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특히 힘들었던 건 열대야였습니다.
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 그건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땀에 젖어 깨면 몸에 감기는 습기를 견뎌야 했고,
에어컨을 켜야만 잠들 수 있던 날이 이어졌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밤이입추가 지나자 제법 에어컨 없이도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루 꼬리만큼 낮이 짧아졌습니다.
해 지기 전 집으로 돌아가려면 느긋하던 발걸음도 빨라집니다.
“일곱 시간을 푹 잤어.”
불면을 호소하던 친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립니다.
저녁 시간이 넉넉해지자, 여름 외출에 사 두었던 책을 펼쳐듭니다.
한두 쪽 읽다 잠이 들어도 괜찮습니다.
잠 못 이루던 여름밤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몸은 가볍고
마음은 여유롭습니다.
아직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지만,
더위를 견딜 만하게 하는 건 아마도
입추가 주는 마음의 작용일 겁니다.
지나가버린 여름이 벌써 아쉽습니다.
더위를 핑계로 미뤄둔 일들이 “나 여기 있소” 하며 손짓합니다.
올여름,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준 건 호야였습니다.
좁은 베란다에 연분홍 별빛이 가득 찼습니다.
무려 두 번이나 꽃을 피우고 지더니
아직 세 송이의 몽우리가 남아 있습니다.
호야의 개화기는 4월에서 8월이라던데,
우리 집 호야는 6월에야 꽃을 틔웠습니다.
출발이 늦은 탓일까요.
벌써 9월이건만 아직도 봉우리를 달고 있습니다.
“올해는 윤달이 있어 여름이 길 거야.”
혼잣말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사실 호야 꽃은 8년 만에 처음 보았습니다.
나는 그저 잎이 고운 식물인 줄 알았습니다.
초록 잎 사이로 간혹 노란 잎, 핑크빛 잎이 돋을 때면
그것만으로도 작은 기쁨이었지요.
그런데 작년 여름,
보살핌 하나 없이 스스로 꽃을 피워냈습니다.
느닷없는 개화가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무심했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내년에도 꽃을 보려면 잘 돌봐야지.”
마음을 다잡았지만 내가 해줄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주고 바라봐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래도 꽃이 필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호야는 유난히 더운 여름을 견디고
올해 두 번이나 꽃을 피웠습니다.
작은 베란다가 은하수처럼 반짝였습니다.
왕후장상의 온실보다 내 눈앞의 화분이 더 소중했습니다.
호야의 몽우리는 사춘기 아이 같았습니다.
꽉 다문 입술을 좀처럼 열지 않다가
얼마쯤 시간이 지나야 하나둘 별빛으로 터졌습니다.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수국처럼 한 송이를 이루었고,
분홍 별들이 피어날 때마다 내 마음엔 거대한 은하수가 흘렀습니다.
그때 지은 이름,
‘호야 꽃 피는 집’이란 옥호는 지금도 내 마음에 반짝입니다.
이제는 달력만 빠르게 넘어가고
세 송이 몽우리는 느릿합니다.
조금은 안타깝지만, 윤달 덕분에 여름이 길어진다니 다행입니다.
호야 꽃을 볼 수 있다면
조금 더 이어지는 더위쯤 기꺼이 견뎌낼 수 있습니다.
입추가 나고 9월이 왔건만 내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8년을 기다려 피어난 꽃이 있듯,
내 삶에도 언젠가 늦게라도 피어날 꽃이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열대야도 두렵지 않습니다.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꽃이야말로
가장 값진 여름의 선물이니까요.
호야 꽃말은 ‘아름다운 사랑’.
그 꽃말을, 이제는 내 삶의 이름으로 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