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리더십 관련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고 실전에 적용하면서 욕심이 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취사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알아서 잘할 수 있는데, 사사건건 간섭을 하시니까 너무 힘들어요. 중요한 일에만 좀 더 도움 주시면 좋을 텐데..."
한 후배가 상사의 잦은 간섭 때문에 힘들다며 하소연했습니다. 후배의 상사는 좋은 펑판의 리더였기에, 여러 가지 좋은 리더십을 발휘해도 한가지 나쁜 리더십이 장점을 가릴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좋은 리더의 자질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포브스에서 최악의 리더십 중 하나로 ‘마이크로매니징’을 꼽았습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은 리더가 지나치게 세부적인 업무까지 일일이 참견하고 지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포브스에서 언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79%가 마이크로매니징을 경험했고, 그 중 85%가 업무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지속적인 마이크로매니징은 우울증, 수면장애 등의 정신 질환으로 이어질 정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했어요. 결국 팀원의 의욕 저하로 이어져 조직에도 피해를 줍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은 보통 부하직원을 신뢰할 수 없을 때, 상사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 때, 어떤 피드백을 줘야 할지 모를 때 벌어집니다.
이 중에서도 최악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 오늘의 주제는 바로 불필요한 피드백만 마이크로매니징하는 상사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업무의 소소함만 챙기면서 자신의 직급에 맞는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허락 받고 오줌 누러 갔다. 허락 받지 않으면 한 방울도 안 나온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레드(모건 프리먼)는 복역 40년 만에 가석방 됩니다. 식료품점 점원으로 취업한 레드는 상사에게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물었고, 상사는 뭘 그런 걸 묻냐고 핀잔을 줍니다. 하지만 레드는 수십 년간 소소한 일 하나에도 간섭과 통제를 받아 주도성을 잃고 모든 일에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직장에서도 오랜 기간 이러한 환경(상사)에 익숙해지면 레드처럼 누구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소한 통제를 많이 받는 마이크로매니징의 가장 큰 역효과라고 할 수 있죠.
'마이크로매니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상사의 피드백이 업무의 성공 여부나 보고서의 질적 개선 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급한 자료라고 해서 열 일 제쳐두고 보고서 만들어서 드렸는데, 여백이 많고 폰트가 마음에 안 든다는 피드백만 받았어요."
기획팀에 근무하는 후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왜 팀장이 내용을 보지 않는지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이메일의 줄 바꿈, 문서 앞줄 맞추기, 폰트, 자간, 행간까지 참견하는 상사가 의외로 많습니다. 한 사원이 보고서 앞줄 맞추기를 세 번이나 틀려 대리 진급에 떨어뜨렸다고 말하는 임원도, 개인 사물함, 책상 정리 정돈 상태를 인사 평가에 반영한다는 상사도 있습니다. 이메일 서두에 인사말을 쓰지 말라던 한 상사는 원칙을 어긴 직원에게 사무실이 떠나가라 호통을 쳤습니다.
업무 능력이 탁월하면서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는 상사라면 직원들은 기꺼이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업무의 핵심 내용이 아닌 엉뚱한 곳에 에너지와 열정을 소진하는 리더는 어떨까요. 직원들은 마음을 닫고 쉽게 돌아섭니다.
리더라면 업무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은 일단 밀어두고 큰 그림, 즉 본질 파악부터 해야 합니다. 단순한 문서 구성이 아닌 알맹이가 잘 작성되었는지부터 파악한 후 마지막에 소소한 것들을 손보면 됩니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야! 내가 이렇게 하지 말랬지? 진짜 솔직히 말하자. 니들이 쓴 기획안이야 뻔하고. 작은 성의라도 있어야 회의 분위기가 좋을 거 아니야? 너는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다 다시 뽑아서 새로 찍어!"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김경욱 과장(김종희)은 팀원이 보고서 출력물에 스테이플러를 비스듬하게 찍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의 시간에 한바탕 난리를 칩니다. 김 과장은 팀원들이 제안하는 기획안에 어떤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자신이 아는 게 없으니 지속해서 작고 엉뚱한 트집을 잡을 뿐입니다.
'사람이 무능하면 자기가 아는 작은 것에 집중하고 큰소리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지원 대리(박민영)의 생각입니다. 순간 여러 명의 얼굴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코웃음도 아까울 만한 장면, 하지만 현실에서도 분명 일어나는 일이기에 씁쓸했습니다.
후배의 회사 팀장은 팀원들 보고서에서 오타를 하나 잡아내면 기세가 등등해 “이래서 너희들 하는 일에 신뢰가 안 가!”라며 온종일 팀원을 달달 볶는다고 합니다. 팀원들 속마음은 '왜 저래?'일뿐 공감이나 동요 할 리 만무하죠.
알맹이 없는 ‘마이크로매니징’을 일삼는 상사는 자신들이 코칭하고 있다고 여기곤 합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상사가 팀원들 업무수행에 도움 주지 못하면 직무 유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리더는 팀에서 배가 산으로 가지 않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선배라면, 상사라면 코칭과 트집을 구분해야 합니다. 본인이 코칭이라고 생각해도 상대가 트집이라고 느낀다면 이는 상사의 잘못된 습관일 가능성이 큽니다.
코칭은 '개인과 조직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최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수평적 파트너십'입니다. 핵심 키워드는 '잠재력 극대화'입니다. 업무 내용에 대한 코칭 없이 엉뚱한 트집만을 일삼는 상사는 팀원들 잠재력을 사장할 뿐입니다. 이런 상사를 누가 인정하고 따를까요.
요즘 직장인들은 상사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작은 트집에만 열중하면 '아는 게 없구나!'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챕니다. 건설적인 코칭을 해주는 리더는 따르고, 트집 잡는 리더는 업무에도 개인의 성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밀어냅니다.
리더의 역할은 큰 틀에서 바라보고 업의 중요도와 본질을 파악해 팀원들이 헤매지 않게 업무의 궤적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지적이나,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은 마지막에 흘리듯 알려주면 됩니다. 리더가 무능하다고 무시당하지 않는 최소한의 방법입니다.
한창 일을 배우는 직장인이라면 '마이크로매니징'을 해야 합니다. 상대 트집 잡는 일이 아닌 셀프 마이크로매니징, 즉 자신에 대한 꼼꼼한 관리를 의미합니다. 답답한 상사가 수시로 들이미는 ‘마이크로매니징’을 반면교사 삼아 스스로 꼼꼼한 습관을 들이라는 말입니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상사를 이해하기 위함도 아닌, 직장에서의 성장을 위한 자기개발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좋습니다. 꾸준한 반복과 연습으로 쌓아 올린 업무처리 습관은 연차가 쌓이고 리더가 되면서 점차 빛을 발하게 될 테니까요.
업무 알맹이를 충실하게 챙기는 습관을 비롯해 업무의 소소함까지 철저하게 체크하는 습관을 쌓는다면 엉뚱한 데 꽂혀 자신을 달달 볶던 상사보다 훨씬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