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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Nov 03. 2022

'국무총리'라는 자의 언행.

추체험 追體驗.

'추체험'이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있길래 그 뜻을 살펴봤다. '추체험追體驗 :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느낌. 또는 이전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것처럼 느낌'. 고려대 한국어사전에 인용된 예문은 이렇다. '소설은 독자가 다른 사람의 삶을 추체험하게 해 주는 매개체다'. 이 예문을 그대로 따라가면 경험할 수 있는 게 제법 많아진다. 1997년에 출간된 임철우 작가의 <봄날>을 바탕으로 1980년 5월 당시의 광주를 느낄 수 있고, 2022년에 나온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토대로 1909년 10월 당시의 하얼빈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 1637 1, 청나라 군대가 조선의 국경을 넘자 백성들은 죽든 말든 내버려두고 강화도로 남한산성으로 부리나케 도망간 조선의 인조와, 백성들은 죽거나 말거나 사대의 예를 다해야한다고 핏대를 세운 조정의  무리들을 떠올릴  있다. 1950 6,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들에게는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는 동시에 군경을 절대 신뢰하여 동요치 말고 당국의 지시를 엄수하라" 해놓고 가장 먼저 꽁무니를 빼버린 대통령 이승만과,  혼자 살겠다고 한강 다리를 폭파해버린 일군의 장성들을 그려볼  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국무총리라는 자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다. '참사'를 '사고'로 부르고 '희생자'를 '사망자'라 칭한다. 빤히 보이는 참사의 원인을 두고,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경찰조사를 지켜보자고 한다.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정오에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재난에 모든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쳐 재난을 극복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책임 방기와 행정 공백으로 생긴 참사에 '재난을 극복해온 역사'?


2022년 11월 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브리핑도 살펴봤다.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라는 자가 외신 기자들 앞에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답변을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해당하는 한국어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한 줌도 안 되는 영어로 답변을 해댔다. 단상 가운데에 앉아 동석한 공무원들을 아우르며, 앞에 앉아있는 외신 기자들을 향해 비벼대는 마무리 발언은 이랬다.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 여기에 섰다, 이렇게 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 뭐를 이해해?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이라는 나라가 1910년에 왜 패망했는지 알 것 같다. 1858년에 태어난 이완용과 1866년에 태어난 윤치호가 식민지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생존을 했고 어떤 방법으로 권세를 누렸는지 알 것 같다. 시험 잘 봐서 관료가 되면 된다. 눈치 잘 봐서 진급이 되면 된다. 쎈 사람한테 딱 달라 붙으면 된다. 문제가 생기면 딱 잡아떼고 남 탓하면 된다. 그렇게 출세를 하면 된다. 2022년 10월 29일 이후 국무총리라는 자의 언행을 지켜보며, 1637년의 삼전도 굴욕과 1910년의 경술국치를 비로소 추체험하게 되었다.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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