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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Feb 15. 2020

베토벤, 교향곡 제7번

음악으로 쓰는 소설 2편 - 사랑의 선택 

베토벤, 교향곡 제7번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1악장 포코 소스테누토 - 비바체(Poco Sostenuto - Vivace): 앞에 나온 리듬을 계속 반복하면서 발전해나가면서 엄청난 힘을 뿜어내며 전개되다가 화려하게 끝을 맺는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세요? 서울역 올 때 기차에서 만났던..."

"아 그럼요. 기억하고 말고요. 합격했죠?"

"네, 합격했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전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요. 나이 먹으면 그런 거만 보이죠. 축하해요.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으면 뭐든 알려주세요."

"그때 책을 두고 가셨던데요. 책을 전해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근데, 제가 서울 지리를 잘 몰라서... 너무 죄송한데요. 그때 말씀 주셨듯이 집 알아보는 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왠지 그가 믿음직스럽다. 처음 기차에서 만났을 때 명함을 준 것도, 법무팀이라는 점도, 책으로 연결된 인연이 운명은 아닐까? 


2악장 알레그레토(Allegretto): 비장한 장송곡의 리듬이 계속 반복되며 감정을 격앙시키다가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 된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 주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처음으로 간 서울의 카페. 서빙하는 분의 말조차 고향과 다르다. 친절하면서 애교 넘치는 말투, 퉁명스런 지방 억양을 뱉어내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과연 이런 곳에서 서울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자기 일처럼 나를 돕는 그 덕분에 회사 근처 조그마한 아파트 월세방을 계약했다. 방이 두 개인 20평대 아파트다. 큰 방은 주인 아주머니가, 작은 방은 방송국 다니는 언니가 월세로 사용한다. 내 방은 사람이 사는 용도가 아닌 짐보관을 위한 다용실을 개조한 곳이다. 일명 '식모방'이다. 누워서 발을 뻗으면 머리와 발이 양쪽 벽에 닿는 방.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은 살 수 없다. 그래도 난방도 되고 중간 문이 있어서 나름 독립적인 공간이다. 월세도 저렴하지 않은가? 


3악장 프레스토(Presto):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중독성 있는 리듬이 화려하게 펼쳐지다가 밝고 목가적인 선율이 흐르고 다시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


드디어 독립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지는 내 방이다. 수도만 틀면 따듯한 물이 콸콸 나오는, 난방이 되는 따뜻한 거실에 사는 서울 여자가 된 것이다. 말과 외모에서 서울 여자로 둔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 야경 드라이브를 시켜준다고 나오라고 한다.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떤 분인지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네?"

"저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전 집도 있고 혼수도 필요 없어요. 몸만 오시면 돼요. 저 정도 나이 되면 딱 보면 알거든요. 첫눈에 알아봤죠."


이제 겨우 그를 만난 지 세 번째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게 뭘까? 글쎄, 이런 남자와 살면 편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는 단순히 친절한 나이 많은 아저씨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아직 그를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는 그의 프러포즈에 뒷걸음친다.


4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휘몰아치는 리듬과 폭발적인 사운드가 압도하는 악장. 주제 리듬을 반복하며 극한까지 몰아붙이면서 광란의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방에 책상과 컴퓨터를 들였다. 책상 밑으로 다리를 뻗어 잠을 자야 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다. 이제 퇴근하고도 컴퓨터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컴퓨터를 잘 몰랐기에 입사 동기의 도움을 받아 구매하면서 약간의 오해가 생겼다. 나는 순수하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입사 동기는 데이트 신청으로 착각했다. 나는 컴퓨터 구매에 도움을 줘서 감사의 뜻으로 밥을 샀는데 입사 동기는 애프터 신청으로 받아들였다. 오해가 오해를 불러 입사 동기와 썸인듯 아닌듯 한 두 번 식사를 하는 상황을 가졌다.  


입사 동기는 갖은 알바로 대학을 겨우 마치고 취업에 성공했다. 경제력을 잃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지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건 잠재력뿐. 어떤 보장도 없고, 미래도 알 수 없다.


양다리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전에 입사 동기와 오후에 그를 만나는 주말 약속을 잡았다. 상황을 모르는 입사 동기는 나를 만난 후 그와 만나기로 한 식당까지 데려다주었다.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처럼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그는 이쑤시개로 이를 정리한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와 결혼하면 기와집에서 경제적으로 편하지만 마음이 외로울 것 같고, 입사 동기와 결혼하면 초가집에서 생활이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할 것 같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날 순 없지 않은가?


Beethoven: Symphony No. 7 -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Iván Fischer


음악으로 쓰는 소설 1편

참고내용: doopedia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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