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생 명희씨 8
젊은 청년들의 활기에 우리도 덩달아 기운이 솟는 거 같았다
솜씨 좋은 명희 씨가 뚝딱 안줏거리를 만들었고 청년들의 함성이 들렸다
내일 아침 동해안을 떠나려던 그들은 먹거리가 떨어져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출출하던 참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여름밤이 깊어 갔다
텐트마다 사람들이 나와 한 가족처럼 어울렸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처음 본 사람끼리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놀이마당이었다
작은 여자아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감촉이 기분 좋게 닿았다
"소꿉놀이해요, 우리 엄마가 돼주세요 "
'그래 그럼 이모도 같이 갈까?"
아이의 손을 잡으며 명희 씨가 따라나섰다
아이가 잡은 두 손을 앞뒤로 흔들며 뒤편의 작은 텐트를 향했다
"엄마는 아프니까 누워 있어, 아빠가 돈 벌어 올 거야
할머니가 밥 해주면 돼, 동생은 내가 봐줄게"
여섯 살 남짓 아이가 신이 나서 역할을 배분했다
"엄마 다 나았는데, 엄마가 동생이랑 놀아줄까?"
"안 돼 또 병원 가면 안 돼" 아이의 목소리가 절박했다
"그래 엄마는 누워 있을게 이모랑 아빠 마중 갈래?"
명희 씨가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응, 아빠"
아이가 근처 차 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 선이 깼구나 울지도 않고 착하네 "
"아빠, 아줌마들이랑 소꿉놀이하는 거야
이제 밥할 건데 " 아이의 달 뜬 목소리가 퍼졌다
"아이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길래 잠시 할머니 배웅하고 오는 길인데 그 사이 깼군요
두 분께 실례를 한건 아닌지 "
'아이가 야무지고 착하던데요 아주 귀엽습니다"
명희 씨가 말했다
"시원한 수박 한 덩이 사 왔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드실래요?'
명희 씨가 재빨리 텐트 앞 간이 테이블에 수박을 먹기 좋게 잘라 놓았다
수박 한 덩이를 손에 든 아이는 어느새 아빠 무릎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우리 선이는 아직 제 엄마가 병원에 있는 줄 압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아픈 모습만 보아왔으니까요
선천적으로 심정이 약한 사람이었는데 선이 동생 출산이 결정적인 무리였지요"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 연민이 가득했다
초저녁잠이 많은 내가 수박 한 덩이를 들고 졸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맥주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희 씨의 명랑한 웃음소리에 몇 번 화들짝 놀라 깨기도 했다
그날 나는 명희 씨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막연한 예감을 했고
결국 명희 씨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길을 택했다
아이의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손에서 퍼지던 그날의 온기와
명랑하게 퍼지던 그녀의 거침없던 웃음소리에
나는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 헤칠 수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