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Jan 08. 2024

덧붙인 비누, 바닥을 드러낸 폼 클렌징. 중년 이후.

어제저녁, 샤워를 하던 도중 세안을 위해 찾은 폼클렌징. 쭈그러지도록 꺾인 폼클렌징을 보고 쥐어짜보려 노력하다 갑자기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하고, 비누칠을 하려 보게 된 비누에서도 잠시 생각에 듭니다. 순간 제가 조증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폼 클렌징

세안을 하기 위해 바닥을 드러낸 폼 클렌징을 손에 들고 밑부분을 쥐어짜 봅니다. 더럽게 안 나오더라고요. 온 힘을 다해 쥐어짠 폼 클렌징으로 세안을 했습니다. 손가락 끝이 빨개질 정도로 힘껏 쥐어짰습니다.


세안을 마치고 한껏 쭈그러진 폼 클렌징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안타까워 보입니다. 처음 샀을 때는 엄청 빵빵해서 조금만 눌러도 쭉쭉 잘 나오던 녀석이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온 힘을 내어 쥐어짜도 비실비실 뱉어냅니다.


마치 생명력을 다 한 직장인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예전 원하지 않았던 퇴사를 당하신 선배, 상사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도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았을 텐데 말이죠.


한껏 쥐어짰는데 내뱉는 건 소량의 결과물. 마치 우리 인생의 단편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조금만 눌러도 빵빵하니 잘 나오던 새 제품은 20대, 30대.

적당한 압력에도 술술 나오던 반쯤 쓴 제품은 40대.

힘껏 쥐어짜도 내뱉는 양이 소량이 되어버린 제품은 50대 혹은 그 이후.


마치 우리 같지 않습니까? ㅎㅎ 저만 그런 건가요.

(사실, 가위로 잘랐으면 조금 더 편하게 썼을 텐데 가위 가지러 나가기 귀찮았습니다.)



덧붙인 비누

위 사진 오른쪽에 보면 비누가 덧붙여 있죠? 저는 비누를 항상 이런 식으로 씁니다. 대부분이 이렇게 사용하실 거 같네요. 조그마하게 남은 조각비누를 버리기 아까워하는 아내로부터 얻게 된 습관입니다.


세안을 끝내고 비누칠을 하려고 문득 보게 된 비누를 보며 또다시 생각이 듭니다.

힘껏 쥐어짜 낸 폼 클렌징처럼 작은 조각이 된 비누가 마치 중년 이후의 우리의 모습 같다고.


나이 들고 일머리가 예전 같지 않아 지면 30대, 40대들이 주도하는 일에 끼워지게 되는 게 현실이니까요.

물론, 은퇴 직전까지 빛나는 아이디어와 일머리를 뽐내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겁니다. 아주 극소수.


덧붙인 비누가 마치, 젊고 패기 가득한 30대, 40대의 등에 얹혀서 살아가는 50대 혹은 그에 가까워진 우리의 모습처럼 보이게 된 건 우연이겠죠?



어제 예전 선배의 안부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자유인으로 사는 삶에 만족하냐며.

20대, 30대 시절 제가 너무나 따랐던 그 선배이자 상사.

일도 잘했고, 윗분들의 신임을 얻던 분이라 계속 승승장구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50이 다 된 그 선배가 생전처음으로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더라고요.


"모든 방향을 다 계산해 보아도 이 자리에서 벗어날 방법이 안 보인다."


그분은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일을 어느 정도 잘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본인은 어딜 가져다 놓아도 잘할 자신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사람이었어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어요.


팀장을 원한다고 윗사람에게 몇 번 얘기해 보았지만,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지금 여기서 잘 되어봐야 x부장이라고요.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제가 따르던 뭘 해도 잘할 거 같던 선배에게 저런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폼 클렌징과 비누가 그렇게나 안타깝게 보이더라고요.


"누가 누굴 걱정해.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칙쇼!

이전 09화 16년 다닌 직장 퇴사하고 글 쓴다니 웃는 녀석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