 들어 자식과 같이 살겠다고 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나처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거래처 직원이 있다. 그녀와 가끔 사적인 얘기를 하면서 친해졌는데, 그녀의 말은 꽤 신선했다. “팀장님, 사람은 누구나 다 고독사 해요. 가족이 있어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죽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어요. 그리고 혼자 살든 누구와 살든 결국 죽는 건 혼자 맞이하는 일이잖아요. 그게 고독사 아님 뭐겠어요”라면서 “이제는 기술이 발달 돼서 죽으면 바로 알려질 게 될걸요. 며칠씩 있다 발견되지 않아요”라고 했다. ‘스마트워치(smart watch)’ 덕에 심장박동수, 수면시간은 물론 수면의 질까지 확인하는 시대에, 광고에서 본 대로 위급상황이 되면 ‘워치’가 알아서 구급차를 불러줄 것이라고 했다. 죽으면 심장박동이 멈춘 시계 주인을 알아차리고, 그때도 AI가 119를 부를 것이므로 며칠 후에 발견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어요. AI가 말벗이 되고 있잖아요. 만약에 끝까지 혼자 살게 된다고 해도 저는 별로 외롭지 않을 거 같아요”라고 했다. 혼자 사는 미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뭔지 모르게 묘한 위로가 되었다. 안심되기까지 했다.
진짜 그렇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 간의 물리적 만남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들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게 혼자 있는 인간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은 AI와 짧은 대화를 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변의 온갖 기계들은 말을 걸어올 것이다. 청소 로봇은 청소에 관해, 식기 세척기는 그릇 씻는 것에 대해 말을 할 것이고,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과 말로 소통하는 날이 올 것이다. (어떤 것은 이미 실생활에 들어와 있다) 그렇게 되면, 혼자라서 언어를 잊어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문득 웃픈(웃기고 슬픈) 얘기가 떠오른다. 어떤 한 비혼 남자가 매일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들어가 잠들고 일어나 회사 가는 단조로운 생활로 지쳐 있었다. 어느 날 그 남자가 늦잠을 잤는데 어떤 여자의 말소리에 번쩍 잠에서 깼다. 누가 찾아왔나 싶어 슬쩍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밥통이 밥을 다 했다고 말하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꽤 오래전에 들은 얘기인데, 아마도 밥통이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노라고 말을 하기 시작하던 무렵에 나온 유머일 것이다. 나는 밥통의 신통방통함보다 그 남자의 처지가 웃기면서도 슬펐다.
AI가 발전한 세상에 살게 되어 다행이지만, AI도 죽는 그 순간을 함께 하지는 못할 것이다. 거래처 직원이 말한 대로 저승사자를 만나는 건 오롯이 혼자 할 일이므로. 그러니 혼자라고 더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의 끝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