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이상하지?”
"나 좀 이상하지?"
너의 말은 항상 이렇게 끝났다. 어제저녁에 당근이랑 오이를 같이 먹고 싶어서 그 두 가지만 들어간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고 말하면서, 오늘 아침 갑자기 파리의 날씨가 궁금해 검색했더니 서울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하면서, 꼭 마지막에 자기가 좀 이상하냐고 물었다. 그건 물음이면서 동시에 확신에 찬 말이기도 했다. 너는 언제나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나와 비슷한 점을 찾게 되면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몇 초가 흘러가면 어김없이 나와 다른 부분을 찾아내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나 미용실 안 간지 엄청 오래됐다."
"그래? 나 내일 가는데 너도 갈래? 전에 머리 자르고 싶다 했잖아."
"아냐 난 됐어. 직접 자를 거야. 어제 미용 가위도 샀어."
"앞머리만 자르는 게 아니고, 뒷머리까지 다?"
"응! 재밌을 거 같은데. 나 좀 이상한가?"
사실 한 번도 너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이상하냐는 너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 본 적이 없었다. 김밥에 뭔가를 넣어 먹었다는 말 중에서, 지구 반대편 도시의 날씨가 궁금하다는 말 중에서, 자기 머리카락을 자기가 자르겠다는 말 중에서, 콕 집어서 어떤 점이 이상하다는 건지 알아챌 수 없었다. 너는 그냥 이상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초등학생 때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중학생이 되자 성우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은 그 꿈들이 다 사라지고 '아무나'가 되고 싶은 것처럼. 너도 그냥 언젠가부터 이상한 존재가 되기를 꿈꿔 온 사람인 걸까.
한번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끝없이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너는 꽤 깊이 잠에 들었다. 덜컹. 방지턱 앞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버스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곧 휴게소에 도착했고 나는 너의 어깨에 손을 대고 살짝 흔들어 깨웠다. 눈을 크게 깜박이며 잠에서 깬 너는 꿈을 꿨다고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호두과자를 사 먹으며 우리는 네가 꿨다는 그 꿈 얘기를 했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두 눈을 굴리며 꿈 얘기를 해 주는 너를 보며, 영화관에서 먹는 팝콘처럼 호두과자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목이 텁텁해 음료도 사서 마셨다. 그러는 동안 너는 계속 꿈 얘기를 했다. 호두과자를 권해도 음료를 건네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신나서 계속 말을 이어가는 너를 보며 나는 계속 호두과자를 씹었고 음료와 함께 넘겼다.
"휴게소에서 아무것도 안 먹는 거 좀 이상하지?"
마지막 남은 호두과자 3개를 모두 털어 넣어 입안 가득 씹고 있느라 미처 대답은 못하고 두 눈만 똥그랗게 뜨고 있는 나에게 너는 계속해서 말했다.
"되게 어릴 때부터 그랬어. 엄마도 아빠도 다 먹는데 나만 안 먹었어. 다 나보고 이상하대. 좀 이상한가 봐 그렇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기도, 양옆으로 흔들기도 뭐 해서 그냥 어깨를 한번 으쓱 들었다 내렸다. 양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너의 두 눈이 슬퍼 보였다. 이상하다고 말할 때마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오히려 즐거워 보이던 너였는데. 이번엔 왠지 달랐다. 조금씩 두 눈이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너는 급하게 왼쪽 손목을 돌려 시계를 보더니 우리가 늦었다고 말했다. 사실 버스는 눈에 보이는 가까운 곳에 있었고 조금 빠르게 걸어가면 출발하기로 예정한 시간보다 4-5분이나 일찍 차에 탈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함께 뛰었다. 쓰읍. 코를 몇 번 훌쩍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나는 너의 뒤통수만 보고 뛰느라 그게 너였는지 네 옆에서 조금 떨어져서 함께 뛰던 우리랑 같은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었는지 헷갈렸다.
숨을 고르며 버스에 올랐다. 아직 우리 말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며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우리랑 함께 뛰던 사람도 버스에 올라타 뒤쪽 자리로 들어갔다. 뭐야 아직 시간 덜 됐네라고 아주 작게 말하면서 지나갔는데 다 들렸다. 괜히 머쓱해서 우린 서로를 바라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시간 더 달려 버스에서 내렸고 우린 바로 택시를 타고 바닷가로 갔다. 돗자리를 꺼내 자리를 만들고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싸 온 도시락을 꺼냈다. 보온병에 담아 온 따뜻한 차와 함께 싸 온 음식을 하나씩 먹었다. 너는 어제 만들어 먹었다는 당근 오이 김밥 하나를 싸 왔다며 나에게 줬다. 밥과 김, 그리고 당근과 오이뿐인 김밥을 오물오물 씹고 있으니 꽤 맛있었다. 아니 내가 싸온 유부초밥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좀 더 싸오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하자 너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는 계속 나오는 웃음을 맘껏 드러내며 김밥을 먹고 유부초밥을 먹었다. 깨끗하게 씻어 온 과일도 먹었다. 배가 넉넉하게 불러오자 돗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로 걸어갔다. 한 발자국 내딛을수록 바다 냄새가 더 짙어졌다.
"있잖아 나 초등학생 때 이후로 한 번도 일기 안 써 봤다?"
일기. 우리가 정말 자주 나누던 얘기였는데, 네가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썼고, 또 그 얘기를 너에게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너는 아주 재밌게 들어줬다. 맞장구도 많이 치고 맘껏 웃고 맘껏 공감해 주면서 내 얘기를 들어줬는데. 그런 네가 일기를 써 본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응, 근데 일기는 항상 쓰고 싶었어."
"그럼 다시 한번 써 봐."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내 말에 너는 말을 멈추고 먼 바다를 바라봤다. 저 멀리 보이는 배가 5센티미터쯤 움직였을 때 너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문구점에 가서 공책을 하나 샀어. 그리고 내 방 책상이든, 카페든 어디든 앉아서 일기를 쓰려고 펜을 들어. 근데 그때마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거야. 정말 뭐라고 써야 할지 단어 하나도 생각이 안 나. 그래서 공책을 덮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때부터 조금씩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 거야. 내 방처럼 사람이 없는 곳에 있을 땐 정말 엉엉 울었어. 집에 새 공책이 엄청 많아. 이게 다 공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새로 샀거든. 근데 이상하게 텅 빈 종이만 보면 눈물이 나. 나 진짜 이상해."
처음으로 질문형이 아닌 말로 말을 끝낸 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렇게 목 놓아 우는 걸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너는 곧 힘이 빠졌는지 모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살면서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던 울음을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 보여줬다. 그런 너를 보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났다. 엉엉 우는 너를 바라보며 왼쪽 손등으로 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너의 옆에 앉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너도 나도, 우린 바다 앞에서 울었다. 이상하다.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는 너를 보며 함께 울고 있는 내가, 그렇게 함께 바다만큼 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지금이 너무 이상해서 나는 더 많이 울었다. 곧 너처럼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털썩. 나도 모래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는 일기를 쓰고 싶다고 외치면서 울었고, 나는 같이 울고 있는 내가 이상하냐고 너에게 물어보면서 울었다. 우리는 그 바다 앞에서 짭짤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보냈다. 지금껏 흘려본 눈물 중에서 가장 이상한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