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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Aug 11. 2022

사와다 도모히로, <마이너리티 디자인>.

새로운 세계. 

뭐, 마이너리티 디자인? 무슨 말인지 확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가 제시한 몇 가지 사례들로 '마이너리티 디자인'이 무엇인지 한번 가늠해보자. 먼저 안경이라는 물건을 보자. 눈이 나쁜 사람들은 안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모두 '시력 약자'였다. 누군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나쁜 시력 탓에 곤란한 상황에 처한 걸 '발견'했고, 그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편히 볼 수 있게 노력한 끝에 안경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명'했다. 그 다음 라이터라는 물건을 보자. 이 라이터 역시, 어떤 불편을 겪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발명한 세계이다.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어떤 이들은 성냥이 유일한 도구였을 것이다.


사와다 도모히로 澤田 智洋 는 대형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유명 카피라이터였다. 일본 인구 1억 2천만 가운데 무려 8천만명이 그가 쓴 카피를 봤다. 힘 있는 광고를 여럿 만들어 큰 기업에서 의뢰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무너졌다. 태어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른쪽 눈은 '망막형성이상', 왼쪽 눈은 '망막주름'이라는 선천성 장애"였다. "녹내장과 백내장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사와다의 광고는 '껍데기'가 되었다. 아빠가 만든 광고를 정작 아들은 볼 수 없었다. 그는 이 상황을 회사에 말하고 난 후, 맡은 일을 70% 이상 줄였다. 아들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봐야만 했다.


어느 날 시각장애인 축구 세계선수권대회 주최 측에서 사와다에게 의뢰를 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힘이 될 만한 카피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사와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과, 자신이 갖고 있는 약점을 있는 그대로 봐라본 후 카피를 하나 만들었다. "보이지 않아. 그뿐." 대회는 성공했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불씨를 마음껏 불 태울 수 있었다. 사와다는 의족을 한 모델들이 참여한 '절단 비너스 쇼' 연출도 맡았다. 모델이 처음인 참가자들은 대회 시작이 가까워오자 모두 불안해했다. 사와다는 말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러분은 무척 멋있어요. 마음 속으로 '이 세계는 내 것이다'라고 외쳐주세요."


사와다는 이어서 '유루스포츠 ゆるスポーツ'라고 이름 붙인 운동을 발명했다. '느슨하다'라는 뜻을 가진 '유루이'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스포츠'를 합하여, 이긴 사람 진 사람 모두 즐겁고 기쁘게 노는 운동을 고안해냈다. 핸드볼 공에 비누를 발라, 참가하는 선수 누구나 공을 놓쳐도 부끄럽지 않고 즐겁게 놀 수 있는 '핸드소프볼'을 개발했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 약자'이던 자신의 약점을 살려, 운동을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이들과 깔깔 거리며 웃을 수 있는 놀이터를 함께 만들었다. 사와다는 이 유루스포츠를 지속시키기 위해 '세계유루스포츠협회'를 창설했고, "2022년 4월 기준, 110경기 이상을 만들어 냈고 25만 명이" 이 게임을 체험했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세상을 거꾸로 보는 힘이다.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출발선 자체를 다시 만드는 힘이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소중한 단 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정체 불명의 '대중'의 여론을 좇기 보다, 내가 생각하는 '운명의 사람', 바로 그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생각이다. "빠르고, 크고, 짧은" 생각을 버리고, "느리고, 작고, 오래 지속되는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생각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다음에 닿는 것이 마이너리티 디자인이다. 다양한 존재들이 '승리지상주의'의 세계를 넘어, 있는 그대로도 공존할 수 있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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