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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Oct 17. 2023

어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어른
1.    명사.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명사.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명사. 결혼을 한 사람.  


1번,  2번의 객관적 요소는 갖추었으나(갖추었다고 생각했으나), 3번의 요소를 갖추지 못했군.


유부녀가 되고 싶어졌다.


유부녀가 되면 정말 어른으로서 봐줄 줄 알았다. 역시 어른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휘둘렸으니까.


끊임없이 내 고유한 존엄성을 넘나들며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결혼과 출산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이야기할 줄 알고 책임질(누가 나를 책임져주는 것이 아니라)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도 아이를 낳고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물론 개인에게만 오로지 책임과 해결을 구해서는 안되며 그럴 수도 없다. 사회 역시 제도적 책임을 다하며 서로 상호작용하며 나아간다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은 초등학생 딸이다. 주어진 숙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려 하고, 달성이 힘들어 보이는 경우, 협상을 위한 발을 슬쩍 뻗쳐온다. 스스로를 위해 이야기할 수 있고 조정할 용기를 내는 것. 타인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그 타인에 스스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어른으로 본다면 너는 이미 어른이다.


우리를 동료로서 대하지 못했던 그분들 역시 어른은 아니었다. 27살의 어린 상사가 느꼈을 좌절감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 이후로 아무 일 없었던 척, 모르는 척 한참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아무것도 모를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그들은 아마도 꿈에도 생각도 못할 수도 있겠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들리기 어려우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마음의 안도감이 그 해방을 도왔고 그 잘못으로 그들이 갖는 다른 장점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기약 없이 미워하지 않아도 될 합리적 이유도 찾았다.


자책하는 마음(상사로서 역할을 못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 그때 이야기했어야 그분들이 다른 분들에게는 그런 실수를 안 할 텐데 하는 마음도)과 미워하는 마음을 안고 살기에는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로 인해 허비할 마음이 아쉽기도 하고, 그 일로 인해 몇 년 동안 고민을 되새기며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 십오 년이 흘러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처한 상황이었지만. 오랫동안 시뮬레이션해오지 않았던가. 용기를 내자.


“동료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생각이 들어 괴롭습니다.”


 상대가 진심을 다해 사과해 왔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아 감개가 무량할 지경이었다. 스스로를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 대견했고, 그것이 불편한 것이라는 것을 서로가 인지할 수 있게 사회가 또 제도가 발전해 온 것이 감사했다.(이 용기조차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테다)


변화하는 사회와 마음의 방향을 함께 하기로 진심을 담아 준 그분께도 감사했다. 십여 년을 쌓아서야 겨우 내뱉었던 첫 용기가 무색하지 않게 지지해 주신 것이나 다름없으니까(그리고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분은 사과하셨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내가 미안할 정도로).


이 마음을 빌려드린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보수적이건 진보적이건 혼자서만 용기를 낸다고 해피엔딩이 되는 것은 아닐 때도 많으니까.



물론 모든 경우 이렇게 아름다운 결말을 맞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어른이어야겠다. 어른도 잘못을 하지만 어른이라면 잘못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할 테니까.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닌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사회와 제도가 있는 거겠지. 그래서 공무원이 필요한 것 아니던가. 그래서 공무원이 되었던 거다.




(* 유부녀가 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마법 같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을 생각하는 친구들을 위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는 번외로 남겨둬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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