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를 읽고
주인공인 엄마가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딸이 찾아오고 연락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피를 나누면 가족이 되는 것일까? 부모 자식 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부는 그렇지도 않다. 같이 생활하고, 같이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그린과 레인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엄마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족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젠 할머니 역시 주인공에게 엄마라 부르면서 늙은 딸이 되었고 그녀의 집에 머물렀다. 다행히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젠 할머니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햇살이 좋은 날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엄마에게 이 세상의 일은 훼손되고 더럽혀져, 우리 세대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의 주인이 아니라 종노릇을 하고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끝내 밀려나면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녀는 선생님이었고 그래서 학생도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도 했던 지적한 여성이었겠지만 지금은 가난이라는 현실에서 요양보호사로 버겁게 생활해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과연 우리 현재의 삶과 미래의 모습이 그렇게 부정적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나에게 일이란,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내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즐거움이다. 가끔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부자라 해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일하는 여성으로 사회 초년생 때는 남직원과 비교하여 차별도 많이 받았고, 커피 심부름을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취감도 느끼고, 삶의 활력소를 얻기도 한다. 맞벌이 엄마로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미안한 마음은 적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반면 질적으로 압축된 사랑을 베풀었고, 독립심을 키워줬다는 차원에서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내 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엄마는 끝없는 노동 속에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을 때가 막막함을 견디어 나가야 하는 게 두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공부를 많이 시킨 딸만큼은 잘되길 바랐으나, 딸에 대한 두려움, 서운함, 배신감, 노여움의 감정 속에서 딸의 미래를 걱정한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어머니, 공부를 많이 한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아닐까요?
따님은 아직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진 못했으나
열심히 한 만큼 좋은 직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따님의 사생활을 인정하기란 쉽지는 않겠지만,
7년 동안 동반자와 함께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하니
따님의 의견도 존중해주고 지켜봐 줘야 되지 않을까요?
많이 어렵겠지만 힘내세요!
어머니의 삶도 중요하니 어머니의 행복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젠 할머니께 베푼 사랑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도서: <딸에 대하여> 김혜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