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문득 '개와 사람이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 같은 놈'과 '개보다 못한 놈' 중 어떤 말이 나쁜 말일까?
'개는 나쁜 개와 좋은 개가 있을까?'
별로 없어 보인다. 개의 크기, 모양, 성향 등의 차이는 있어 보이지만 나쁜 개와 좋은 개를 구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개와 사람이 다른 점은 사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 같은 놈'은 욕 같지 않은데 '개보다 못한 놈'은 욕이랑 가까워 보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으로 태어나 버렸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게 되고 심지어 '왜 사는가?'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떨까'라고 염병을 하며
심어어 '죽음 이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서 사람을 겁박하기도 한다.'
개의 행복(물론 개는 행복에 대해 사고하지는 않지만)과 사람의 행복은 어떻게 다를까?
(물론 개가 되어 보지 않아서 단정할 수는 없으나) 개는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행복도 그리 다르지 않은데 한 가지가 추가된다. '남보다 더', '남을 짓밟고', '남을 이용하여' 등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늘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이용한다는 조건이 추가가 된다.
이런 조건은 사회와 국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뛰어놀 공간은 '부동산 소유권 제도'를 만들어 아무나 뛰어놀지 못하게 만들었고 감자, 고구마, 딸기, 상추, 부추, 마늘, 배추, 사과, 감, 드룹, 블루베리를 키울 수 있는 땅이 없는 도시에서는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고 이것들을 사 먹기 위해서 남의 공장에 가서 하루 종일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놀 시간도 없다.
사람이 가진 뛰어난 사고의 능력이 형벌이 아니라 '축복'이 되려면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사랑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개처럼... 그리고 '축복'은 남보다 더, 남을 이용해서, 남을 짓밟는데 쓸 것이 아니라 모두가 더 개처럼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혹 미친개가 착한 개들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국가는 착한 개들의 기본적인 욕구, 동물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환경을 유지해 주기 위해 착한 개들이 만든 가상의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지 욕심부리지 말고 착한 개들을 보호하고 잘 뛰어놀 수 있게 하라고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국가와 요즘의 정부와 요즘의 대통령은 미쳐 날뛰는 개들을 오히려 보호하고 자기와 자기 주변의 미친개들이 더 잘 먹고 잘 살도록 하기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개보다 못하다'라고 표현한다.
착한 개들은 통치자 개에게 의무를 부과하였고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권한을 주었을 뿐 착한 개들을 지배할 권리를 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