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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Dec 30. 2022

한국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4)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형성: 노무현 정부

* 시리즈 이전 글

1편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개념

2편 발전국가적 R&D 체계의 제도화: 박정희 정부 ~ 김영삼 정부

3편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태동: 김대중 정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국가발전전략을 계승했다. 김대중 정부의 정권 재창출 결과였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민의 정부 5년에 대한 반성과 창조적 계승’을 차기 정부의 국정목표로 설정했다(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2003). 노무현 대통령 역시 취임 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 정책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라고 공언했다.

      

여기에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가 정부의 새로운 이론적 토대로 입안되었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 발전론에 적극적 시민참여를 가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여민주주의의 핵심은 작업장, 지역공동체 등 사회 제도의 규제에 시민이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문제와 통치과정에 관심을 갖는 양식 있는 시민을 만들어내, 정치의 효율성과 평등권을 높이는 참여사회가 가능해진다는 발상이다(Held, 2006).

    

이러한 결과로 노무현 정부에서 거버넌스 모델은 사회 전반에 더욱 확산되었다. 이를 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의 취약한 권력 기반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연합정권이었던 김대중 정부와 달리, 노무현 정부는 단독정권으로서 인적 자원의 가용 폭이 상대적으로 좁았다. 그마저도 386세대 등이 신주류로 올라서면서, 김대중 정부 일각을 구성했던 세력(동교동계 등)이 이탈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거버넌스 모델은 필연적이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위원회공화국’, ‘삼성공화국’이라는 비판은 역설적으로 거버넌스 모델의 확산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이 정부 위원회에 다수 참여했으며, 삼성으로 상징되는 대기업들의 경영 방법론이 국정에 반영되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경제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대두되면서 기술혁신 요구가 높아졌다.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이다.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국의 추격 사이에서 국가 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선진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핸드폰 등 주요 수출산업에서 기술 독점 및 특허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 등은 값싼 노동력과 첨단 기술력을 결합하여 우리나라를 추격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의 위기에서 벗어나 국민소득 20,000달러 시대로 진입하려면 신성장동력 발굴과 산업구조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s)가 과학기술정책의 새로운 틀로 각광받았다. 국가혁신체제론은 혁신의 동력이 관련자들의 연관성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따라서 혁신과 기술진보는 지식을 생산, 유통, 적용하는 이들 간 복잡한 관계의 결과물이 된다. 여기에는 민간 기업을 필두로 대학과 공공연구소 등이 핵심 참여자로 기능한다. 혁신이 활발해지려면 국가가 지식 생성 및 사용의 집합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행위자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OECD, 1997). 특히 국가혁신체제론은 과학기술정책이 통상적인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산업, 인력양성 등 경제의 혁신 활동 전반을 포괄하는 데 이론적 자원을 제공했다(천세봉, 2017). 이러한 접근법은 주체 간 협업과 역할 분담을 중시하는 거버넌스 모델도 밀접히 연관되었다.

[그림] 노무현 정부의 국가혁신시스템 선순환 구조 (출처: 재정경제부 외, 2003)

    

조직: 국가혁신체제의 토대 마련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과학기술 조직체계를 계승하면서 기능적 범위는 더욱 확대했다. 즉 기본 방향성은 유사하지만, 실질적인 구현의 수준은 그보다 더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과학기술 부총리제 도입을 들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했지만, 장관을 부총리로 임명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본래 과학기술처 장관의 부총리 겸직은 박정희 정부 때부터 구상되었다. 그러나 특정 부처에 지나치게 힘이 쏠리면서 일어날 내부 갈등 우려 때문에 실현되지는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 좌초된 구상을 30여 년 만에 복원했다.

     

과학기술 부총리는 R&D의 부처별 중복 최소화 및 고유 역할 집중을 주도했다. 이전까지 정부의 중장기 R&D 계획은 17개 부처에 80여 개에 달하였다. 따라서 이 계획들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한정된 예산과 연계시키는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다. 과학기술 부총리가 그 이니셔티브를 맡았다. 이로써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 관련 인력양성, 지역혁신, 산업정책 등의 종합적 조정 기능을 갖췄다. 기존 과학기술처는 연구개발 집행 부처의 하나로서만 기능해 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혁신체제 관점에서 포괄하는 정책 범위를 더욱 키웠다고 할 수 있다(임상규, 2006).

참여정부는 30여 년 전 구상되었던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도입했다. 오명 초대 부총리는 전형적인 기술관료로서 전두환 정부 때부터 굵직한 과학기술 사업들을 총괄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기능과 규모도 키웠다. 김대중 정부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했으나, 명실상부한 범부처 총괄 역할을 맡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R&D 예산 편성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설계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기능은 더욱 강화했다. 특히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R&D 사업 예산 조정·배분권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심의 결과를 반영하여 국가R&D 사업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였다. 이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른 것으로 유일하게 기획예산처 예산편성권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다(임상규, 2006). 위원회 규모도 이전보다 커졌다. 산하에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특별위원회와 소위원회들이 다수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에는 대학교수, 기업연구원, 시민단체 활동가 등 전문가 130여 명이 참여했다.

     

과학기술부의 총괄조정을 지원하는 전문 조직으로 과학기술혁신본부도 신설했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전통적 과학기술정책의 범주를 넘어 인재, 산업, 일자리 등 다양한 의제를 혁신체제 관점에서 다루었다. 따라서 여타의 공무원 조직과는 다르게 운영되었다. 우선 인적 구성부터 차별성을 두었다. 과학기술부, 타 부처, 민간의 참여 비율을 4:4:2로 하고, 여러 경로로 후보자들을 추천받아 정예인력을 선발했다. 또한 공모를 통해 민간 전문가를 겸직, 계약직, 특채 등의 방식으로 채용했다. 이로써 100명이 넘는 전문가가 모여 R&D 예산 조정·배분 실무를 전담했다. 그로 인한 변화는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표] 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 전후 R&D 예산 조정체계 비교 (출처: 과학기술혁신본부, 2005에서 재구성)


정책: 사회운영원리로서 과학기술 중심성 강조

    

노무현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총론적 방향은 ‘과학기술중심사회’로 집약된다. 이는 단순히 과학기술정책을 통해 연구개발 성과를 높인다는 목표에 머무르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경제, 산업, 교육 등에 파급력을 미치는 사회의 중심 원리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볼 때 과학기술중심사회란 과학기술이 지속가능한 국가발전과 사회진보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사회를 지칭한다. 이러한 목적에서 과학기술중심사회추진기획단(단장: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사무처에 두었으며, 별도의 자문단(과학기술중심사회추진위원회)도 설치했다.

     

과학기술중심사회 구현의 핵심 청사진으로서 국가기술혁신체계(NIS)도 구축하였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과학기술중심사회추진기획단, 과학기술부 등이 주축이 되어 총 5개 분야에 30개 중점추진과제와 66개 세부과제를 도출했다. 과학기술부는 물론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교육부 등이 참여한 이 과제들은 노무현 정부 혁신정책의 기본 골격을 이루었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물론 교육, 산업, 일자리, 문화 등의 경제·사회영역을 넓게 포괄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림] 국가기술혁신체계 5대 분야별 주요 성과 (출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2008)

국가전략과학기술도 발굴했다. 국가전략과학기술의 필요성은 국가R&D 사업을 경제·사회 상황과 연계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제기되었다.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과학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국가전략과학기술 개발이 노무현 정부 과학기술기본계획의 첫 번째 추진과제로 명시되었으며, 다섯 가지 영역으로 구체화되었다(재정경제부 외, 2003). 이 기술들은 지식정보, 생명, 환경, 에너지, 신산업 등 2000년대 들어 떠오른 난제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여 도출되었다.


제도: 혁신동력의 창출 지원

    

과학기술 관련 제도들도 국가혁신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재정비되었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방향으로 요약된다.

     

첫째로 국가R&D 사업의 투자 체계를 전략화, 효율화하였다. 이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R&D 예산 조정·배분 권한을 귀속시키면서 일어난 제도적 효과이기도 하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범부처 사업조정을 주도하면서 R&D 우선순위 설정에 전략적 판단이 중요해졌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 내에 9개 분야(기초과학, 정보전자, 기계, 부품·소재, 국방, 생명, 해양, 에너지·자원, 환경, 기상) 전문위원회를 두어 사업 타당성을 판단하게 하였다.

     

그 결과 R&D 사업의 심의 기간이 3배 늘어나는 등 과거보다 심층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게 되었다(임상규, 2006). 이를 통해 다부처 공동추진 사업, 대형연구시설·장비구축사업 등에서도 전문성에 기초한 투자 효율화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신규 R&D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 절차도 도입했다. 총사업비 100억 원 이상 신규사업은 예산요구 이전에 기술기획이 의무화되었으며, 500억 원 이상 사업은 사전타당성 조사 대상이 되도록 하였다.

     

둘째로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범부처 협력 사업을 확대했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2000년대 초반은 외환위기의 급한 불을 끄면서 국민경제의 질적 전환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던 시기다. 따라서 기술혁신을 통한 새로운 먹거리 발굴, 산업구조 고도화 등의 담론이 활발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 ‘제2의 과학기술 입국’, ‘동북아 R&D 허브 구축’ 등 구상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 등 8개 부처가 공동으로 ‘차세대성장동력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의 시행 동기는 5~10년 후의 미래 먹거리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각료들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에 있었다. 본래 정부 차원의 신성장동력 논의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있었다. 그 결과물이 과학기술기본계획에 ‘6T 미래유망 신기술’로 포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전면 수정되면서 이를 주요 부처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으로 재구성하였다. 사업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도 함께 도입되었다. 이 사업 관련 대기업의 출자총액 제한 제도 적용을 배제하고, 수도권 성장관리 지역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과 국내 대기업에 대해 첨단 업종 증설을 일부 허용하였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17).

     

이와 함께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미래 유망기술도 발굴하였다. 차세대성장동력사업이 5~10년 내의 기술 개발을 목표로 했다면, 이 사업은 10년 이상 장기 전망의 기술들이 대상이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예측조사(2005∼2030)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국가유망기술 21’을 선정하였다. 이는 국가적으로 예상되는 미래 필요 기술을 사회적 수요 분석을 통해 도출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셋째로 국가R&D 성과평가와 성과관리 제도를 재정비하였다. 이는 국가R&D 사업이 대규모화한 만큼 체계적 관리도 어려워진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사업의 평가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다양한 사업들에서 발생하는 성과들의 관리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2005년 제정된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의 평가 및 성과관리에 관한 법률’은 각 개별법에 산재한 성과평가 및 성과관리 제도를 종합했다. 이로써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수립한 가이드라인(기본계획 및 실시계획)에 따라 부처별로 일관되게 평가를 하고, 성과의 관리·활용에 있어 통일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임상규, 2006).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김대중 정부의 그것을 계승 및 심화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별칭인 ‘참여정부’ 자체가 거버넌스와 동의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또한 과학기술과 산업, 교육, 고용 등을 하나로 묶는 국가혁신체제가 본격화되었다. 거버넌스는 이러한 연계성과 포괄성 구현에 적합한 조직 원리였다. 그만큼 넓은 영역에 걸쳐 다양한 전문가들의 동참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동하는 최종 심급에는 여전히 국가가 있었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국가에서 시민사회로 ‘권한의 이양’에 있다. 그런데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도입된 다양한 위원회와 사업들이 정말 권한 이양의 주체가 되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서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테제들은 대부분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거버넌스의 개념적 모호함은 이러한 외양과 실재의 괴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참고 문헌

과학기술정보통신부(2017), 「과학기술 50년사」

과학기술혁신본부(2005), 「신과학기술행정체제의 운영 방향」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2008), 「선진한국을 위한 국가기술혁신체계(NIS) 구축」

임상규(2006), “우리나라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진화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재정경제부 외(2003), 「참여정부의 과학기술기본계획」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003),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백서 : 대화」

천세봉(2017), “과학기술정책 거버넌스 분석: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한국거버넌스학회보》 제24권 3호, 한국거버넌스학회.

Held, D.(2006), Models of Democracy, Stanford University Press.

OECD(1997), National Innovation Systems, OECD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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