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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08. 2019

점심시간에 본 후배들 두 얼굴

'그냥 좋아 미소 짓는 순간순간을 기억해'


따스한 봄을 맞아 회사에서 낭만을 선사했습니다. 팀별로 두 시간의 점심시간을 보낸 후 인증샷을 남기는 일명 '벚꽃 데이'. 흐드러진 벚꽃만큼이나 환상적인 봄 햇살을 만끽하며 벚꽃 잔치의 메카 여의도 한강 변에서 점심시간을 보냈습니다. 회사가 제공한 그럴싸한 명분 아래 처음 맛보는 넉넉한 점심시간이었어요. 두 시간이라는 풍족함이 주는 여유보다 후배들의 티 없이 맑고 행복한 표정이 더욱 특별했던 날이었습니다.


   난생처음 누리는 풍요로운 점심시간의 흥겨움에 빠져 생기발랄한 후배들 얼굴이 더욱더 화사해졌고, 평소보다 맑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습니다. 한강 산책 중에 만난 남자 배우를 보고 소녀들처럼 호들갑을 떨고, 단체 인증샷을 찍을 때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눈꽃 같은 벚꽃과 어우러져 잠시나마 행복에 젖은 후배 그늘 없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낯선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근한 봄 햇살에 만취한 사이 120분은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해맑게 웃던 후배들 얼굴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무표정하게 돌변한 것입니다. 


  두 시간의 여유와 따스한 햇살, 풍요로운 휴식으로 완충된 배터리가 사무실에 퍼진 원인 모를 한기에 한순간 방전된 느낌이랄까요.


  

  "사원증 걸고 다니는 대기업 직원들에 대한 꼬인 감정은, 나도 취준생 때 많이 느껴봤다. 사원증뿐만 아니라 위풍당당하게 웃으며 길을 걷는 모습에 주눅도 들었고. 근데 직딩이 되어보니 그들이 길에서 그렇게 웃는 이유를 알 거 같다. 그냥 밖에 나와 기분이 좋은 것이다."


  한때 온라인에서 떠돌던 글입니다. 처음에는 재치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배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의 현실을 저격하는 말이라 곱씹을수록 씁쓸한 미소가 배어났습니다.


  '어쩌다 회사라는 곳이 순간의 미소조차 용납할 수 없는 삭막한 공간이 되었을까?'


  신명 나는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회사에서는 두 시간의 점심시간을 선사하고,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추고, 퇴근 시간에 맞춰 팀장을 강제로 쫓아내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직장인이 체감하는 온도는 여전히 차디찹니다. 점심시간에 잠시 밖으로 탈출하는 것, 퇴근하는 그 시간이 마냥 좋은 거처럼 직장인들은 회사라는 답답한 세계가 그냥 불편한 것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 직장인에게 출근길이 그리고 회사가 갑자기 좋아질 리 만무하지만, 가끔은 회사에서도 그냥 좋은 순간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월급날, 성과급 받는 날, 승진한 날, 휴가, 빨간 날, 휴일 전날, 금요일, 팀장 출장, 휴가, 외근 등은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그냥 좋은 날입니다. 매일같이 주어지는 가장 행복한 시간, 점심시간도 물론 빼놓을 수 없겠죠. 더욱이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점심 한 끼는 남은 하루를 더욱 유쾌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여우가 어린왕자를 기다리 듯, 가끔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도 당신의 하루를 특별하게 하죠. 


  살다 보면 소소한 기쁨과 행복은 여기저기서 고개를 삐쭉 내밀고 있습니다. 단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바닥만 쳐다보느라 발견하지 못할 뿐이죠.



  감성 충만한 일러스트로 글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nagii 작가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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