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윤봉길.
몰랐던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됐다. 야학을 세웠고 독서회를 조직했다. 스무살 나이에 책을 썼고 마을회관 건립을 주도했다.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가르치는 보통학교를 일찍이 그만두고 나라말과 나라의 역사를 집에서 공부했다. 1908년 6월 21일에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32년 12월 19일에 일본 가나자와에서 사형 당했다.
윤봉길은 이렇게 생각했다. '왜놈들보다 더 무서운 건 무식이고 무지다. 일본을 물리치려면 백성 모두가 열심히 배워 힘을 길러야 해.' 글자를 몰라 선친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던 어느 청년의 한탄을 보고 "윤봉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랑방을 공부방으로 만들어 돈을 받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윤봉길이 생각하는 진짜 지식이란 이런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지식"이었다. 1927년에 야학 교재인 <농민독본>을 썼고 '부흥원'이라는 마을 회관을 동네 주민들과 함께 지었다. '목계농민회', '월진회', '수암 체육회'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하도록 했다.
윤봉길은 1932년 4월 26일에 한인 애국단에 입단했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은 뒤였다.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을 들고 전승 축하 잔치를 벌이는 일본군을 만나러 상하이 훙커우 공원으로 갔다. 물통 폭탄을 던져 일본군 총사령관을 사살했고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어 하옥 당했다. 1932년 4월 29일이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건 일본군에게 폭탄을 던진 윤봉길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희망을 던진 윤봉길이었다. 그는 말과 글로 희망을 던졌다. 교육으로 스스로 설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도 밥벌이는 스스로 해결했다. 후원을 위해 손바닥을 비비거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그의 언행과 결단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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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숙 글, 곽성화 그림, <안중근>. 2023.03.27.
전현정 글, 홍선주 그림, <김대건>. 2023.03.20.
이충렬, <신부 이태석>. 2022.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