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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mit Jan 26. 2020

#13 독일 세입자의 넋두리

참고하실 분은 참고하셔서 억울한 일을 예방하시길!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자가 거주 비율이 낮다.

2017년 기준 아일랜드는 92.5%, 영국은 84.8%인데 비해

독일은 51.7%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그 나머지인 48.3%에 속하는

월세를 내고 사는 독일 세입자이다.




2년 전 우리는 정든 지역을 떠나 내 직장 근처인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독일 사람들에게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동네라서 그런지 집값이 전반적으로 비쌌다.

(여기서 팁 하나! 구글로 Mietspiegel + 동네 이름 + 해당 연도 치시면 평균적인 집세를 알 수 있어요.)


급하게 구한 첫 번째 집은 사실 내가 버는 월급에 비해 비쌌지만 집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도 답신이 없기 일쑤였던 데다 Besichtigungstermin(세입자 면접) 때문에 6시간 가까이 왔다 갔다 하기 힘든 상황 등 여러 가지로 급했기 때문에 그냥 계약을 해 들어오게 되었다. 일단 여기 있다가 빨리 더 좋은 집을 구해서 나가야지 하고 진작에 맘먹었지만 적당한 가격의 괜찮은 집 구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1년을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후 드디어 그 집에서 이사 나오게 되었을 때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새로 계약한 집이 너무 맘에 드는 위치에 실평수는 더 넓고( 게다가 지하창고 + 발코니 추가 ) 저렴하기까지 해서 열쇠를 Nachmieter(다음 세입자)에게 넘기던 날 남편이랑 좋다고 하이파이브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집의 주인이 이렇게 진상짓을 할지는 꿈에도 모르고.




독일에서는 통상 집 계약이 끝난 후 6개월 안에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지불하게 되어있다.

여태껏 그리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3개월 내에는 거의 다 보증금을 돌려받았었다.

그건 독일인인 남편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사 나갈 때 집에 하자가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Übergabeprotokoll)도 문제없이 지나갔기에 이사하고 3개월 정도쯤에 전 집주인에게 연락했더니

Betriebskosten(관리비)이 정산될 때까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개소리를 시전 하는 것이었다.

400유로 정도면 충분할 거 같으니 그 정도만 가지고 있고 나머지를 돌려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보통 1년에 한 번 하는 연중행사가 있을 때까지 안 돌려준다는 말도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 보증금이 자기 딸 통장에 있다는 말에 우리는 이 사람이 상식 저 외곽에 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보증금이 집주인 통장에 있어도 기염을 토할 판에 뭐? 딸이 가진 통장?

독일에서는 절대 임차인의 보증금을 자기 자산과 같이 둘 수 없게 끔 법적으로 되어있다.

이건 집주인이 잘못한 사항.

그러나 자세히 법을 파고 들어가면 독일의 집주인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1년 동안 보증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다 해도 사실상 방도가 없다.


독일은 그나마 세입자를 위한 법이 잘 되어있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집주인이 마음먹고 보증금을 가지려고 들면 법원으로 가지 않는 이상 해결이 안 난다.

보증금이 변호사비용보다 저렴한 경우 가난한 세입자의 경우 보증금을 뜯기는 경우도 심심찮다.


우리도 이미 2016년에 한 번 말도 안 되게 보증금을 몽땅 떼어 먹힌 전적이 있어서 집 계약 때 나름 엄청 대비했다고 자부한다. 근데 또 당한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 우리는 1년을 기다렸다. 단 조건을 걸고.

보증금 통장을 지금이라도 만들고 거기에 우리의 보증금을 보관한 후에 증빙서류를 제출한다면 그 1년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대꾸를 안 하길래 집요하게 전화하고 Whats App문자하고 그랬더니 집주인은 한 달이 지난 후에 우리에게 증빙서류를 보내왔다.


그리고 분하지만 차분히 기다렸다. 12월이 오기만을.

12월 첫 주가 되자마자 우선 관리 사무소로 연락해서 Betriebskosten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다.

벌써 나왔단다. 집주인은 당연히 우리에게 연락을 주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바이기에 바로 전화를 했다. 집주인이 한다는 말이 관련 서류는 받았는데 뭔가 착오가 있어서 돌려보냈다고 제대로 된 서류를 받으면 연락 주겠다고 그런다.

사실 Probezeit이다 뭐다 해서 나 혼자만 그 집에서 산 기간이 6개월 가까이가 되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시라고 말하고 서서히 우리만의 계획을 세웠다.




시나리오 1.

12월 내에 정산서를 받고 그 달 내에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는다. 


시나리오 2. 

12월이 지나서 정산서를 받고 보증금을 까인 채 돌려받는다. 


시나리오 3.

12월이 지났는데도 정산서도 보증금도 못 받고 있다. 




법 적인 전제는 이렇다.

집주인은 예외적인 상황이라 판단 될 경우 1년 동안 보증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적정선 수준으로 가지고 있어야지 보증금 전체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적정한 수준이란 한 달에 한 사람 당 20유로 정도로 12달 해서 240유로 정도를 말한다.(우리는 두 사람이라 480유로) 보통 12월 초에 Betriebskostenabrechnung(관리비 정산서)이 집주인들에게 교부되므로 정산서를 12월 끝나기 전에 세입자에게 전달하고 정산할 거 정산한 후 보증금을 돌려주면 된다. 그런데 중요한 건 12월 내에 세입자가 정산서를 집주인에게 못 받았다면 추가적으로 내야 할 것이 있다 하더라고 보증금을 깍지 말고 전부 돌려줘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1번일 것이나 일어나지 않을 시나리오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12월 31일이 지나자마자 바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시나리오 3이 현실화된다면 법원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증거 자료로도 사용되도록 자세한 상황을 적는 것이 중요하다. 집주인이 잘못한 사항이 있다면 반드시 적는 것이 좋다.


우리는 일단 집주인이 자기 딸 통장에 우리의 보증금을 보관한 것, 법적으로는 적정한 수준의 보증금을 가질 수 있지만 집주인은 모두 가지고 있기를 주장한 점, 관리비 정산서를 받았음에도 우리에게 공지 안 한 점, 그리고 정산서를 보내야 할 기한인 12월 31일을 넘긴 점을 적었다. 그리고 말미에 2주의 기한을 줄 테니 보증금 전부 송금하고 혹시나 우리가 많이 냈다면 그것도 돌려달라고 적었다.

기한을 넘긴다면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말과 함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리저리 우리의 전화를 피하고 Whats App문자 연락도 잘 안되던 과거와는 딴판으로 우리에게 먼저 살랑 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그 전화를 증거로 녹취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성적으로 거리를 두는 게 제일이다. 통화하면서 또 느낀 건데 이 집주인은 정말 이기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으로 기한을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끝까지 제대로 된 정산서를 받으면 다 계산하고 주겠단다. 관리비 정산을 해야 할 의무 기한을 넘겼기에 우리가 그 정산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줘도 그건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봐야 할 일이란다.


시나리오 3으로 가야 될 상황인 거 같아서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다음은 사법기관을 통한 내용 증명이다. 우리는 Mieterverein(세입자 단체)의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Das gerichtliche Mahnverfahren(채무 불이행에 대한 독촉 절차)으로 가기로 했다. 법정절차가 들어가기 전 단계라고 보면 된다.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도 있고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설명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이 법적 절차에 아직 완전히 속하지는 않지만 법원 도장이 찍힌 서류에 초연할 사람은 많지 않으므로 Mieterverein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를 먼저 활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Mieterverein에 가입해 본 적도 있었는데 그곳을 통한 변호사 상담은 공짜이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데다 가입비도 은근히 내야 해서 별로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Mahnverfaren을 처음 진행할 때 나오는 수수료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000유로 받을 것이 있다면 약 32유로의 법정 수수료와 80유로 정도의 변호사 수입료를 예상해야 한다. 어차피 법정절차로 가면 이 수수료도 나중에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으니까 초반에 내가 돈을 내야 한다는 그 정도는 감안하고 진행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총 3번 정도 이 과정이 반복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법정에서 만나는 수밖에 없는 거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보통 이 정도 단계가 되면 대부분 겁을 먹고 돈을 송금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는 그나마 운 좋게 시나리오 2까지 였다.

우리가 제시했던 2주간의 기한이 끝나기 전에 모든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그동안의 맘고생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도 했다.

뒤늦게 관리비 청구서를 받았는데 우리가 100유로 넘게 뭘 내야 할 게 있긴 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또 열 받았다. 뭐야 고작 100유로인데 그것 때문에 우리 보증금을 1년 동안 전부 가지고 있겠다고 했단 말이야?


 이 일을 계기로 또 한 번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돈 열심히 벌어서 언젠가 내 집을 사야지.
세입자는 너무 서러워.



Photo by chuttersna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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