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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괜찮은 사람으로 사는 연습
by The한이 Nov 16. 2018

품위 떨어뜨리는 위험한 착각

"너는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내가 살아오는 55년 동안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의 갑질로 인해서 상처를 주었던 나 자신과 상처받았던 모든 님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최근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갑질을 아주 심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갑질을 당하는 을 처지가 되어 보니 많이 아팠고,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지 또렷하게 자각하기 시작하니 부끄럽고 고통스러워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나의 갑질로 상처받았던 님들께 용서를 빕니다>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라온 글 일부입니다. 갑질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몰라요. 글 속 주인공도 반대 입장이 되어 그간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거죠.


  퇴근길마다 지하철역에서 마주하는 X 배너가 있어요. "철도종사자에게 폭행·협박 등을 할 경우 철도안전법에 의해 더욱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와 "역 직원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이용객들의 지나친 갑질로 생겨난 결과물이겠지요. 볼 때마다 참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갑질 한 번 안 당해본 직장인은 없을 거예요. 아마 이 글을 읽으며 그 더럽고 서러운 기분을 다시 떠올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만 직장인들에게는 여의치 않은 현실이죠. 일부 고객의 갑질부터 선배, 상사, 상사의 가족, 클라이언트(기업), 오너의 갑질까지 우리는 갑이면 언제 어디서나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할 때 외국 항공사 광고 디자인을 맡았어요. 저보다 한 살 많은 클라이언트는 자꾸 자신이 한 말을 바꾸고, 쓸데없는 트집을 잡으며 시안을 수십 번 수정시켰어요. 어린 마음에 괜한 억지라고 생각해 요청에 응하지 않고 퇴근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어이없다며 화냈고, 결국 실장님께 따졌습니다. 퇴근길 실장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야! 너는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동부간선도로를 달리던 중에 전화를 받고 갓길에 차를 댔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아서 운전할 수 없었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참 어린 갑에게 실장님 조차 대적할 수 없는 현실이 저를 더욱더 서럽게 만들었어요. 세상을 참 몰랐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갑과 을의 입장을 적당히 병행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갑질 같은 건 제 가치를 절하하는 짓이라는 걸 잘 알기에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어요. 업무를 대행하는 소위 '을'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심각하지 않은 실수는 너그럽게 넘기면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지, 감정적으로 다그치고 화내면서 괜한 적을 만들 필요 없다는 걸 꾸준히 당하면서 깨달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돈을 이만큼이나 주는데,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한두 번도 아니고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사장님이 돈 주지 말래요."


  한참 어린 '갑'사 여직원에게 직접 들었던 말이에요. 한소리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라는 임원 말이 떠올라 납작 엎드렸습니다. 나이 들어 당하니 자존심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어요. 반복되는 막말에 스트레스는 분노와 함께 증폭됐습니다. 심지어는 샤워하다 갑이 투척한 쓰레기 같은 말이 불쑥불쑥 떠올라 혼자 포효하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의 감정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다 부질없는데…', '좁은 세상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에서랄까요.


  갑질을 일삼는 이들의 문제는 자신과 회사를 동일시한다는 데 있어요. 의경 시절 경찰관 행세를 하며 의무를 권력으로 남용한 후배가 있었습니다. 교통 단속을 하면서 어른들에게 거들먹거리는 건 예사고, 음주 단속에 걸린 용달차 운전자 집까지 쫓아가 현금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보다 못한 아내가 신고해 죗값을 치렀지만, 결코 실수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서민들을 대상으로 권력 비슷한 걸 행세할 수 있었던 철없는 가짜 경찰의 반복된 갑질이었죠.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 컷>


  직장인들의 갑질도 비슷합니다. 회사 대 회사가 협업해 진행하는 일을 담당자 자신이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한다는 겁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발상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게 되는 거예요.


  "야, 좀 갈궈. 네가 안 갈구니까 일을 제대로 안 하잖아!"


  이 같은 상사의 말에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갑질을 좀 해서 길들여 놔야 말을 잘 듣는다니까'라는 창피한 사고는 당장 지워야 합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나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를 떠올리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어요. 어쩌면 자신이 저질렀던 부질없던 일들이 떠올라 서두의 갑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거나 평생 이불 킥을 할지도 모르죠.


  "회사 그만두고 나니까 연락 오는 데가 없더라. 그렇게 날 따르던 직원들조차…"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둔 대기업 임원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같은 조직에 몸담을 때나 권력자라는 말이죠. 직장에서의 당연한 의무(일)를 두고 권력의 권한으로 삼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을에게 그대로 전달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상사에게 깨져 스트레스받는 건 당신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도 분명 포함돼 있습니다. 모든 게 을의 잘못인 양 뒤집어씌우지 마세요. 일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하는 것과 '을'을 강압적으로,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누구에게도 불편한 갑질 행동을 보이지 마세요. 당신의 품위만 떨어뜨리는 짓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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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The 괜찮은 사람으로 사는 연습
소속 직업출간작가
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13년 차 직장인, 나이 먹는 만큼 꿈도 커지는 아빠 직장인,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어 매 순간을 글로 남기는 낭만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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