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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Mar 13. 2022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 

<걷기의 말들>을 차근차근 다 읽었다. 이번에도 좋은 문장 밑에는 밑줄을 쳤고, 더 좋은 문장들은 초서록에 하나하나 옮겨 적었다. '문장 시리즈'로 기획한 이 출판사의 책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품고 있는 드릴같은 책이다. 베버의 표현대로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그 드릴말이다. 이전 '문장 시리즈' 때처럼, 저자가 소개한 책 가운데 곧 읽어보고 싶은 11권의 제목은 책 표지 뒤 면지에 따로 기록했다. 이 중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과 웬디 스즈키의 <체육관으로 간 뇌과학자>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나는 <걷기에 말들>에 속한 100편의 글 가운데 '순례'를 이야기한 51쪽과 76쪽, '가지 않은 길'을 표현한 75쪽과 174쪽의 문장들에 마음이 오래 남았다. 내 이야기 같기도 했고,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김진세 선생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몇몇 대목이 떠오르기도 했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인용한 74쪽의 문장을 읽었을 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3 수험생 시절이 불쑥 되살아났다. 


저자 이영미 작가가 생각한 '순례'는 이렇다. "순례길은 내 안위보다 타인을 위한 기도가 우선이란다. 신의 가호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빌어 주는 그 마음이 고통을 이기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76쪽에 인용된 다비드 르 브르통의 <느리게 걷는 즐거움>의 한 대목은 이렇다. "걷기는 언제나 부재하는 이들에 대한 오랜 기도이고, 유령들과의 부단한 대화이다." 나도 요즘 밤길을 걸을 때 이런 경험을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살아있으면 올해 칠순이 되는 선친의 뒷모습이 문득 생각난다.


저자 마녀체력 이영미 작가의 '가지 않은 길' 묘사는 참 아름답다. "가지 않은 길은 늘 아쉬운 법이다. 일상의 안온함보다 그 아쉬움이 더 큰 사람은, 훗날 다시 갈림길에 서서 가지 않은 길을 택하기도 한다. (…)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마흔 넘어 몸을 움직이게 된 것, 쉰 넘어 남들 앞에 서서 말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 어쩌면 그렇게, 가지 않은 길을 멀리 둘러 가는 셈은 아닌지." 정혜윤 피디의 174쪽 표현은 힘이 있다.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에 대해, 그 출발점의 모습에 대해 황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다시 시작하는 것의 시작이다."


나는 작년 7월부터 다시 걷고 있다. 그 전해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여러 치료를 해봤다. 허리에 주삿바늘도 꽂아봤고 관절을 잡아당기는 처방도 받아봤다. 그때 뿐이었고 일을 하면 다시 아팠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집 앞 공원을 빙글빙글 돈다. 한 바퀴 돌면 12분이 걸리고, 다섯 바퀴는 채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또 아프다. 그래서 또 걷는다. 군살은 안 빠지고 이제 무릎까지 아프지만 걷는 거 말고는 도리가 없어 또 걷는다. 땀도 나고 기분도 좋다. 머리까지 맑아지면 좋으련만 몸과 마음은, 아직은 따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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