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은 해보고 나서
나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머리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결정 장애가 있는 것처럼 결정을 좀처럼 내리기가 쉽지 않다.
무더운 여름날 일주일간의 재택근무를 했다. 더운 여름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나의 여름휴가였는데 어쩔 수 없이 가장 더운 일주일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
▶️ 운동량이 감소할 게 걱정되어 하루 한 시간 공원 산책하기
▶️ 정말 더운 날은 에어컨 가동으로 쾌적하게 보내기
▶️ 재택을 하게 되면 쉬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기 쉬우므로 확실한 1시간의 점심시간 가지기: 점심시간 동안 대화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독서하기 (저저와의 대화)
에어컨을 가동하거나 점심시간에 독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공원 산책은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아침에 산책을 나가려 하면 '이미 해가 중천에 떠서 뜨거운 햇살 아래 산책을 해야 할까?'라는 걱정이 앞섰고, 저녁에 산책하러 나가려면 낮의 더운 열기가 아직 남아있을 것 같아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운동 없는 하루를 보내기가 어려워 큰 결심을 하고 나섰다. 생각보다 햇살이 뜨겁지 않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산책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막상 일어나게 되면 별것 아닌 데 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는다. 할까 말까 고민되고 망설여지면 일단 하면 된다. 하고 나면 한 게 맞는지 안 하는 게 맞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러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러니 일단 도전해 보는 게 맞다.'
얼마 전 말도 안 되는 곳에 입사 지원을 하면서도 그곳에 가는 게 맞는지 아닌지 고민했다. 어쩌면 매니저와의 갈등 때문에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퇴행의 행동방식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매니저와의 갈등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경력에 견줄 수 없는 신입사원의 역할에 맞는 곳에 입사 지원했다. 내가 하던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고, 오래 할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역시나 경력이 넘치다 보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고 그 순간까지 계속 고민했다.
'면접을 보러 가는 게 맞는 건지?', '면접에서 합격하면 그 회사로 가는 게 맞는 건지?'.
주변의 지인들에게 많이 물어보았지만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라 딱히 와 닿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단 면접을 보고 나 역시 그 회사를 관찰하면서 내가 갈 곳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로 했다. 휴가까지 내고 시간을 투자하고 면접을 본 결과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가지 않기로 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면접을 보고 오고 나서야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을 보고 나서 방어기제를 느낄 수 있었다. 면접을 보지 않았다면 가지 말았어야 할 회사에 대해 언제가 '면접을 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후회를 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부딪혀 보고 결정하는 게 맞다.
다시 산책으로 돌아와서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 씨는 중앙일보의 오피니언 란에 "할까 말까 망설일 때 절대 하지 않는 세 가지와 꼭 해야 할 것 세 가지에 대한 원칙이 있다"고 했다. 이때 꼭 하는 것이 여행, 산책, 배우기라고 했다. 원칙을 정해두면 편하다. 고민의 시간의 절약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을 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원칙을 정하고 따르면 된다.
<참고 자료>
2015년 4월 18일 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한비야의 길!] 망설일 때 꼭 해야 할 것, 여행·산책·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