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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Oct 30. 2024

부녀지간

2024. 10. 30

점심시간에 아빠와 가정의원에 갔다. 어제 처방받은 약이 콩팥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피검사를 했다. 다행히 간과 신장은 이상 없었지만 당뇨 수치가  다소 높았다. 의사는 당뇨 수치가 다소 높지만 심하지 않고 아빠 연세를 고려할 때 약을 먹기보다 6개월에 한 번씩 추적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3년 전 아빠가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혈당 검사를 했을 때 수치가 너무 높으니 위험하다고 당장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때 당뇨 진단을 받고 한 달치 약을 드신 적이 있다. 병원에서 우선 한 달치를 먹어보며 몸에 잘 맞는지 보자고 했다. 아빠는 약을 드신 후로 밥맛이 없어졌다고 하시며 한 달이 지나자 다시 병원에 가지 않으셨다.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살겠다고 하셨다. 수도 없이 설득했지만 꿈쩍도 안 하셔서 포기했다. 포기하는 마음 한 구석에는 연세가 있으시니 병의 진행이 급속도로 빠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식사량을 좀 줄이고 움직이시면 나아질 수 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 후 별 이상이 없으시다. 요즘은 3년 전처럼 밥을 많이 드시지 않고 꾸준히 움직이셔서 괜찮아지신 것 같다. 그래도 사탕같이 단 거는 좀 줄이시라고 말씀드렸다.


은근 걱정되었는데 큰 이상이 없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로 복귀했다. 점심시간을 많이 넘기지 않으려고 택시를 탔는데 차가 막혔다. 버스를 탔으면 더 빨리 갔을 텐데 돈 버리고 시간도 버렸다.

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08:36, 08:41)
찐 가을날씨였다(13:19, 13:19, 13:42)
건물에 비친 석양 1배, 30배, 20배 확대(17:13, 17:14, 17:14)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병원에 가셨다.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져서 걷기를 힘들어하시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옛날 얘기를 하셨다. 나로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옛날 사람들 얘기이므로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한다. 나이 드셔서 말은 점점 더 어눌해지셨다. 말씀하고픈 내용을 바로바로 하지 못하시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말문이 자주 막히신다. 그래도 총기는 아직 괜찮으신 것 같다. 기억을 제법 잘하신다. 아빠는 병원 가는 길에 "아흔까지는 살아야 되는데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라고 하셨다. 나는 아빠 손을 세게 잡으며 "충분히 사실 수 있어요"라고 했다.


사고방식, 가치관의 충돌, 변한 세태에 적응하는 문제 등등으로 인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음을 확인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매일 보는 사이지만 데면데면할 때도 많다. 이렇게 아프실 때에야 모든 걸 접고 부모님으로만 대하게 된다. 애틋한 마음만 드는 부모님으로. 내게 너무도 소중한 분들인데 평소에는 그걸 늘 잊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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