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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01. 2019

가만히 있는 연습도 필요하다

‘쉬지 못하는 병에 걸린 현대인’


"현대인은 강박감이 있대. 뭘 안 하면 자꾸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연찮은 기회로 최근 2년간 두 권의 책을 펴냈어요. 현재는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에도 연재를 준비하면서 브런치에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퇴근 후 뻔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가며 살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그 때문에 넉넉하지 않은 제 시간은 철저한 계획하에 흘러갑니다.


  평일 회사에서 저녁 일정이 없으면 바로 퇴근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9시 즈음 모두가 잠들면 11시까지 글을 씁니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끄적거려야 마음이 놓이거든요. 토요일 낮에는 펜을 놓고 온전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대신 토요일 밤과 일요일 낮에는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하죠.


  이와 비슷한 생활을 2년 넘게 반복했어요. 누군가는 지겨워서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했고, 또 누군가는 지독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준비하는 동안 지겹지도 괴롭지 않았어요. 행복한 짓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다른 쉼 없이 즐겼던 거죠. 오히려 책을 쓰면서 지독하게 끊기 힘들었던 담배도 끊었으니까요.


<내가 출시한, 아무도 사용 안 하는 라인 이모티콘>

  

  책이 출간되고 여유가 생기면 이모티콘 그리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책 쓸 때와 비슷한 패턴의 일상을 이어갔어요. 아이들이 잠들면 그림을 그리고, 주말에 가족들이 교회에 가면 다시 그림 그리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실력이 부족해 카카오톡에는 출시하지 못했지만, 네이버 라인에 틈틈이 6종의 이모티콘을 출시했어요. 물론 이모티콘 그리는 일도 저에게는 즐거운 취미 생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독한 독감에 걸렸습니다. 징검다리 연휴를 만끽하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어요.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2주 이상 골골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연차와 반차를 번갈아 쓰면서 병원을 세 군데나 들락거렸어요.


  손꼽아 기다리던 불금은 물금이 되고, 소소한 술자리나 회사 동우회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몸 아픈 건 둘째 치고 황금 같은 휴일에 시체처럼 혼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불안했습니다. 초조하고 무기력해지는 기분이랄까요.


  친구와 톡을 주고받았습니다. 빨리 일어나서 글도 쓰고, 이모티콘도 그리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싶다는 신세 한탄을 했죠.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날렸습니다.  



  "너는 가만히 있는 연습을 좀 해봐. 현대인은 강박감이 있대. 뭘 안 하면 자꾸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딱 너다."


  짧은 이 말이 순간 가슴에 쿡 박혔습니다. 언젠가 뭐라도 안 하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다는 말에 누나도 비슷한 얘기를 해준 적 있어요.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하면서 살아."라고. 순간 어느 주말 아내의 말도 연쇄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애들하고 뒹굴 거리면 안 돼?"라는.


  가까운 사람들 조언을 되새기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불안으로 변질돼 행복 강박증에 시달리는 건 아닐까?


  아등바등 살면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가족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친구의 말도, 누나의 말도, 아내의 말도 다 맞습니다. 틈틈이 인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숨 고르는 연습을 하라는 거겠지요.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고 쉬는 연습을 통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들숨을 챙기라는 말일 테지요.


  치열하게 사는 게 현대인의 숙명이라지만, 잠시 하늘을 올려보며 여유를 찾는 건 선택입니다. 열심히 사는 직장인이 번아웃 증후군에 맥을 못 추는 것도, 현대인이 행복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도 어쩌면 잠깐의 '쉼'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강박이라는 호흡곤란을 피하기 위해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잠시 쉬어가는 연습일 것입니다. 그래야 고른 숨을 오래오래 내쉴 수 있을 테니까요.


  현대인이 일상에서 필요한 가장 평범한 '쉼'은 손에서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든 족쇄를 잠시 내려놓는 호기,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통째로 반납하는 여유,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초조해하지 않는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사소한 결심이 조금 더 잘 살기 위한 '쉼'이라는 빈틈을 찾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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