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약 20여 년의 경력 차와 무엇보다 경험 있는 여섯 분 과장님들 틈바구니 속에서 아무리 머리를 말고 은갈치 정장옷에 하이힐을 신어도 경험과 연륜을 따라잡기는 만무했다.
이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생물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한 분들의 마음도 이해되지만, 나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스며들거나 그저 경계인으로 서성이다 떠날 시간을 기다리는 것. 둘 중 하나였다. 어떻게 주어진 기회인데 그저 떠다니다 흘러가버리기에는 아까운 시간 아닌가(우리는 모두 어렵게 태어났다.) 좋든 나쁘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야 말아야 했다.
하루는 우리 서가 속한 지역을 관리하는 나이 지긋하신, 곧 퇴직을 앞두셨던 직원분께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셨다. 다양한 분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싶은 상황에서 굳이 본인의 시간을 내서 식사를 하자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간 자리에는 그분 혼자였다. 첫 식사 자리라 단 둘이 먹기에는 대화 소재도 그렇고 이 시간을 어떻게 메워야 하나 걱정스러웠지만. 귀여운 고민도 잠시.
저녁을 다 먹고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지자 마사지 샵에 가자고 하셨다. 처음 식사한 동료와 둘이서 가기에는 아직 사회생활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가 있나 한참을 생각하다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정도까지의 마음 확장은 어려워 마사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어느 사회집단에서든 있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들었던 일들에 비하면 웃어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일화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 시대를 지나온 그 분께는 선의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나이 많은 상급자여도 그랬을까.
뭘 잘못했나 곰곰이 돌아봤다. 아주 한참을. (혹시나 지금 고민 중일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 직원분의 선의였다면 왜곡된 채로 혹시나 나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한마디지만 그분께는 치명타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했다.
나이와 성별 등 다양한 구조적 배경 하에서 주어진 자리가 개인을 모두 지켜주지는 않았다. 이 자리도 그럴진대 다른 직원들은 어떨까.
믿었던 동료에게 동료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나이를 먹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리고, 성별은 바꿀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