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두려움이 가져오는 상처
처음 우한에서 시작되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들었을 때
그게 독일에 있는 나와 크게 상관이 있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중국에 불쌍한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것이 안타깝고
중국 사람들과 가끔 비즈니스를 하는 어머니한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일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리던 날,
어쩌면 중국에 관련된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가는 모양이므로 모두가 해결책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 구 나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정말 나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요새 든다. 왜냐하면 현재 유럽에서 동양인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확실히 두려움을 가장한 인종차별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렵다는 감정 때문에 그동안 부끄럽다는 인식이 있었던 인종차별을
아무 죄책감과 문제의식 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나 같은 이민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이 곳에서 잘 정착한 사람이라도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나 같은 사람들은 사실상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쁜 일상생활에서는 잠시 잊고 살지만
내 고향에서 살았더라면 절대 겪지 않을 일들을
아무런 예고 없이 경험하면 그때 그 사실이 더 확실히 와 닿는 거 같다.
10년 가까이 독일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전혀 격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보통 학업이나 일로써 만나는 사람들은 교육 수준도 높고
어느 정도 배운 사람들이기에 그런 일을 겪을 일이 많지는 않지만
길거리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니하오 인사 같은 가벼운 정도는 어느 정도 감수하고 넘어간 부분도 많고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는데 니 발음 못 알아듣겠어 뭐라고? 다시 똑바로 말해봐라는 식의 무안 주기도
자주 당하는 편이라 크게 당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비슷한 상황이 오면 내 편을 들어주었고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다라는 의견을 확실히 했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면 안심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의 사정은 좀 달라진 거 같아서 겁이 난다.
길거리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단 다르다.
얼마 전에는 나를 마주 보며 걸어오던 10살 남짓한 꼬마 두 명이 나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당황하며 얼음이 되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렇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다
내가 지나가자 그제야 자기들도 자기 가던 길을 가던데 씁쓸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회사 안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빌미로 나에게 농담을 시도하는 동료도 있었다.
내가 코로나 맥주를 들고 길거리를 걸어가는 상상을 해봤다나.
그래서 아주 정색을 해줬다. 이건 정말 그냥 농담 따먹기를 할 수준이 아니다.
나는 언론도 참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책임감 없게 글을 써댈까?
황색경보라는 타이틀을 단 프랑스 신문은 정말 저질이 아닐 수 없고
독일 신문 슈피겔도 코로나 바이러스 중국산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글을 썼다.
도대체 왜 그런 자극적인 제목으로 인종차별을 선동하려 드는 것일까?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쓴 걸까?
얼마 전 독일에서 태어난 베트남인이 기고한 글을 읽고
더이상 문제가 심각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친구는 독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평생 독일을 고향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고향이 자기에게 등 돌릴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지금 한국에 있는 중국 사람들에게
같은 종류의 인종차별을 하려는 거 같아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중국이 다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사실 세계에 민폐를 끼친 게 사실이긴 하다.
사스로 그 큰 고초를 겪어봤으니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잘 대처할 수 있게 준비를 했어야 함이 옳은데 또 안일하게 대처하다 일을 키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임은 이 일이 지나간 후에 물어도 늦지 않다고 본다.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차별한다고 일이 해결이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일단은 사태를 진정시키고 모두가 힘을 모아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에 먼저 힘써야 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주일 후에 한국에 사는 친구 중 하나가 자기 인생 처음으로 유럽에 놀러 온다고 하는데
나는 이 친구가 인종차별로 인한 상처를 입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왜 이런 타이밍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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