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초하의 저녁

by 우선열


늦은 봄일까? 이른 여름일까? 계절이 지나는 길목이다. 봄인지 여름인지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아름다운 계절 봄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세상의 아름다움에 공짜는 없다. 봄 한철 예쁜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푸른 새싹들이 고유의 싱그러움을 뽐낼 때,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을 앓아야 한다. 꼭 봄 한철이다.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값을 치러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견딜만은 하다. 봄을 보내고 맞아야 하는 무더운 여름이 달가울리는 없지만 눈꺼플까지 가려운 증상이 되면 가는 봄이 그리 섦지만은 않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대신 나는 '초여름의 저녁은 평화로워' 라는 말로 나만의 여름맞이 대안을 찾아 낸다. 작렬하는 태양과 거친 폭우와 싸워야 하는 여름이지만 어찌 나쁘기만 하겠는가? 봄이 지나갈 무렵 여름은 초저녁의 고즈넉함을 선물하며 은근히 나를 유혹한다. 선물공세에 약한 나다. 봄한철 알레르기 증상을 예감하면서도 아름다운 봄에 정신 못차리 듯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복중더위를 알고 있으면서도 초여름 저녁의 평화를 포기하지는 못한다.

그건 아마 낙천적 기질때문일 수도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 않는가? 내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계절의 변화이다. 불평 불만을 일삼고 있을 일은 아니다 .기왕이면 즐기면서 가는 봄을 붙잡지 않고 오는여름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봄이 처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라면 여름은 극성스런 중년아줌마를 닮았지만 어느 계절도 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봄만으로도 여름만으로도 사계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처녀시기를 거쳤기에 중년이 깊어지고 농익은 중년시기를 보내기 위안 전주가 아름다운 처녀 시절 아니겠는가.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야 하니 기왕이면 즐겁게 맞을 일이다.

지금쯤 초하의 한 낮은 무덥지만 더위에 지칠 무렵 해는 기운다. 태양의기세에 눌려 꼼짝 못하던 바람이 활개를 펴고 골목을 헤집고 다닌다. 더위를 피해 실내에 머물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골목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이때쯤 지친 몸을 이끌고 가장들이 귀가한다. 셔츠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린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여인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꼽은 남성 상이다. 가족을위해 일하느라 소매를 걷어올린 모습, 목석이 어니라면 누구나 감동할 만하다. 여인들의 발걸음도 부산해지고 굴뚝에서는 저녁 연기가 피어 오른다. 초하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카시아향이 골목을 휘돌아 나오는 계절, 초하의 저녁은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만이 진리라 한다. 사랑하는 초하의 저녁을 누리기 위해서 치뤄야 할 일이 있기 마련이다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 , 평생을 겪어 온 일이라해도 해마다 감각이 무뎌지진 않는다. 해마다 똑같은 무게의 환절기를 앓는다. 계절이 오가는 이때, 찾아 오는 꽃가루 알레르기.

삶이란 그런 것이다. 받아 들이고 익숙해지고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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