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가정에서 이런저런 많은 일에 과몰입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다. 수십 년 지기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하는 편이다. 친구들에게는 못할 말이 없기에 거침없이 쏟아내며 스트레스를 풀어낸다.
"착하고 여려서 그래. 상담받으러 한번 와. 진짜 도움 돼."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정신과에 다니는 간호사 친구에게 두어 번 들은 말이다. '귀찮아', '시간 없어' 등의 말로 대충 넘겼지만 속으로는 '내가 왜?'라는 생각으로 신속하게 상황을 넘겼다.
최근에 만난 친구도 이런저런 내 고충을 듣더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전문가와의 상담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자기도, 아내도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했다. 사업 때문에 스트레스받던 친구는 약을 먹으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사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편이라 조금 의아했다.
"그런데 아내는 왜?"
"너무 여리고 착하잖아."
친구 아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착해서 힘들고 우울한 세상이라니! 새삼 따듯했던 드라마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떠올랐다. 착하고 마음 여려 고통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위안을 선사하는 힐링 드라마다.
언제부터 착한 게 민폐가 되었을까
"다른 사람 잘못까지 다 떠안지 마세요. 조금 더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속상해요. 여긴 착한 분들만 오시는 거 같아서."
"그래서 선생님도 여기 계신가 봐요. 이곳에는 착한 사람들만 온다면서요."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직장인 김성식(조달환)과 정신병동 간호사 정다은(박보영) 간호사의 대화다. 정다은 간호사 역시 자신이 돌보던 환자의 자살로 우울증에 걸린다.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죄책감에 시달리다 정신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다.
"어떻게 된 게 팀장이라는 사람이 대리보다 일을 못 하나."
"죄송합니다."
"월급 루팡이라는 말 알아? 월급 도둑이라는 말이야. 옛날 같으면 맞아도 몇 번을 맞았어. 행여나 맞아도 '감사합니다'하며 다녀야 돼 당신은."
온순한 성격의 김성식은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떠안는 착한 사람이다. 상사는 이런 점을 알기에 그를 이용하며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김성식을 활용했다. 결국 상사의 괴롭힘과 폭언이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여기다 정신병동에까지 다다랐다.
"아니 간호사가 친절만 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 근데 걔는 너무 애가 친절해."
"환자들은 좋아하는 거 같던데?"
"그니까. 환자들한테만 친절하면 뭐 해. 딴 간호사들한테는 민폐인데. 아 정말 바빠서 미칠 거 같은데, 그 친구만 일이 밀리니까. 다른 간호사들이 걔 몫까지 해야 되는 거거든."
내과에서 일하던 정다은 간호사는 수간호사가 자신을 생각해 정신병동 근무를 추천한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민폐 동료였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뜻이다. 치열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본래의 의미가 이상스럽게 사용되는 현실이 상당히 안타깝다.
▲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한 장면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김성식이 혼란을 겪는 모습 ⓒ 넷플릭스
이전 회사에 다닐 때, 매년 자신의 업무와 연관된 부서와 팀원들을 평가하는 제도가 있었다. 나에 대한 평가에는 친절하다는 칭찬이 많았고 협업 부서원의 업무 만족도도 높았다. 하지만 팀장은 칭찬은커녕 마냥 친절하고 착하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십 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였다. 뭔가 부족하고 사람들이 만만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싫었다.
직장에서 사용하는 '착하다'는 의미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 누군가에 관해 물었을 때, "아, OO 과장? 착하긴 한데…"라는 말로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정리하기도 한다. 말투로 눈빛으로 표정으로 착하기만 할 뿐, 팀원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
사람마다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고 개개인이 원하는 인재상도 모두 다르다. 드라마에서처럼 현재 마주한 사람이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친다고 혹은 넘친다고 평가절하나 평가절상해서는 안 된다. 착해서 미움받던 정다은 간호사는 결국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차기 수간호사로까지 인정받던 민들레(이이담) 간호사는 병원을 떠난다.
그럼에도 착한 세상이 늘 그립습니다
▲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한 장면 친절한 정다은 간호사는 결국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는다 ⓒ 넷플릭스
드라마나 현실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사회적 기준에서는 저런 사람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시절 노랑머리, 피어싱 등 자유분방하던 김태호 PD는 MBC 면접을 앞두고 검은 머리로 염색하고 정장을 차려입었다. 문득 '어쩌면 수십 년을 일해야 할 직장에 내 진짜 모습을 속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평소 모습 그대로 면접에 들어갔다고 한다.
현대인은 노란 머리 그대로, 착한 성격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정다은 간호사가 정신병동에 입원한 직장인 김성식에게 한 말처럼 '조금 더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누구나 당당하게 품고 살았으면 한다.
'착하다'는 결코 부족하거나 만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이상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일을 남보다 좀 더 정성스럽게 한다는 의미가 더 클 테니까. 어쩌면 남들이 갖추지 못한 강점이기에 시기 질투가 뒤따르는지도 모르겠다.
삭막한 시대 속, 선량한 단어 '착하다'를 다시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뜻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올해 나의 마음을 가장 따듯하게 해 준 최고의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