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되고, 일만 하면 짐승이 된다.
우리 식구가 사는 아파트는 교하도서관 대각선 맞은 편에 자리해있다. 정남향이라 볕이 잘 들고, 베란다에서 밖으로 내다보면 작은 숲이 바로 보인다. 매일 아침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앞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곳으로 이사오게 된 건 직전 직장 때문이다. 회사와 가까운 곳을 고르다가 이 집을 발견했고, 얼마 간의 수리 후에 바로 입주했다. 동네는 조용하고, 교통은 편리하다. 좋은 이웃을 만나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자유로와 제2자유로를 10분 안에 탈 수 있다. 얌전한 구도시가 정부의 신도시 정책을 만난 덕분이다.
집에서 10분을 걸으면 동네카페 '먹통커피'와 동네서점 '쩜오책방'이 나온다. 먹통커피 실내에는 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실외에는 맞은 편 공원을 볼 수 있는 안락한 의자가 마련되어있다. 쩜오책방은 동네 사랑방이다. 책방인데도 마을 잡지 <디어 교하>를 만들고, 얼마 전에는 '문발동 공방지도'를 펴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 일대가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1부 1장에 소개된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28통 공방골목길'이며, 지금은 종영된 'KBS 다큐멘터리 3일'에도 2018년 12월 2일에 한번 방영된 적이 있는 곳이다.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마을공동체'를 다루고 있는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책이다. 작가가 탐사한 공동체 마을 장소만 대충 헤아려도 국내 15곳, 해외 5곳이며,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해 보인다. 그들은 함께 밥을 해먹고, 누군가의 집에 모여 앉아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신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함께 뛰어 놀고, 자기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신나게 웃고 고민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게 산다'며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비웃거나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다. 단지 함께 모여 웃으며 살아간다.
책 430쪽에 작가가 설명한 '마을공동체의 특징' 30개가 나온다. "1. 사람들이 행복하고, 웃음이 많다. 2. 불안감이 없다. 특히 노후 불안이 없다. 4.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고 풀어놓으니 아이들의 천국이다. 8.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는다. 고민과 아픔을 터놓을 사람이 늘 곁에 있다. 11. 갈등을 방치하지 않고, 푸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14. 어른과 아이들 사이 세대 간 소통이 잘된다. 19. 깊은 대화를 한다. 피상적인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속내를 터놓으며 고백하고 경청한다. 22. 스펙에 집착하지 않는다. 30.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된 2018년 8월에, 나는 책의 제목을 보고 다음에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했다. 책을 파는 회사라 매일 보는 게 책이었지만, 제목과 표지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일이 많은 회사였다. 이 동네로 이사온 게 만4년이 넘었지만, 횡단보도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교하도서관에 가본 게 5번도 안 된다. 쩜오책방에 가본 횟수도 5번이 채 안 된다. 이건 아니다 싶었고, 다르게 살고 싶어 회사를 나왔고, 이렇게 책을 읽고 있다. 126쪽에 인용된 故 유영모 선생의 말이 더욱 다가온다.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되고, 일만 하면 짐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