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일 정월 대보름, 한해중 가장 밝은 달이 뜨는 날이다
설에 연이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 크리스마스 같은 서양 축제와는 다른 애틋한 정서가 있다
가벼운 즐거움이 아니라 성찰과 희망을 품는 시간이 된다.
큰 목소리로 기도하는 기독교와 달리 우리는 소원을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다
발설을 했다간 부정 탄다는 어른들의 말씀이었다
어머님들이 새벽마다 가족을 위해 길어 올리는 정화수 같은 정성을 담아 깊이 간직해야 했다.
달 빛 촉촉한 날에는 조금 느슨해도 괜찮다.
자칫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될 뻔한 순간들에게 숨구멍을 놓는다.
달님에게 축원을 부탁하고 탑돌이나 지신밟기, 혹은 부럼을 깨물기도 하며 묻어 두었던 소망을 일깨워 본다
다시 일 년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우리들의 소망은 일회용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언제나 유효하다
내게 정월 대보름은 일곱 살 무렵 시작되었다.
세상은 흰 눈에 쌓여 고요하고 눈에 반사된 달빛은 신비롭게 반짝였다.
큰어머니는 우리 어리광을 받아주시던 평소 모습이 아니었다.
흰 눈을 보고도 우리는 환호하지 못했다. 조용히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우리 오 남매를 마당으로 불러 세운 큰어머니는 한 손에 팥 이 든 그릇을 들고 계셨다
큰 어머니는 붉은 팥알을 마당에 뿌리며 "그저 그저 우가 자손 무탈하고 그 저 그 저 건강하고···"
중언부언 또렷한 말은 아니었지만 경건하고 간절한 음성이었다.
희고 고요한 달빛 아래 울려 퍼지던 '그 저 그 저'가 우리를 의젓하게 만들었다.
6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기원은 아직도 유효하다.
우가 자손으로 살아야 한다
'이번 보름 날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보름날마다 되뇌어 보는 말이다
그런 간절함이 통해서일까?
올해는 무심코 지나다니던 길목, 무형 유산 전수 교육관에 공연히 들리고 싶어졌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마침 정월대보름 특별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경기 서도 선소리 타령 공연이다
마침 공연시간에 맞춰 예약 없이 관람도 할 수 있었다.
큰어머니의 정성을 달님이 들어 주시나 보다
방글님의 사회로 진행된 오늘 공연은
경기산타령, 봉산탈춤(사자춤), 민요, 칼 춤, 서도 산 타령, 봉산탈춤 (팔목중춤) 순으로 진행되었다
흥겨운 우리 가락과 어우러지는 춤사위로 뜻하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사자춤의 역동적인 모습은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보는 듯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흥겨운 민요 가락은 어깨춤이 절로 나도록 흥겨웠다
관객들의 호응도 좋아 즉석에서 민요 한 자락을 뽐내는 관객도 있었다
나도 민요 한 가락쯤 멋지게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 고유의 명절에 우리 고유의 노래와 춤을 즐길 수 있었으니 이번 대보름 이만하면 되었다
더불어 이런 좋은 공연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