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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Sep 08. 2023

가을을 배경으로 삼는 음악, 김동률

좋은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다. 김동률도 마찬가지다. 거장의 보편성으로 중무장한 그의 곡들은 삼복더위에 땀을 흘리며 들어도 좋다. 하지만 감수성으로 너울거리는 그 클래시컬한 사운드에 적정한 온도를 굳이 찾는다면, 그건 아마 가을이 아닐까. 그렇다고 김동률을 가을의 시즌 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시즌 송은 계절이 주가 되고 음악이 보완하는 개념이라서 그렇다. 김동률은 그와 반대다. 김동률 음악의 보편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여름의 끝자락(싱글 『여름의 끝자락』, 2019년) 

    

가을의 절정은 만추(晩秋)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길게 드리웠던 여름이 걷히는 가을의 초입이 더 좋다. 스산함이 조금씩 내려앉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 바로 지금이다.

     

홀로 걷고 있는 이 길
어제처럼 선명한데
이 길 끝에 나를 기다릴 누군가
마음이 급하다

  


첫사랑(전람회 3집 『졸업』, 1997년)

     

영화 ‘건축학개론’에 <기억의 습작>이 삽입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의식을 더 잘 드러내는 그의 곡은 따로 있다. 전람회 시절 발표한 이 곡. 지나간 첫사랑의 미숙함을 어루만지는 듯한 담담한 피아노 연주에 귀를 기울여 보자. 

    

추운 날이 가면 알지도 모르지
겨울날의 꿈처럼 어렴풋하겠지만
잊을 순 없겠지 낯익은 노래처럼
바래진 수첩 속에 넌 웃고 있겠지



Contact(EP 『답장』, 2018년)

     

이 곡을 듣자마자 생각했다. 이건 분명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영감을 얻었겠구나(실제로 김동률은 하루키스트다).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 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소설 속 문장. 이 곡은 그 허무한 심상을 낭만적으로 재탄생시킨다.

     

널 첨으로 스친 순간
절로 모든 시간이 멈췄고
서로 다른 궤도에서 돌던
이름 모를 별이
수억만 년 만에 만나는 순간


     

내 사람(6집 『동행』, 2014년)

     

이 앨범이 나오고 두 달 후에 난 결혼했다. 신부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던 나는 이 노래를 셀프 축가로 불렀다. 그리고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때만 해도 신곡이었어서 사람들이 이 노래를 잘 몰랐다. 나중에 음원을 들어본 신부 친구들이 말했다. “아니, 이거 이렇게 좋은 노래였어?”(...)

     

가진 것이 없어도 날 가득 채워주는
이 사람으로 다 된 것 같은
날 쓸모 있게 만들고
더욱 착해지게 만드는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은 내 사람



동반자(1집 『The Shadow Of Forgetfulness』, 1998년)

     

김동률은 공연을 자주 안 한다. 그래서 월드컵(공연이 보통 4년 주기라;;)이라는 드립도 있다. 그런데 일단 하면 이 곡은 반드시 연주한다. 무대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혼자 핀 조명을 받으며 그랜드 피아노를 치면서 부른다. 공연에 여친이랑 같이 갔다면 가장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다. 너무 멋있어서. 남자인 나도 떨리는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살아만 준대도
그것만으로도 난 바랄 게 없지만
행여라도 그대의 마지막 날에 
미처 나의 이름을 잊지 못했다면
나즈막히 불러주오



귀향(3집 『귀향』, 2001년)

     

그의 수많은 곡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단 하나. 시적인 가사, 클래시컬한 편곡, 한 치의 빈 곳도 허용하지 않는 사운드, 진정성으로 일렁이는 보컬.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이 노래를 들을 것이다.

     

그래 끝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쓸려
그저 뒤돌아 본 채로 떠밀려왔지만
나의 기쁨이라면 그래도 위안이라면
그 시절은 아름다운 채로 늘 그대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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