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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05. 2021

9번 진급 누락 후 보살 된 팀장

'경험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선배들도 호기로운 시절,
갈팡질팡하던 시절이 있었겠지.
잘 극복했기에 지금의 보살 같은
면모를 뽐낼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하고 들뜨고 우러나는 마음으로 후배들을 향 직장생활 조언을 담  권을 출간했다. 첫 은 2017년 7월에 탄생했. 처음인 만큼 신중했고, 준비하는 동안 마음은 매일 천국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친한 친구를 뿌렸다. "난 누가 이래라저래라 는 자기계발서는 싫서 안 봐"라고. 친구 성격을 잘 알기에 그리고 친하니까, 통수를 한대 치려다 다. 몇 해가 흐른 후 희미해졌던 친구 조언이 마음을 뚫고 나왔다.


돌이켜 보면 호기로운 시절이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을 잘한다고 자만했다. 그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는 당당하게 자기계발서를 썼다. 내가 쓴 책을 다시 읽으면 민망함에 사로잡 때가 많다. 얼굴 달아오르는 건 덤이다.


"~해라" "~하자" "~해야만 한다" "~하는 게 맞다"라는 문장이 수두룩빽빽하다.(과거에 썼던 브런치 글에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기술하면 더 좋을 듯요. 단정 짓고 정답을 강요하는 어투가 거부감이 약간 듭니다"라는 댓글이 달린 적 있다. 감사합니다. 명심하고 살고 있습니다.)


'왜 저랬을까?' 참 거북스럽다. 지금이라면 "~~ 하는 것은 어떨까... 요?... 아닐까요?" 정도로 순화할 텐데. 세월이 흐르니 상황도 생각도 점차 변해간다. 일그러지기도 하지만 윤이 또렷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확실한 건 생각 폭이 넓어진다는 사실. 그때 내 호기로움이 답이 아니었음 깨닫는다. '이래라저래라' 했던 저자이자 직장생활 선배라고 자만하던 나는 헷갈리는 현실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 휘청휘청.


요즘에는 뒤처진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후배들은 무섭게 성장하고 나는 멈췄다. 정체된 듯한 기분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덫에 빠져 소외감과 열등감을 느끼며 남몰래 허우적거린다. 딱히 털어놓을 사람도 없 올무는 점점 더 조여 온다.   


한때 같은 회사였지만 지금은 계열사에 근무하는 선배점심을 먹었다. 배는 4시쯤 간식을 먹자고 나를 다시 불렀다. 선배의 몸매 유지 비결이구나 생각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선배의 팀원이 진급 누락 폭발한 얘기, 동료들의 진급 이야기 그리고 후배들이 먼저 승진하고 팀장이 된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을 상황들까지.


내가 썼던 자기계발서에는 '어제의 동료가 내일의 상사로 변할지라도' '나 혼자만 뒤처진다는 공포심에 발버둥치다'라는 제목의 글이 담겨있다. 뭘 안다고 저리 떠들었을까 싶다. 몸소 체험하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주변 선배 관찰하고 느낀 것을 적은 이다. '내가 이런 상황에 처다면?'이라는 상상이 만들어낸 소설 아닌 소설이었다. 민망하다. 솔직히 현실과 맞닥 뜨리면 '회사를 나가야지'라는 생각만 지 않을까 싶다.


같은 회사 선배에게는 쉽게 내놓지 못하는 얘기. 마땅히 꺼내놓을 곳도 없기에 몸도 마음도 넉넉한 선배에게 존심 상하는 고민을 슬쩍 털어놨다. 나는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했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편하고, 나이만 먹고, 그동안 왜 더 열심히 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넋두리. 요점은 그만두고 싶다는 투정이다.


묵묵히 듣던 선배가 코웃음을 쳤다. "나는 그러면 열두 번도 더 그만뒀겠다" 선배는 자기가 회사에 기록을 세웠다는 말로 기선을 제압했다.


"나 과장 6번, 부장 3번 떨어졌어. 과장 4번 떨어진 선배가 기록이었는데 내가 신했잖아. 대졸 공채 중에 최초였지."


선배 한마디가 파생하는 십수 년의 고난함은 직장생활 전체를 뒤흔들고도 남다. 보살님이 앞에 앉아 있는 듯했다. 감내한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모진 시련을 겪어서일까. 여유가 넘다. 자리를 잘 잡고 존경받는 팀장으로 수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책에 적었던 문구가 슬쩍 떠올랐다.


"나 대리 때 동기들은 다 차장이었어."


동기들보다 10여 년 더 오래 근무한 임원의 말이다. 무려 30년을 찍고 퇴사했다. 순간 생각했다. 나는 지금 블랙홀 속 과도기에 놓다고. 선배들도 호기로운 시절이 있었고, 지금의 나처럼 갈팡질팡하던 시절이 있었겠지. 참고 견디고 극복했기에 보살 같은 면모를 갖추지 않았을까.


영화 <인턴>에서 70대 인턴 벤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나누며 사람들에게 화내지 않고, 포용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따듯한 손길을 내민다.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 경험은 결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라는 영화 속 대사가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준다.


인생은 경험으로 귀결된다. 과거의 책에서 글로 잘난 체하던 나를 부정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원 넘는 책을 사주신, 공감해 준 독자도 있으니까. ^^) 인생은 다 엇비슷하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다. 나이가 들면 그에 따라 견뎌야 하는 무게가 있는 법이다. 나는 어른이다. <어른의 무게>에 대해서도 민해본 사람이다. 조금만 더 경험하며 시대를 탐닉해겠다.


대리 진급에 똑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땐 그리도 수치스럽고 대단했던 사건이 지금은 커다란 험과 위안이 되는 기적, 이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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