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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나무

2025. 2. 5

by 지홀

꽃, 식물, 자연이 좋아지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는데 정말 그렇다. 30대까지 별 관심을 가진 적 없다. 꽃, 나무 이름을 잘 모르고 알려고 한 적도 없다. 그냥 "예쁘다" 정도에서 그쳤을 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름이 궁금해졌고 여행 가면 사진에 자연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이름은 찾아보고 알게 되지만 몇 개를 제외하곤 곧 잊어버린다. 도무지 기억하기 어렵다. 그나마 나무 보다 꽃 이름을 좀 더 기억하기 쉬운 건 다행이랄까.


팀원이 행운목을 길렀다. 조그만 컵에 들어있는 아주 작은 식물로, 뿌리를 물속에 담아 키웠다. 그 직원이 퇴사하며 내게 주고 갔다. 식물을 키우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항상 죽여버린 난 자신이 없어 손사래를 쳤다. 직원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잎사귀가 마른 듯할 때만 물을 갈아주면 된다며 아주 쉽게 기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행운목을 떠안았다. 관심을 기울여 물을 주려고 했으나 자주 잊었다. 잎사귀 한 귀퉁이가 누렇게 변했다. 크기는 늘 똑같았다. 그러던 차에 인사발령이 나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층이 달라졌다. 짐을 다 옮기고 보니 행운목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주 잠깐 '그냥 놔둘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잘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곧 생명을 유기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어 도로 가져왔다. 살아있는 식물이 생명체임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유기"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인가 하며 과한 마음이라고 자신을 달랬다.


버리려다 키우자고 마음먹어서인지 매일 행운목을 들여다봤다. 작은 컵에서 커피전문점의 1회용 컵으로 옮겼다. 나무는 물속에서 잘 자랐다. 뿌리 여러 가닥이 기다랗게 났다. 잎사귀도 좀 커졌다. 죽지 않고 살아 커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더 커지자 흙에 옮겨 심어야 할 것 같아 집으로 가져왔다. 엄마는 죽어가던 식물을 살리는 재주가 있는 분이다. 이제 엄마에게 맡겼으니 책임지고 돌볼 의무에서 벗어난 것 같아 홀가분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냥 물속에서 키우자고 하셨다. 난 집에 있던 화병 중 주둥이가 넓고 낮은 타원형 모양으로 생긴 화병으로 옮겼다. 행운목을 돌보는 일이 자연스레 다시 나의 일이 되었다.


몇 개월이 지나자 화병이 작아졌다. 이제는 정말로 흙에서 키워야 할 것처럼 많이 자랐다. 엄마가 거실에 놓은 산세베리아를 심은 화분 한편에 행운목을 심으셨다. 그 후로 나는 자주 그 나무를 잊고 지낸다. 문득 오늘 행운목에게 거의 두 달간 물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가 팔을 다치신 후 우리 둘 다 잊고 있었다. 상태가 궁금해 얼른 봤다. 다행히 잎이 싱싱하다. 누렇게 된 부분이 없다. 안 본 사이 잎이 훌쩍 자랐다. 잘 돌보지 못했는데 아주 잘 살아있어 감사했다. 어느덧 퇴사한 직원에게 받은 행운목이 벌써 2년 되었다. 반은 나의 관심, 반은 엄마의 관심이었지만 나무를 죽이지 않고 2년 동안 잘 키워 스스로 대견하다.


행운목이 좀 더 크면 화단으로 옮겨야겠다. 아이가 자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듯 행운목도 무럭무럭 자라 더 넓은 곳으로. "나무야, 무럭무럭 자라라"

흐리던 오전, 맑아진 오후(08:42, 08:4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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