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서평
'호밀밭'과 '파수꾼'이라는 낯선 단어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 그리고 고전이라는 이유로 책을 샀다. 그렇게 고이 모셔둔 민음사 《호밀밭의 파수꾼》를 어떻게든 읽어보려고 원데이 독서토론의 책으로 선정했다. 유명한 책이어서 참여 인원도 제법 모였다. 책만 읽으면 되는 순간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어디 출판사에서 번역한 걸 읽으면 좋을까요?"
번역이 그렇게 문제가 될 줄이야. 《호밀밭의 파수꾼》만큼 수많은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도 드물고 번역의 잘잘못을 따진 글이 많은 책도 없을 거다. 오래되긴 했지만 2009년 10월 『고교 독서평설』 소개 글을 옮긴 블로거의 글에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에 따르면, 국내에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 가운데 추천번역본은 한권도 없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특히나 SNS상에서는 민음사 번역본은 절대 읽으면 안 된다는 글이 많았고, 윗글에서 그나마 문예출판사, 문학사상, 현암사의 번역본을 추천했다.
2017년 주간조선 『한국인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 기사에서는 모순적이게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가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2001년 출간 이래 92쇄를 찍었고 50만부가 넘게 팔렸다. 2위인 《데미안》과 13만부 이상 차이가 날정도로 압도적이다. 결론적으로 참여자들에게는 출판사에 상관없이 읽기를 권유했고 나는 원서와 현암사 번역본을 읽었다. 결국 오래전에 사둔 민음사 책은 읽지 않았다.
원서로 읽어야만 그 느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은 원서에서 자주 나오는 속어와 비어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이 더 어려운 거다. 민음사의 경우 번역자의 작품 해설이 따로 없는 반면 현암사에서는 작품 해설을 제공한다. 살아 숨쉬는 영어의 속어와 비어를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려고 애쓴 노력을 알 수 있다.
원서에 자주 나오는 속어와 비어
sonuvabitch, damn, goddam, pain in the ass (골치거리, 눈엣가시), crap (헛소리), phony, Chrissake, Wuddaya (What do you, 뭐라고), a pain in the ass 눈엣가시, Old (짜식), dough (달러), helluva
이 책이 미국에서 필독서로 꼽히는 것은 이해되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이유를 찾는데는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 나이 때 청소년, 특히 남자아이가 읽으면 공감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춘기가 지나간 성인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고전이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었다. 독서토론 중 한 문우는 미국소설이라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미국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힘을 실어주지 않았을까? 또한 수많은 저자가 이 책을 언급하고 극찬을 하기에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오히려 홀든이 큰 사고를 치지 않아 실망이 컸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16세 소년이라 공감이 되었을까?
이 책의 제목이 《호밀밭의 파수꾼》인 이유가 더 흥미진진했다. “호밀밭 사이로 걸어오고 있는 누군가를 붙잡는다면 (If a body catch a body coming through the rye)” 라는 노래는 책에서 두 번 나온다. 이 노래는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 『호밀밭 사이로 오고 있는 (Comin Thro' The Rye)』 시에 곡을 붙인 노래라고 한다. 한 번은 홀든이 브로드웨이로 가려던 중 교회에서 막 나온 듯한 가족을 본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그 노래를 부르며 인도와 차도 사이 가장자리인 차도를 걷는데도 부모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번째로 동생 피비에게 되고 싶은 게 뭔지 말하는 순간을 설명하려고 “호밀밭 사이로 걸어오고 있는 누군가를 잡는다면” 노래를 말하지만 동생은 잡는 게 아니라 만난다면 (“If a body meet a body coming through the rye” by Robert Burns) 이라고 알려준다. 어쨌거나 홀든은 '잡는다면'으로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꼬마들이 어떤 놀이를 하는 모습을 줄곧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거든. 몇 천 명이나 되는 애들이 놀고 있는데 주위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내 말은 어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거지....... 나를 빼놓고는 말이야. 그런데 나는 아주 가파른 벼랑 끝 옆에 서 있는 거야. 그러다가 누구든지 벼랑 너머로 떨어지려고 하면 그 애를 붙잡아 주는 거지."
꼬마들이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게 홀든이 잡아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홀든처럼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소녀들, 홀든의 잘못은 아니지만 지켜주지 못한 제임스 캐슬, 백혈병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 앨리, 실제 낮에 홀든이 보았던 인도와 차도 사이에 가장자리로 걷던 아이, 피비 학교에 그려진 거친 낙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 홀든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홀든이 봤을 때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파수꾼을 자처하며 자신도 지키고 이 모두를 감싸 안아 주고 싶었던 거다.
"누구에게든 절대로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일단 말하고 나면 모든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법이니까요."
겉으로는 까칠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듯한 홀든이지만, 그 누구보다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는 따뜻한 홀든. 그 매력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 3월 원데이 독서토론: 3월 23일(화) 저녁 10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으로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