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커피, 아침에 누리는 행복

by 우선열

커피 혹은 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마치 '아빠를 좋아하느냐, 엄마를 좋아하느냐' 묻던 유치한 질문이다. 커피와 차는 각자 소임이 다르다. 태생은 물이지만 개성은 다르다. 물이 생존에 필수조건인 만큼 커피와 차도 우리 생활에 빼놓을 수 없이 귀하다. 이들은 때로 물보다 강렬33ㅡㅡ3한 흔적을 삶에 남기기도 한다 .

햇빛, 공기, 물, 주변에 흔한 이런 것들은 귀하게 보이지 않는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필수불가결한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특별히 구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누릴 수 있으니 필요하지만 귀하지는 않다. 기다린다거나 원하지 않아도 당연히 주변에 있다. 평소에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들이다.

이들이 필요한 것은 비상사태일 때이다. 호흡곤란이 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산소 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비로소 공기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긴 장마나 홍수로 주변 시설이 망가지거나 산사태 등이 일어났을 때 햇빛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가뭄으로 온갖 농작물이 타들어갈 때가 되어야 기우제를 지내면서 간절히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특히 인체의70~ 80% 정도는 물로 구성되어 있다. 물이 부족하면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아프리카 난민들의 물 부족 현상을 보며 간접적으로 물의 고마움을 깨우치기도 하지만 남의 산에 불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일시적인 동정심이 일어나다가 잊고 만다. 물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고맙기는커녕 심심한 물맛이 달갑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혹적인 커피 향에 탐닉하거나 은은한 차 향에 빠져들고 달콤한 탄산음료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다.

때로는 온갖 종류의 술들이 물과 같은 액체의 상태로 생활에 파고들어 치명적인 중독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은 과하면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과를 알고 있건만 유혹을 다스리지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알코올에 약한 체질이다. 술을 이기지 못하여 한잔 술도 소화하기 어렵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술 못 마시는 내가 다행스럽다가 적당한 취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인생에서 누리는 즐거움의 한 부분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어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술 못 마시는 내가 오히려 다행스럽다.

탄산음료를 비롯해 과일 주스 같은 단 음료도 그리 달갑지 않다. 우선 입에 달기는 하나 입가심으로 물을 먹어야 개운해지니 게으른 심성이 감당해 내지 못한다. 안 마시는 편이 편하다.

내가 자주 유혹에 지고 마는 음료는 커피이다. 쓴 커피 맛을 이길 수 있을 만큼 커피향은 매혹적이다 홀짝홀짝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두세 잔을 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우유와 생크림 설탕 같은 첨가물이 들어가기도 한다. 두세 잔이 아니라 다섯 잔 이상이 되고 만다. "발자크는 하루에 50잔의 커피도 마셨대,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하며 커피향의 유혹에 지고 마는 나약한 자신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다 과도한 카페인으로 잠이 안 오거나 목이 아파지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나약한 심성을 반성하게 된다. 이럴때 '커피 대신 차!'를 외친다

"차에 카페인이 더 많대" 악마가 속삭인다 "건강에 좋은 차도 많아" 악마와 천사는 붙어 다닌다 .다행히 나는 종종 더 많이 천사 편이다. 건강에 좋은 차편으로 기울게 된다. 어릴 적 난로 위에서 끓고 있던 보리차가 생각나고 추운 겨울 외출에서 돌아와 김 서린 따스한 보리차를 마시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 자장면을 먹던 가족 외식에서 마시던 재스민 차의 향이 생각나 행복해진다. 이쯤 되면 커피는 판정패이다. 배 아플 때 보리차에 꿀을 넣어 주시며 배를 쓸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생각나면 KO 패 ,커피보다는 보리차에 넘어가고 만다

요즘 나의 아침 루틴은 보리차 한 잔에서 시작한다. 흔해서 귀하지 않은 물이 소중해진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이 아니라 정성껏 끓여 놓은 보리차 한 잔에 나를 대접하는 기분이 든다. 소중한 내가 된다.이럴땐 나에게 작은 사치를 부려도 좋을 것 같은 호기로움이 솟아난다. 향긋한 커피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한다, 건강한 차 한 잔 뒤에 오는 사치스러운 커피 한잔, 내 아침의 행복이다.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누리는 향긋한 아침 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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