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어른이 되면서 잊고 있던 사실이다. 일상이 늘 그렇듯이 하루하루가 변함이 없는 듯했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크는 건 아이들뿐인 줄 알았다
'얘가 이렇게 컸으니 내가 늙었지",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 보고하던 말이다. 내가 변하는 건 알지 못하고 아이들 크는 것만 눈에 보였다. 어쩌다 거울에 나타나는 낯 선 할머니가 나라고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타고난 건강체이기는 하다. 70세까지 이렇다 할 성인병에 노출된 적이 없고 특별한 가족력도 없으니 99세까지 88 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70세 언저리부터 인듯하다. 여기저기 노화현상이 나타났지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자고 나면 거뜬해지던 젊은 시절처럼 스쳐 지나가는 현상인 줄 알았다
70세가 넘으니 알 수 있다, 노화는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퇴화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성장이 눈에 띄듯 노화의 증상들은 걷잡을 수 없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관리만 잘하면 젊은이들처럼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의 의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심보였다.
사춘기가 오는 것처럼 노화는 느닷없이 왔다. 조금씩 퇴화하는 모습들이 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앉았다 일어나려면 끙 소리가 나고 일어서는 행동이 굼떠졌다. 오래 앉아 있으면 설 때 허리가 펴지지 않는 증상도 생겼다. 마치 매스컴에서 본 폴더 할머니처럼 굽은 허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어야 비로소 허리가 펴진다. 팔 상단 부분이 아픈듯하더니 팔의 유연성이 줄어 등에 닿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는 자세가 나빴다고 생각했다. 곧 나아지리라는 여겼건만 팔과의 거리는 늘어나고 있다. 머리를 약하게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목덜미가 뻣뻣 해지기도 한다. 이번 건강 검진에서는 시력도 나빠졌고 청력도 약해졌다는 소견이다.
허리와 목에 퇴행성 디스크 증상이 생기고 머리칼이 빠지고 흰머리칼이 늘어난다.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다.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건망증 증상이야 대표적인 노화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알았던 사실도 왜곡되는 현상도 있다. 요즘 느끼는 건 한글 맞춤법을 잊어가고 있다. 띄어쓰기는 물론이려니와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경우가 많으며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망설이게 되기도 한다. 분명히 알던 단어인데 헷갈리고 만다. '이러다간 구구단도 못 외는 거 아니야?' 하는 두려움이 든 적도 있다. 늘 타던 지하철 노선이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들은 건 있으니 배회하는 치매 현상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걱정스레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넌 이제 그러니? 난 오래됐어, 혈압약도 먹고 있고, 넌 아직 약 먹는 거 없지? 당뇨도 아닐 테고 "
"아직 약 먹는 건 없지만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니까, 행동도 늦어지고···"
"당연하지, 70 평생 사용한 몸인데 그만큼 건강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니? 우리 또래 중 한두 가지 성인병 약 먹지 않으면 건강한 거야, 넌 행운이야, "
친구의 말에 공연히 투정을 부리는 듯 머쓱해졌다. 비교적 노화의 과정을 늦게 겪는 듯은 하니 건강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나 보다. 교만의 일종이기도 하고 무식의 소치이기도 하다. 건강은 타고났다는 자만심 때문에 노화의 증상들을 간과해 버렸다. 아이들이 아프면서 크는 성장통은 당연시하면서 노화의 현상은 거부하려 했나 보다.
이제는 삶의 한 과정으로 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젊음을 부러워하고 노화를 터부시 할 게 아니라 건강한 노후를 맞이해야 한다. 100세 시대, 노후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젊은 시절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고 60대 이후,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지는 것이다. 은퇴 이전의 생활만 고집해서는 길어진 노후에 대비할 수 없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손자 손녀들을 돌보고 놀아 주려면 AI과 친해져야 하고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스스로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 .
다만 아이들의 의무교육처럼 노후 교육도 사회적 차원에서 제도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