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51

63년생 조태숙 7

by 우선열

열흘 이상 관망만 하고 있던 태숙씨에게 부장이

"이제 전화기 잡아야지요, 노려 보기만 하면 고객을 만들 수 없어요

전화기에서 돈이 쏟아집니다"라며 채근을 해왔다

때마침 같이 입사한 필구 씨가 전화로 고객과의 약속을 잡았다

같이 입사한 신입사원 중 개척 전화로 내사를 잡은 첫 케이스였다

"언니, 언니, 축하해," 경아 씨가 호들갑을 떨며 부러운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부장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옷에 몸을 맞추려는 듯한 필구 씨의 노력이 눈에 보였다

겉으로는 안온해 보이는 필구 씨에게도 돈을 벌어야 하는 긴급한 사정이 있을 듯했다

자식을 떼어 놓아야 하는 태숙씨보다 더 절박한 사연도 있을까?

태숙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거절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아이들과의 만남이 길어질듯했다


처녀시절 글을 쓰면서 피웠던 담배 생각이 났다

한 모금 담배연기에 막혔던 생각이 술술 풀려 나가기도 했다

흡연실에서 태숙씨는 뜻밖에 은혜 씨를 만났다

애연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은혜 씨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아직 힘들지요? 처음엔 누구나 그래요

늦게 되는 자가 크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요?

영업 잘하실 거 같아요"

생각지 못한 격려의 말이었다

왈칵 눈물이 날 듯했지만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어금니를 꽉 물었다

"감사합니다 , 적응이 쉽지는 않은데 말씀 듣고 나니 기운이 나네요 "


심호흡을 하고 태숙씨는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생각해 온 직업 정보 전화번호부를 들었다

K 은행이다

'심사부 박 대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였다

침착하게 태숙씨도 업무적인 톤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 s 정보 회사 조태숙입니다

3분 정도 상품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지금은 업무증이라 바쁜데. ."

"저도 업무 중입니다

바쁘시면 다시 전화를 드리지요 오후 2시 정도면 괜찮겠습니까?

"뭐, 12시 정도가 좋겠어요 점심시간입니다"

태숙씨가 머릿속으로 수만 번 연습한 내용이었다

거절 받지 않고 계약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어느 정도 고객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직장이 좋을 거 같다는 태숙씨 생각이었다


직장인들은 논리적이어서 주부사원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부서장의 염려가 있었지만

태숙씨는 무작위보다는 정확한 타깃이 있는 영업이 나을 것 같았다

직업만 알아도 그 사람의 생활수준은 대강 파악할 수 있었고

업무전화는 쉽게 거절하지 않을 거 같았다

첫 통화에 태숙씨도 업무 중이라는 정확한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했다

짧지만 첫 통화에 태숙씨는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직장인들에게는 수준에 맞는 통화가 가능할 듯했는데

부장은 바쁘다는 핑계가 가장 많은 게 직장인이라며 걱정을 했다


직장인을 파고든 영업사원이 있기는 했는데

일류기업 출근 시간에 맞춰 잘 짜인 전단지 작업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전단지를 돌려 이름을 알리고 안면을 익히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자연스레 친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 달여를 출근하다시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전단지를 돌려

고객을 확보한 사례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성실성을 보여 주어 신뢰를 얻는 것이다

약속한 12시 태숙씨는 정확하게 전화를 걸었다

"S 정보 회사 조태숙입니다 12시 통화 약속이지만 식사시간이라 결례가 되지 않을까요"

"아, 예, 지금 동료들과 막 식사 가려던 참인데요

급한 일 아니면 다음에 통화합시다"

찰칵 전화가 끊겼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영업은 거절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첫 통화부터 좋을 수는 없다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나아있다가 6시가 좀 넘은 시간에 조태숙은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심사부 박 대리입니다

아침과 동일한 목소리였다

"S 정보 회사 조태숙입니다

대리님 오늘 세 번 통화하네요" 명랑하게 친밀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 예 제가 좀 바빴지요, 용건만 간단히 좀 해주시겠어요?"

"그러게요 퇴근시간도 지났는데 일손을 놓지 못하시네요

직장인들의 애환이지요, 저도 퇴근하려다 박 대리님 생각이 나서요

우리가 돈을 벌려고 일은 열심히 하지만 번 돈을 잘 관리하는 일에는 소홀한 것 같아서요

저도 그런 과정을 겪은 사람인데 세월이 흐르니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좀 더 잘 관리했더라면 지금 이런 전화를 드리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하하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지금이 좋기도 합니다"

퇴근시간의 여유 때문인지 박 대리도 느긋한 태도였다

태숙씨는 신문기자를 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박대리와의 친분을 쌓기 위한 노력을 했다

박대리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여자 친구 이야기가 나오자 대화에 활기가 돌았다

꽉 찬 혼기에 소개로 만나 급속히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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