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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매거진 Jul 08. 2020

세 여자가 담지은 이야기3

[힘쓰기] 다했어 이제 못만 한 1000개 박으면 돼 ^^




주춧돌은 어떻게 심었어?


펑션     처음에는 땅 파는 데도 속도가 안 나고, 돌도 안 빠지니까 둘이 이건 다져진 땅이라고. 그냥 땅 위에 세우라고. 둘이 정말 진지했어.


아햍먼 쑥     (웃음)


아햍먼     그 주춧돌이 정말로 무거워서 태풍이 와도 안 넘어갈 것 같았어. 지식의 부족인 거지.


     그리고 사실 우리가 너무 힘드니까. (웃음) 힘들면 빨리 수정하는 편이잖아.



step 1. 주춧돌 심기 / step 2. 주춧돌에 나무기둥 박기 / step 3. 나무판자 박기


펑션     그러다가 결국엔 파기로 했는데 파면서도 갈등이 있었어. 나는 더 깊이 파야 된다. 돌이 안 보이게 해야 한다.


     우리는 3분의 2 정도면 된다.


펑션     3분의 2도 아니야. 2분의 1!


아햍먼     사실, 그냥 파였다는 거에 만족했어.


펑션     어려웠던 게, 주춧돌을 심으려면 파인 땅의 깊이가 모두 수평이 맞아야 하는데, 땅마다 잘 파이는 땅이 있고 안 파이는 땅이 있어서 높이가 다 달랐어. 그걸 맞추면서 조금 더 파고, 영 안되면 너무 깊게 파인 부분을 덜 파인 부분에 맞추고 그렇게 해서 먼저 땅의 수평을 다 맞췄지.


또, 주춧돌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고 주춧돌이 직선상에 위치했어야 했기 때문에, 줄자로 다 재고 시멘트 바닥에 연필을 그어놓는 작업도 필요했어.


아햍먼     생각해보면, 조금만 틀어져도 우리는 다시 줄자로 재고, 다시 연필로 긋고 그렇게 했었잖아. 그 결과, 우리 담이 남이 봤을 때 굉장히 간격이 일정하고 길이도 딱 맞잖아. 하지만 이런 디테일한 부분들은 전문가를 불렀을 때 만족스럽지 못했을 거라는 거야. 만약에 300M인데 끝에 20M 남았다고 했을 때 남겨두면 안 예쁘잖아. 하지만 전문가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괜찮지.’ 하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



주춧돌에 나무 기둥은 어떻게 세웠어?


아햍먼     일단, 머리를 엄청 굴리면서 개수나 길이 같은 것에 대해 계산을 완벽하게 했어. 그다음에 주춧돌에 나무 기둥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먼저, 기둥을 주춧돌에 끼워서 구멍에 연필로 동그랗게 표시를 한 다음에 엄마가 드릴로 뚫었어. 그런데 요령이 없어서 엄마 팔이 거의 나갈 뻔했지.


펑션     이게 뭐가 어렵냐면, 그 구멍으로 들어가서 그 구멍으로 안 나오는 거야 계속.


쑥 아햍먼     맞아 (웃음)


펑션     근데 어쩔 수 없었지.

음같이 안돼.

     그게 그 구멍으로 들어가서 그 구멍으로 나오려면 손목에 힘을 엄청 주고 있어야 돼. 수직으로 뚫어야 되니까. 드릴이 다른 방향으로 안 가게.



펑션     이 작업은 어렵기도, 중요하기도 했어. 왜냐하면 기둥을 세워서 볼트를 끼웠을 때 나무 기둥끼리 수평이 맞아야 되잖아. 주춧돌은 잘 심었어도 나무 기둥이 잘못 세워지면 다시 수평이 안 맞아.


아햍먼     그래서 엄마가 볼트 너트 박으면 우리가 수평이 안 맞는 것들은 주춧돌을 들어서 흙을 다시 파거나 흙을 넣어서 보완했지.  


 

나무판자를 박아서 담을 완성하는 과정은 어땠어?


아햍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계산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하고. 전 단계들도 잘 해놔서 그런지 문제가 없었던 것 같아.


펑션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잘한 점이라고 하면, 판자를 정확한 간격으로 박은 것 같아. 사람 눈높이에서 보면 담을 내려다보게 되니까 헷갈려. 하지만 우리는 줄자로 길이를 일정하게 재서 박을 위치에 연필로 다 표시를 해놨지. 그다음에 판자 하나하나 박을 때마다 눈높이를 맞춰서 확인하고.



어느덧 공사가 많이 진행된 시점이 되었는데, 힘들지는 않았어?


아햍먼     이때도 힘들었어. 힘들기는. 육체적인 힘듦이 있었어. 그래서 케이크를 한판씩 먹기 시작했지.


펑션     나는 사실 정혈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두 사람이 조금 못 미더워서 (웃음) 쉴 수가 없었어. 쉬다가 일어나서 확인하면 담이 완전히 어긋나게 박혀있을 것 같았어.


     나무판자를 박는 건 3일 만에 다했어. 힘들 수밖에…


아햍먼     이 디자인이 예쁜데 사람들이 안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야. 왜냐면 수평을 계속 재야하니까. 하나 박을 때마다 수평 재고. 그걸 누가 해주겠냐고. 사람들이 많이 하는 방식대로 세로로 박으면 수평을 잴 이유가 없어. 그런데 이거는 수평이 위아래 간격, 튼튼함, 디자인적으로 모두 연관이 있는 거니까 중요할 수밖에 없지.


펑션     머리도 엄청 썼고 노력도 많이 했고. 뭔가 역작이지.




 담을 다 짓고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 주변 사람들의 반응


    담을 다 짓고 얼마 있다가 집 지어준 아저씨가 올 일이 있었는데, 와서 “이거 누가 했어요? 얼마에 했어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야. 내가 “우리가 했어요.”라고 했더니, 처음엔 놀라다가 하는 말이 뭔 줄 알아? “나 같으면 이렇게 안 하는데. 한 군데로 다 박지. 왜 이렇게 어렵게 했어요. 품이 배가 드는데.” 그걸 듣고 안 맡기길 잘했다 생각했어. 결국 그 사람들은 힘든 건 안 한다는 거야.


반면에, 설계일을 하는 엄마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는 “야 담 높이가 너무 적당해. 너무 높아도 굉장히 답답해 보이고, 너무 낮아도 담같이 안 보이는데 높이가 이 정도 되는 게 굉장히 좋다. 담 되게 예쁘다.” 그랬어. 단순 전문가들만의 차이는 아닌 것 같아. 그들은 뭔가 지적하고 싶거나, 우리의 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 아닐까?


아햍먼     내가 이거 블로그에 올렸잖아. 내 친구들의 반응이 어땠냐면 “난 절대 못해.” 였어. 내가 “아니 근데 막상 하면 할 수 있고, 비용도 거의 4분의 1이 줄었다.”라고 했는데도, 다들 “난 그래도 그냥 비싼 돈 주고 했을 거야.”라는 거야. 왜 이렇게 다들 겁을 먹을까? 누가 여자에게 겁을 줬을까? 그런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어.


     동네에서 산책하시는 분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앞집 아저씨가 나와서 이 집 담에 대해 설명을 하셔. 이거 이 집 사는 엄마랑 딸들이랑 했다. 그렇게 자랑처럼.


펑션     생각해보면 그런 긍정적인 힘을 전달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 그 아저씨가 내 자식이 한 것처럼 그렇게 기특해하고, 여자 셋이 담을 지은 우리의 이야기가 (희소하기 때문에) 자랑거리처럼, 이슈거리로 돌아다니잖아. 그게 얼마나 좋은 에너지야. 우리가 실제로 했다는 걸 알면, 담을 짓는 게 어렵지 않은 것도 자연히 알 수 있는 거지.


아햍먼     그리고 그런 말도 있잖아.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그릇이 깨진다.”, “니들이 뭐 떠들기만 하지 뭘 하겠어.” 이런 시선도 있고.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처음에 안 믿었어. “니들이 뭘 담을 지어.” 그랬어. 다 지은 걸 보고는 또다시 독한 년들이라고. (웃음)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우리도 몰랐던 우리


펑션     난 담이 완성되고, 수평이 잘 맞아서 정말 예쁘니까, 스스로 능력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 사실 내가 남들보다 꼼꼼하다는 거 체감을 못했어. 꼼꼼하다고 하기에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허술한 점이 너무 많으니까 꼼꼼하다는 생각을 못 했던 거야. 그런데 담을 짓고 나서, 엄마랑 언니랑 칭찬해 주고 담이라는 결과물이 내 눈에 보이니까. 그제서야 내가 이런 것에 좀 소질이 있구나.


그리고 이게 내 대학생활에서도 영향을 분명히 줬던 거 같아.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꼼꼼하고 계획적이고 결과를 보장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나에게 생긴 거야. 그래서 팀플을 하거나, 대회 준비를 할 때, 팀원들에게 당당하게 (결과를 위해)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게 되었어. 왜냐하면 나무판자를 박으면서 내가 수평을 맞추길 주장할 때 엄마랑 언니랑 짜증을 많이 내다가, 담을 다 짓고 나서는 나에게 칭찬을 해주는 경험을 직접 겪었으니까. ‘아, 팀원들이 지금은 힘들더라도 나중에 분명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가 안겨줄 수 있구나. 그게 맞는 일이구나.’ 이런 확신이 나한테 생긴 거지.


아햍먼     나도 ‘내가 이렇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걸 잘하는구나.’하고 다시 한번 깨달았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상상력이 되게 좋았는데 내 생각을 남한테 이야기하면 “아… 그게 되겠어?”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었어. 내가 뭔가 한다고 했을 때 의아해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이었다는 거지.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게 이런 거 아닐까? 8일 만에 여자 셋이 담 짓는 걸 아무도 본 적이 없잖아.


근데 결국 했잖아. 내가 원래도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실행력이 있어.’ 그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 잊고 살다가 담을 짓고 다시 되새길 수 있었어. ‘맞아. 난 이런 사람이었지.’  


     엄마는 직장 생활을 오래 했잖아. 그런데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잘 모르고 살았어. 어떤 업무가 누군가에 의해 주어져서, 그 업무를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건, 내가 잘하는 걸 하는 게 아니고, ‘해야 하는 일을’ 돈을 위해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 능력을 발견하고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직장 내에서는 거의 없는 거야.


아햍먼     그런 사회적 구조지.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세뇌 받고 자라왔고. (사회가 부여하는 여성상에 맞춰 수동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본인을 잘 알지 못하도록. 그래서 스스로 뭘 잘하는지, 어떤 식으로 역량을 펼쳐야 하는지 모르는 여성들이 많은 것 같아.



- 그저 ‘평범한’ 여자 셋


아햍먼     사실 전공자 한 명도 없고, 진짜 노베이스 노지식에다가. 체력 특히 뛰어난 사람 있어? 체대를 갔거나, 키가 크거나 근육이 많이 있거나, 과거 건설회사에서 근무했거나. 없잖아.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 평범한 여자 셋이서 지은 거라서 정말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우리가 특별해서 잘 지은 게 아니라는 거지.


     맞아. 그러면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왜 항상 배제당할까? 예를 들어, 여기에 아빠가 꼈거나 아들이 꼈거나 했으면 그 사람 위주로 돌아간다는 거야.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남자가 하자는 대로, 시키는 대로, 보조를 하거나 차를 타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잖아. 내가 의견을 내고 싶어도 ‘나는 잘 모르는데 시키는 거 하는 게 맞겠지.’(하는 생각을 했을 거야)


펑션     왜냐하면 남자들은 육체적인 것을 접할 기회가 우리보다 많거든. 하다못해 축구를 해도 한 번이라도 더 했잖아. 게다가 그들은 사회구조적으로 대부분 자신감 있게 자랄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자신이 있겠어. 그에 반해 우리는 겁부터 내고 보잖아. 특히 이런 육체적인 부분에서는. 그렇게 되면 자신 있는 남자 위주로 갈 수밖에 없어. 그러면 우리는 또 기회를 잃는 거야.


생각보다 너무 겁을 먹었다는 거야. 결국에는. 불가능은 아니잖아.




- 전하고 싶은 이야기


     어느 유튜버를 봤는데, 건설업에서 자신이 남자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존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엄마는 그 사람이 되게 존경스러웠어. 사람들에게 (여성이 남성의 위치를 차지하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게 멋있어 보이는 거야.


아햍먼     같은 맥락에서 우리 셋이서 담을 만든 이 이야기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는 게, 우리가 처음에 담 지으려고 유튜브 보고, 블로그 찾아봤을 때, 후기가 없었어. 나는 이게 중요한 게, 철물점 아저씨, 자재 가게 아저씨가 나중에 혹시라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왔을 때, ‘아 그런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라는 거야.


     엄마도 여자들끼리 무언가를 해내고, 결과물이 눈으로 보이는 게 굉장히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 그 결과물들을 보고 이 세상에 사는 다른 여자들도 용기를 내서 ‘해볼까?’,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결과물이 나오는 것만 해도 가치 있는데,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한테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잖아.


아햍먼     보이는 것,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엄청 떠들어대도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 그때 실제로 이룬 것을 보여준다면 ‘아 진짜로 했구나.’ 하면서 신뢰와 동반된 어떤 가슴 뜀을 느낄 수 있다는 거지.


펑션     나는 그런 걸 말하고 싶어. 세상이 여성에게 거는 제약이 많잖아. 그런데 그 제약까지 다 뚫어버리라는 얘기는 절대 아냐. 하지만 겁을 먹고 못하는 부분이 있어. 물론 그것도 사회가 만들어낸 제약이지. 하지만 겁을 먹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로 인해 겁을 상실해버릴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가 (구조적 부분에 부딪히지 않는) 담 정도는 지을 수 있다는 거지.  



- 우리는 우리가 필요했어


펑션     이 잡지의 타이틀이 ‘우리는 우리가 필요했어’잖아. 그 말은 우리가 (아직은) 담이라는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일 수 있지만, 이렇게 실물로 보이는,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로 나타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해라는 얘기이기도 해.


사실 우리가 우리를 너무 모르고 있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여성들이 여성에 대해서, 여성이 해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고, 그래서 (여성에 대해) 나타낼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고, 내가 이런 걸 해냈고, 이런 결과가 나에게 있다.’라는 ‘우리는 ---다.’라는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거지. 그게 우리에게는 담이었고, 지금은 잡지이고. 그게 여성이 여성을 알아가는 과정 아닐까. 사실, 여성은 진짜 여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우리가 지은 담.



세 여자가 담지은 이야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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