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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27. 2021

말 참 많다는 후배의 뜬금없는 지적

'소중한 순간을 붙잡았을 뿐이다'


가끔의 분출이 주는
행복 지수는 의외로 높다.


헤드헌터인 한 선배가 직업병을 발휘해 물었다. "후배들이 너의 좋은 점이 뭐래? 강점 말이야." 잠시 고민했지만 어렵지 않게 답했다.


"경청! 후배들 이야기 많이 들어주고 소통하고. 그래서 후배들이 고민 상담도 많이 해요."


착각이었을까. 며칠 뒤 한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내게 자주 고민을 토로하는 후배다. 돌아오는 길 내게 뜬금없는 말을 했다.


"차장님, 말 너무 많았어요. 우리 팀장님이랑 둘이."

"뭵? 응? 언제?..."


지난달 A팀 팀장과 후배, 나와 우리 팀 후배 4명이서 저녁을 먹었다. A팀 팀장과는 입사초부터 안면 있었지만, 업무 접점 없다. 십수 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업무를 함께 진행하며 친밀함쌓았다. 덕분에 저녁 자리까지 사됐다.


친하지 않았지만 십수 년 한 회사에서 경험한 추억 교집합은 의외로 컸다. 술이 한 잔 들어감과 동시에 과거 여행을 떠났다. 신입사원 시절 이야기, 사내 커플, 후배, 팀장, 퇴직한 선후배, 최악의 임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추억 꽃이 만개했다. 동시대를 함께한 동병상련의 전우를 만난 기분이었다. 가게 문을 닫는다는 주인의 기척을 듣고서야 4명이 함께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말 너무 많았어요'


이날 동석했던 후배의 총알 같은 말이다. 일반적으로 말 많다는 지적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한참 선배한테 말이 많다고?' 곱씹고 곱씹었는데 씹을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차장님이 이렇게 수다쟁이 인지 처음 알았어요."라는 말 때문이다.


파릇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어릴 때, 젊은 시절, 말이 참 많다. 하지만 세월이, 삶의 고단함이 말수를, 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야금야금 가져갔다. 회사에서 말을 잘 안 한다. 코로나19 덕에 저녁 자리 줄어드니 말할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든다. 집에서도 슷하다. 아내에게 전과 다르게 많이 과묵해졌다는 얘기를 듣다. 말을 아끼지 않을 때는 아이들과 마주할 뿐이다.


그날 이후 말 참 많았다는 후배 이야기를 자주 떠올린다. 더불어 내 안에 꿈틀이던 과거의 수다스러운 내가 술과 추억에 빠져 봉인 해제된 사실 수시로 환기한다. 잠시나마 추억 속에서 조잘조잘 즐거웠던 사실을 부인할 수 없. '수다쟁이'라는 말, 기분 나쁘지 않은 말이다.


독일 영화 <토니 에드만>은 괴짜 아버지와 인생의 재미를 잃어버린 커리어우먼 딸의 이야기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모든 건 지나가버려. 순간을 붙잡을 순 없잖니?"


아빠가 피곤하게 인생을 사는 딸에게 하는 말이다. 모두의 인생 챕터에는 분명 행복한 순간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소중한 무언가를 자꾸 놓치고 사는 것 같다. 소소한 수다 한판도 쉽지 않은 현실의 벽이 언제부터 앞을 가로막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꼰대가 되기 싫다는 집념으로, 욕먹기 싫다는 심경으로 말을 껴왔지도 모다. 신나게 떠든 걸 후회하지 않는다. 소중한 순간을 붙잡았을 뿐이다. 가끔 분출 살아갈 힘 된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


가끔 글쓰기 수업을 한다.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을 수강생과 떠들고 나면 목이 아프다. 하지만 기분은 한참 들뜬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 기분 전환이다. 팀장과 나와의 교집합에서 비롯한 추억 여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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