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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Nov 20. 2021

마음으로 시작해서 물음표로 다가오는 시

〈작가와 함께하는 2021 가을 랜선 문학 콘서트- 박준 시인편〉 후기

2019년 시필사 모임에서 우연히 박준 시인의 시 『종암동』을 필사했습니다. 박준 시인이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다가왔습니다. 마침 어버이날이어서 엄마 이야기를 하며 그의 시를 올렸습니다.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던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한참 시간이 지나 읽었습니다. 시에서 자주 나오는 미인이 아픈 누나였다는 사실만 막연하게 알았습니다. 요즘 시는 어려워 읽기가 어렵지만 그의 시집은 감성을 느끼기 충분했습니다.


창비에서 작가와 함께하는 2021 가을 랜선 문학 콘서트- 박준 시인편〉를 한다기에 별 생각 없이 신청했습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글쓰기 이야기 듣는 게 요즘 제가 누리는 삶의 기쁨입니다. 기대하지 않고 듣는 강의에서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하거든요. 


박준 시인이 그렇게 젊은 분인 줄 몰랐습니다. 검색해보니 83년생이시더군요. '문학계 아이돌'이라 불리고 올 5월에는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더라고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집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50쇄를 돌파했습니다. 그는 시인이면서 창비 편집자이기도 하고 CBS 라디오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의 DJ이기도 합니다. 그의 시집도 읽고 필사도 했으나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인 줄 몰랐네요.


두둥~ 이번 주 화요일 줌에 접속했습니다. 시인의 진행방식에 놀랐습니다. 줌 수업을 하면 일반적으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공유해서 발표하는데 그는 슬라이드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시를 보여주기 위해 한글 프로그램을 잠시 공유했지만 대부분은 참여자와 함께 갤러리 뷰를 보며 진행했어요. 가끔 채팅으로 키워드를 입력했는데 몰입감이 높았고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프라인 강의에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사용하면 참여자는 강사보다 슬라이드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화이트보딩(판서)이 더욱 집중력을 유도하죠. 제가 알던 5.0 강사(강의할 때마다 만족도 만점 5.0을 받아서 별명이 5.0 강사)는 화이트보드에 직접 핵심 내용을 쓰며 강의했습니다. 김정선 작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분도 직접 키워드를 써가며 강의했어요. 온라인에서 이 방법이 가능하다는 점에 놀랐어요.

박준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

시와 친해지고 싶고 시인의 감성에 젖고 싶어 시집을 펼쳐 들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현대시는 더욱 의미 파악이 어렵죠. 시를 읽는 사람은 따로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생각, 사유, 감정, 정서, 기억과 같은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미술가가 되고, 음악으로 표현하면 음악가가 된다는데요. 그 표현이 100%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겠죠. 그래서 박준 시인은 "?????로 다가오는 게 문학과 예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원래부터 물음표로 다가오는 거라면, 자를 들이대고 측정하거나 분석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집에는 『84p』라는 시가 있는데 "보던 책을 덮었다"라는 표현 때문에 어느 독서 모임에서 그 "보던 책"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각자 책의 84페이지를 가져와서 자신의 책이 맞다는 주장을 했답니다. 무슨 책인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박준 시인에게 물었는데 정작 시인은 무슨 책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해요. ㅎㅎ. 같이 여행한 거리를 두고 정지용 시인은 물길 칠백리라고 말했는데 박목월 시인은 남도 삼백리로 표현한 예를 들었는데요. 이게 바로 시적 효과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일상에서도 시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할까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일상인 모드와 시인 모드가 있는데 그 예민함은 시인일 때 더 강하다고 해요. "일상인 박준 < 예민 < 시인 박준" 이렇게 채팅창에 입력했는데요. 일상인 모드에서 시인 모드로 전환된 예시와 시를 소개했어요. 실연당한 친구의 전화를 새벽에 받아 1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에도 달려가 시인으로 변신해서 위로한 시가 『그해 봄에』입니다. 평범한 대화보다 시가 위안이 됩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그해 봄에』 중에서


시인은 손끝으로 말한다는데요. 작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제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려 독자에게 전할 수 있을지, 어떻게 공감 가는 물음표를 던질 수 있을지, 작가 모드로 변신해서 친구를 위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없이 채팅으로 소통하는 강의도 해보고 싶어요. 시인이 말하는 "참말을 하기 위한 노력"을 저 역시 기울여야겠습니다. 시가 물음표로 다가와도 그 마음을 헤아려 봐야겠어요. 이제는 시집을 다시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에게 시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박준 시인의 시 『종암동』을 필사하여 올린 예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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