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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Oct 21. 2022

딸에게 읽어주는 <사기 열전> 34.

회음후 열전 淮陰侯 列傳.

<회음후 열전>의 주인공은 기원전 196년에 사망한 한신韓信이다. 한나라 유방劉邦, 초나라 항우項羽와 함께 당대를 주름 잡았던 인물이자, 유방에게도 항우에게도 꼭 필요했지만 또 위험하기도 했던 사람이 한신이다. 항우의 밑에 있던 무섭武涉이라는 사람이 당시 제나라의 임시 왕으로 있던 한신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는 것으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지금 한왕과 항왕 두 사람의 싸움에서 [승리의 저울추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오른쪽으로 추를 던지면 한왕이 이기고 왼쪽으로 추를 던지면 항왕이 이길 것입니다."


그럼 <회음후 열전> 첫 문단을 읽어볼까? "회음후淮陰侯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벼슬하지 않았을 때에는 가난한 데다 방종했으므로 추천 받아 관리도 될 수 없었고, 또 장사를 해서 살아갈 능력도 없어 늘 남을 따라다니며 먹고 살아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싫어했다. 일찍이 정장의 집에서 여러 번 얻어먹은 일이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는 한신을 귀찮게 여겨,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불 속에서 먹어 치우고는 식사 시간에 맞춰 한신이 가도 밥을 차려 주지 않았다. 한신도 그 뜻을 알고는 화가 나서 마침내 발길을 끊었다." 


정신을 차린 한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쪽은 항우였다. 그렇지만 한신은 항우 밑에 오래 있지 못했다. 초나라에서 한나라로 귀의한 한신이 한 고조 유방에게 했던 말을 들어볼까? "신이 일찍이 그를 섬긴 적이 있으므로 항왕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가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이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차마 내주지 못했습니다. 항왕은 우두머리로 불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천하 사람들에게 마음을 잃었습니다." 


한신은 한나라로 옮긴 후 공을 착착 쌓아갔다. 전투에서 이겨 대장이 됐고, 땅을 넓혀 좌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배수진을 쳐서 적군을 물리친 일화도 한신의 용병술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앞서 소개한 무섭의 말을 들어볼까? "유방의 뜻은 온 천하를 삼켜 버리지 않고서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왕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한신이 세력을 넓혀 제나라의 왕이 되었을 때 '괴통'이라는 자가 한신에게 유방의 탐욕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한신은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유방에게 목이 베이게 된다.


자, <회음후 열전>을 요약 평가한 사마천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보자.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마천은 <회음후 열전>을 쓰기 위해 한신의 고향을 둘러보며 '도리'와 '겸양'을 이야기했다. 글의 도입부에서는 '가난'과 '방종'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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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신이 가난하지 않았고, 가난하지 않아서 도리와 겸양을 제대로 배워 방종하지 않았더라면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았을까? 글쎄, 역사에 가정이 있을까? 사람의 일생에 가정이라는 게 필요할까? 아빠 생각은 이렇다. '인간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주어진 조건이 있고, 다만 그 조건 속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질 뿐이다.' 다음 시간에는 <사기 열전>의 33번째 이야기인 <한신 노관 열전>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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