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익숙하지 않을 때 사람에게 치이고, 데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등 세상에 살다가 90도 꺾인 사회에 입성했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지 않을까. 눈치가 덜 영글어서,시야가 좁아서, 영악하지 못해서,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월이 무서운 건지독하게 싫던 사람 마음도 이해하게 한다는 거다. 그래서 이제는 섣부른 내 마음이 늘 조심스럽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초, 교수님 추천으로 과 동기와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업계 특성상 젊은 직원이 많았다. 팀원 8명 중 반이 여자였다. 동갑내기 4년 선배 A, B와 두 살 어린 6개월 선배 C가 유독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풋풋한 대학생이 와서 기쁘다며 세상 친절했다. 동갑이니 친구처럼 지내자고 살갑게 다가왔다. 다섯이 금방 친해졌다. C와는 같은 해에 입사한 만큼 동기처럼 더 친하게 지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소한 팁을 수시로 전수해 줬다.
3개월이 지나 동기와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여 선배 A, B 태도가 돌변했다. 냉랭했다. C를 수시로 갈궈 자주 울렸다. 그 덕에 막내 셋인 우리는 뒷담화라는 공감대 형성으로 더더욱 끈끈했다.
그녀들 갑질은 점점 거세졌다. 광고대행사는 인쇄물 시안을 출력해 칼로 재본하는 일이 많다. 인턴 때 칼질도 잘한다며 칭찬하더니, 뜬금없이학교에서 칼질도 안 했냐며 트집 잡았다.
"삐뚤어졌잖아. 클라이언트한테 이런 걸 어떻게 보내!"
선배 갈굼에 기분은 늘 쳐지고, 마음에는 멍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업 특성상 야근이 많았다. 새벽 두 세시에 퇴근할 때도 부지기수, 회사에서 잘 때도 일상다반사였다. 일이 별로 없을 때는 팀장이 막내들 등을 떠밀어 쫓아냈다. 눈치 보는 후배를 위한 배려다. 다음 날 아침이면 그녀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소집했다. 다른 사람이 없을 때만 우리를 달달 볶았다.
"팀장님이 가라니까 좋다고 그냥 가? 선배한테 도울 일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큰 프로젝트가 끝났다. 팀장님이 고생했다며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오랜만의 칼퇴였다. 셋이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너희는 선배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가?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한 거 같은데?"
갑질은 더욱더 늘었다.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우리에게 왜 학교에 가냐고 갈궜다. 주말에 나와일하지 않는다고 괴롭혔다. 자리를비운다고, 담배를 피운다고, 점심을 오래 먹는다고 싫은 소리를 해댔다. 시어머니라도 된 듯 시도 때도 없이 트집을 잡았다. 함께 입사한 대학 동기는 입사 6개월 만에 이직했다. A, B 역할이 컸다. 나는 1년을 채우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C도 얼마 뒤 그만뒀다.
몇 년 뒤 C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A, B를 만났다.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함께 입사했던 대학 동기도 함께했다. 7년 만에 5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요즘도 후배들 달달 볶아요? 우리한테 한 거처럼?"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우리가 언제? 너희들 예뻐해 준 기억밖에 없는데? 일도 안 하고 셋이 몰려만 다녀서 그랬나? 우리도 좀 껴주지 그랬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이야기가 떠올랐다. 선배 입장에서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 그런 선배를 대하는 후배의 심정은 분명 달랐다. 상대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는 절대 상대를 알 수 없다. 선배가 되고 알았다. 친하다고 생각한 후배가 자기들끼리만 어울릴 때 서운했다. 선배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표현이 서툴렀던 게 아니었을까.
사회에 나와 오래 구르다 보니 생각이 많이 성숙했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바라보던 시선을 상대방에게 돌리게 됐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야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인간관계는 본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조금은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선배들을 밀어내지 않고, 한발 다가섰다면 어땠을까? 후회 속에서 헤매는 인간은 늘 경험으로 배우는 부족한 동물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