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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Nov 18. 2022

우종영,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자연의 이치, 세상의 이치. 

한 분야를 오랜 시간 깊게 판 사람에게는 특유의 기품이 있다. 그들은 우선 말 수가 적다. 할 말만 하고 여백을 둔다. 다음으로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걸 한다. 다른 건 가능한 한 허용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검소하다. 꼭 필요한 것만 사용한다. 종합하자면 이렇다. 그들은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고, 열매를 맺고, 흙이 된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맞춰 눕고, 바람이 세면 바람에 맞서 버틴다. 누구를 탓하는 건 애초부터 없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가 그런 책이었다. 


챕터 1의 32쪽에 이런 문장이 있다.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생장을 마다하는 이유는 땅속의 뿌리 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유형기'라고 한다.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는 제목이 붙어 있는 챕터 2의 112쪽에는 이런 놀라운 사실도 적혀 있다. "<아낌없는 주는 나무>라는 유명한 동화 때문인지 나무는 모든 것을 내주기만 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미얀마의 사막에서 비구름을 불러 모으는 나무도, 산 중턱에서 비를 내리는 침엽수도 실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수분을 얻기 위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 나무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을 이롭게 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가만이 보면 나무에게 있어 적응은 가진 것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똑같은 종인데도 사막과 초원의 경계쯤에 자리한 나무는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나무에 비해 뻗는 가지도 적고, 가지에 달린 잎도 얼마 되지 않는다. 더욱이 그냥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까지 불러 모아 새로운 생명의 땅을 만는다. (…)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변화를 올곧이 받아들이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완전히 적응하는 것. 그것은 나무가 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생명체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나서, 저자가 자주 사용한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것을 종이에 옮겨 적어봤다. "뿌리, 인내, 생존, 독립, 의미, 기질, 재능, 적응, 공부, 여유, 거리, 생장, 보람, 생태." 그리고 나서 종이에 눌러 쓴 이 글자들을 소리내어 몇 번씩 읽어봤다. 그랬더니 머리가 맑아지고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내가 공부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종이에 적어봤다. "언어, 한국어, 한자,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역사, 교육, 책읽기, 글쓰기, 말하기." 그랬더니 불혹과 지천명과 생업이 적절하게 자리 잡아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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