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효이재 Oct 09. 2022

1.5 복잡한 세상에 나타나는 수학적 질서: 멱의 법칙

복잡한 세상은 대게 거듭제곱의 패턴을 따른다.

Sufjan Stevens - Mystery of Love


 복잡계에 대한 통찰이 가진 중요한 함의는 복잡계가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칠흙 같은 어둠 혹은 오직 무질서로 가득한 디스토피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이 고통과 기쁨을 반복하는 고통의 바다라 했던 석가모니의 가르침처럼 복잡계는 무질서와 질서를 반복하는 ‘일단의 질서pockets of order’를 갖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불확실성의 바다 속에 던져지더라도 시스템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과거 단순계의 통제 방식을 분명히 버려야 하겠지만 동시에 망연자실한 채 운 혹은 미신에 기대어 남은 삶을 허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복잡계는 완전한 카오스가 아닙니다. 때문에 복잡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수학적인 질서가 있습니다. 바로 멱의 법칙입니다. 복잡계 질서 안에서는 해안선의 모습 혹은 눈의 결정의 모습과 같은 ‘프랙탈’이라는 자기 유사성을 갖는 패턴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 프랙탈의 패턴을 구성할 수 있는 수학적 관계는 ‘멱함수’가 유일합니다.


 멱 함수 질서는 쉽게 말해 어떤 현상이 ‘거듭제곱’의 패턴을 따르는 것입니다.[그림] 멱함수, 법칙(冪法則, power law)은 한 수(數)가 다른 수의 거듭제곱으로 표현되는 두 수의 함수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선형적이라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해 완전한 혼돈이 아닌 변수 간의 관계가 대체로 지수적 패턴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멱함수 그래프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고사리 이파리의 경우(복잡계를 이해하는 실마리, 프랙탈 중) 길이가 반으로 줄어들면 이파리 개수는 서너 배로 늘어나는 관계, 지진이 발생하는 빈도와 강도사이의 관계, 인구 규모별로 줄 세운 도시의 규모 분포 등 다양한 현상, 다양한 패턴에서 멱함수 의존성이 관측됩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이는 척도 불변성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척도가 불변하는 자기 닮음꼴(프랙털)을 만들어 내려면 멱함수 관계가 수학적으로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척도불변성을 동반하는 자기 닮음꼴은 어떤 대상의 부분을 확대해도 전체와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함수 f(x)에 대해, x를 상수 b배 만큼 변화시켰을 때 f(bx)=g(b)f(x)의 관계식을 가짐을 의미합니다. 이 관계식에서 볼 수 있다시피 x가 bx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인 f(bx)에는 여전히 원래의 함수가 주는 정보인 f(x)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지 비례 상수 g(b)만 추가로 생겨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식을 만족시키는 함수는 멱함수가 유일합니다. (아래부터는 이를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 증명을 제시한 것으로, 단순히 참고만 부탁드립니다.[1])

‘멱’, ‘척도 불변성’ 등과 같은 개념이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 사회 경제에서도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게 쓰이고 있는 멱함수 질서가 있습니다.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이 대표적입니다. 파레토 법칙은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을 딴 것으로, 80/20 법칙으로도 불리웁니다. 파레토는 경제학자로서 특수한 이력을 가졌는데 그는 20여년 동안 철도 분야의 엔지니어로 일한 후 경제학으로 관심을 전환한 경우입니다. 그는 학계 외부에서 스스로 경험적으로 관찰한 것을 이론화하는 것에 능했습니다.


 그는 경험적 관찰을 통해 80%의 완두콩은 20%의 콩깍지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탈리아 땅의 80%는 인구의 약 20%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이 분포는 소득, 부, 기업 크기 등 다른 여러 경제 척도에도 느슨하게 들어맞습니다. 아주 커다란 것에 극소수가 속하고 아주 작은 것에 엄청나게 많은 수가 속한 비대칭성이 파레토 법칙이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네트워크 과학자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에 따르면 파레토 법칙은 사회 경제적 네트워크 상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웹상의 링크 중 80%는 웹페이지 중 약 15%로 향합니다. 인용의 80%는 38%의 과학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할리우드에서 80%의 링크는 30%의 배우에게 연결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파레토 법칙보다 더 먼저 우리 인식을 지배하고 또 보편적이라 여겨진, 멱 법칙과는 조금 다른 법칙이 있습니다. 가우스 분포(Gaussian), 혹은 정규 분포 법칙(normal distribution)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자연이나 우리 주변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인 현상인데 가우스 분포의 특징은 멱 법칙 혹은 파레토가 시사하는 바와는 조금 다릅니다.


 네트워크에 비유해보면 가우스 분포를 따르는 네트워크는 대부분의 노드(네트워킹의 주체가 되는 개체)들이 거의 같은 수의 링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결정도가 극도로 높은 노드들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멱 법칙을 따르는 네트워크는 대부분의 노드가 단지 소수의 링크만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극도로 많은 링크를 갖는 소수의 허브들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우리가 이를 알면 ‘모든 세상은 가우스 분포를 따라’ 혹은 ‘모든 세상은 멱 법칙을 따라’와 같은 일반화 오류를 벗어나 좀 더 신중히 우리 주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차이는 무작위성 여부에 있습니다. 즉 어떤 사건들이나 실체들이 서로 독립적이고 상관없이 무작위로 분포해 있을 때는 가우스 분포가 생기기 쉽습니다. 따라서 멱함수 법칙은 주사위를 던져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스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건과 실체들의 ‘독립성, 상관성’이 조금이라도 깨질 경우에는 멱법칙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납적으로 현실에서 발생하는 많은 복잡한 네트워크는 가우스 분포 보다는 멱 법칙을 따릅니다. 예컨대 항공 노선 네트워크는 다수의 작은 공항들이 소수의 주요 허브들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이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디어, 유행이 확산되는 패턴 역시 가우스 분포 보다는 멱의 법칙을 따릅니다.


 평균이라는 개념이 워낙 강력하기에 우리는 때때로 대부분의 현상이 가우스 분포를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 주변 대부분의 현상이 ‘순수한 무작위성’을 띈다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가정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때론 오히려 현실이 더 ‘순수하게 무작위적이기’ 힘듭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주 큰 도시, 아주 큰 기업, 매우 부유한 사람, 유행가 등 실제보다 훨씬 더 적다고 예측될 것입니다. 가우스 통계를 따르려면서 무작위로 분포할 것이라고 예상될 희귀한 사건들이 파레토, 멱의 법칙에서는 훨씬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를 학자들은 거듭제곱 법칙이 ‘두꺼운 꼬리fat tail’을 지닌다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각 기업과 조직, 도시는 질서가 포함된 체계이기 때문에 상관관계가 있고 완전하게 무작위로 분포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어떤 책의 단어도 의미 있는 문장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상관관계가 있고 무작위로 분포하지 않습니다. 금융 시장 붕괴, 지진, 산불 같은 재앙의 출현 빈도 역시도 경험적으로 고전적인 가우스 분포를 따르는 무작위 사건들이라고 가정했을 때 예측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나는 두꺼운 꼬리 분포를 보입니다. 과학자들은 파레토 법칙 혹은 엄밀히 말해 그 배후에 있는 멱의 법칙이 자연현상과 현실에서 많은 이유가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변이 혹은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전형적인 ‘복잡계’ 신호라고 말합니다.

    


[i] 권석준, 패턴의 과학: 패턴의 자기닮음꼴과 프랙탈 차원, horizon 열린강의실 아티클에서 제시한 수학적 증명 참고 (https://horizon.kias.re.kr/12112/)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