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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Oct 29. 2022

2.2 죽을뻔한 도시를 통해 얻은 기업의 교훈

도시에서 배우는 기업의 생존 전랴략

Michael Jackson - Smooth Criminal



도시는 결과적으로 죽지 않지만 단기적으로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 단기적 실패의 단면에서 우리는 기업의 죽음,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과 맥락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도시의 단기적 실패를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맥락은 ‘기업이 왜 죽는가?’와 깊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산업혁명, 테일러리즘이 촉발하던 시기 근대국가의 공공행정 역시 경제, 경영과 마찬가지로 뿌리깊은 근대적인 질서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근대는 합리적 사고와 선형적인 과학적인 법칙이 모든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유일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믿었고 도시에 대한 관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관료제 체계의 꼭대기에 있는 집행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관습과 인간 본성 그 자체를 새롭게 개조해 인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시를 ‘계획’하고 ‘집행’했습니다. 근대국가에서 진행된 도시의 개발, 계획에 따른 정비는 매우 중앙 집권적이고 동시에 가독성과 단순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 제임스 C. 스콧(James C. Scott)은 이를 권위주의적 하이 모더니즘이라 명명합니다.[i] 그에 따르면 하이 모더니즘은 지식과 생산의 표준화된 조건하에서 단선적인 진보, 절대적인 진리, 이상적인 사회 질서를 위한 합리적 계획에 대한 광적인 신념을 의미합니다.


 이 하이모더니즘을 건축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건축가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입니다. 르코르뷔지에는 도시의 자연스러운 프랙탈을 혐오했습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경작지는 무한대로 세분화되어 서로 어울리지 않게 헝클어져 있다. 오늘날 기계는 점점 더 발전하는데 토지는 더욱더 작은 단위로 잘게 나뉘어 기계 문명의 놀라운 약속이 점점 더 쓸모없어진다. 그 결과는 낭비로서 개인들의 비효율적 경작이 있을 뿐이다.”[ii]


 그는 건축 나아가 도시건설에 있어 형식적이고 기하학적인 단순성, 직선, 기능적 효율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선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았습니다. 르코르뷔지에가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평소 주장한 바대로 완전한 백지에서 그가 상상한 완벽한 직선과 형식, 기능적 효율 지침에 따라 건설된 도시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입니다. 브라질리아는 르코르뷔지에가 정립한 하이모더니즘 건축 원칙에 따라 광할하고 깔끔한 직선과 정확한 구획으로 나뉘어진 건물과 도로로 이루어진, 조형적으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도시로 건설되었습니다. 브라질리아 프로젝트를 추진한 대통령 주셀리누 쿠비체크(Juscelino Kubitscheck)는 브라질리아를 브라질의 경제발전과 혁신을 상징하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완벽히 발전시키고 싶어했습니다. 브라질리아는 브라질의 새로운 미래 – 그러나 사실상 브라질 고유의 미래가 아닌 당대 테일러리즘, 합리주의, 하이모더니즘에 따른 기계적 접근 논리에 따른 – 였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브라질리아에서 도시빈민, 불평등은 해소되었어야했습니다. (이는 르코르뷔지에의 선한 이상이기도 했습니다.)



브라질리아


 결론적으로 브라질리아는 도시개발에 있어 오랫동안 실패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브라질리아는 상당히 오랜 기간 오히려 혁신과 창발의 원동력을 잃은 실패한 도시로 악명 높았습니다. 브라질의 다른 도시에서 브라질리아로 이사한 대부분의 사람은 ‘군중이 없는 도시’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길게 펼쳐진 상점 앞 보도라든지 붐비는 거리 모퉁이처럼 보행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들이 없는 브라질리아의 모습, 곧 북적거리는 거리생활, 상호작용이 없고 또 그것을 방해하는 도시의 존재에 당황합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브라질리아를 만든 사람들이 도시를 계획 했다기보다 실제로는 도시가 되는 걸 막도록 계획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브라질리아의 1세대 거주민이 만든 용어 중 브라질리테(Brasilite, ‘브라질리아 바로 그것’)라는 개념은 그들이 경험한 충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브라질 내 다른 도시의 옥외 생활에서 향유하는 담소, 오락, 장난, 작은 의식 같은 기쁨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들의 일상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브라질리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iii]


 하나의 개념으로써 ‘브라질리테’는 건축 환경, 도시계획이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브라질 내 다양하고 특색 있는 리우나 상파울루의 삶과 비교했을 때, 브라질리아에서의 평범하고 반복적이고 간소한 일과는 감성을 박탈당한 옥중 생활과 닮았습니다. 하이모더니즘 도시 계획이라는 처방은 도시의 가독성과 효율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본질이 사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고도의 사회적 연결의 혜택을 수확하는 프랙탈에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당연하게도 도시빈민, 불평등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 역시 브라질리아 건설 직후부터 무너졌습니다. 원래는 도시 건설 후 떠날 것으로 계산했던 브라질리아 건설현장의 인부 및 관계된 당대 브라질 사람 상당수가 브라질리아의 일부를 점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국가 관점에서는 브라질리아 토지 일부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그곳에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토지를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도시 서비스를 요구하고, 법적 권리를 보장받고자 했습니다. 일련의 사회정치적 화학작용 속에서 실존하는 브라질리아는 원래의 목적, 계급을 초월한 행정 도시,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먼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사회경제적 계급에 따라 뚜렷하게 공간이 분화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도시 주변부에 거주하면서 대다수 엘리트 계층이 살고 일하는 도심까지 먼 거리를 통행해야 했습니다. 많은 부유층 역시 그들 만의 분리된 공간, 사적인 클럽을 갖춘 자신만의 지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브라질리아 계획도시가 처음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고 결국 브라질리아에 유입된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중앙 집권적’이고 ‘선형적’인 계획의 치명적 오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한 켠으로는 도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이유, 실마리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연결 맥이 끊긴, 이를 방해하는 구획에서조차 그 공간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다양한 인적 에너지가 유입되는 도시라면 그곳에 유입되는 다양한 사람, 에너지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창발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도시 비평가는 죽을 뻔한 브라질리아는 순전히 그곳이 행정 수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본래의 무가치함을 전복하고 가치 있는 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브라질리아의 건설 후 50년 뒤인 지금, 인구 250만명이 넘는 브라질리아는 원래의 도시 계획 족쇄에서 풀려나면서 서서히 유기적으로 진화했고, 그러면서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만남의 장소’, 물리적 직선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적 프랙탈을 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리아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건축가인 한명인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는 1989년 세계적 건축상 프리츠커상을 받았습니다. 일련의 사실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브라질리아가 시대를 앞선 지적인 도시였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주장입니다. 브라질리아의 부활과 성장의 공은 온전히 도시에 유입되어 도시를 구성하고 불리한 환경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연결망을 활성화시킨 이름없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브라질리아처럼 근대주의, 테일러리즘 기반의 도시계획은 애초에 국가, 관료의 관점에서의 가독성과 효율성에 초첨을 맞추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자연, 공간의 유기적 상호작용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단기적 실패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유명 도시 저술가이지 이론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산업혁명 이후 유행했던 가독성과 효율성 중심의 선형적 도시계획 조류에 대해 강력히 대항했는데 그녀의 비평은 도시를 생각하는 방식과 도시계획에 접근하는 방식 양쪽에서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도시를 복잡계 관점에서 도시답게 진화시킬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의 생존력을 탐구하고자 하는 기업에게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녀가 그녀의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에서 밝힌 도시에 대한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iv]


첫째, 효율성 보다 다양성을


 제이콥스(Jane Jacobs)에 따르면 사회적 질서는 T-자나 계산자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학적 질서의 결과가 아닙니다. 사회적 질서는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공공의 평화는 자발적 통제와 기준에 대한 사람들 사이의 복잡하고 거의 무의식적인 연결망에 의해 유지되며 도한 사람들 스스로에 의해 수행된다.”


다양성, 용도 혼합, 그리고 복잡성은 제이콥스의 좌우명이었습니다. 도시 구성에 있어 주거지와 쇼핑 구역, 직장이 섞여 있을 때 상식적으로는 얼핏 이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지역은 더 재미있고 더 편리하고, 더 매력적이 됩니다. 이러한 특성은 거리로 통행인을 끌어들이고, 이는 다시 거리를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만듭니다. 제이콥스의 주장을 포괄하는 논지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군중과 다양성, 그리고 편의성의 창조에 달려 있습니다. 활력 있고 다양한 이웃을 통해 촉진된 보도 통행량의 증가는 결코 하찮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업과 자산 가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제이콥스는 도시는 기본적으로 그 기본 구획안에 다양성을 담음으로써 도시 본래의 순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상적인 건물은 건축 연도와 상태가 최대한 다양해서 서로 다른 임대 조건과 그에 따른 상이한 용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각각의 이러한 요건은 단일 용도 구역, 기다란 가로, 건축적 통일성 같은 전통적인 도시 계획가들의 작업 가설 가운데 하나 혹은 그 이상을 위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른 용도를 복잡하게 뒤섞는 것은 혼란스러운 유형이 아니다. 반대로 복합적이면서 고도로 발전된 질서의 유형입니다.”


 잠시 곁가지 얘기로 빠져나와 삼림 얘기를 해봅시다. 근대 행정가들이 저지른 ‘계획의 실수’에는 삼림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대주의, 테일러리즘과 궤를 같이하는 18-19세기의 유럽 행정가들은 ‘과학적 삼림관리’라는 명목으로 숲을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다양성의 최소화(필요한 삼림만 키운다는 관점)’, ‘지속가능한 산출(삼림 생산성의 극대화, 효율화)’라는 핵심 아젠다를 가지고 수학자를 동원해 삼림의 목재 재고, 성장, 산출을 면밀히 추정할 수 있는 삼림체계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삼림과학은 삼림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세심한 파종, 조림, 벌목을 통해 국가 삼림 감독관이 숫자를 세고, 다루고, 측정하고, 평가하는 데 더욱 손쉬운 삼림을 만들기 위한 중앙 집권적인 시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덤불이 밀려나고 종의 수가 감소했으며 조림은 넓은 지역에 곧게 줄을 세워 쉽게 셀 수 있도록 구성됐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단순화되어 상대적으로 미숙련되고 경험 없는 인력들이 새로운 삼림 환경에서 몇 가지 표준적 규칙에 따라 그 과업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단기적으로는 삼림을 단일 상품으로 급격히 단순화시키는 실험이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대체로 과학적 삼림관리 기법을 활용한 곳은 초기 새로운 삼림의 생산성은 한층 더 균일한 입목과 더욱 쓰기 편리한 목질 섬유를 공급하는 한편, 삼림 토지의 경제적 수익성을 높이고 순환시간-나무를 수확하고 다른 것을 조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실질적으로 단축했습니다. 이 방법은 빠르게 글로벌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무의 두번째 순환이 있고 나서 매우 명백해진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단일종의 순수한 나무 대부분이 첫 세대에는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2세대에 이르러 그 생산성은 본디 혼합림보다도 훨씬 더 낮은 생산성을 보였습니다. 전체적인 영양 사이클이 무너지고 결국 나무는 성장을 멈췄습니다. 순수 침엽수를 기준으로 동일종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양과 질 모두가 형편없이 떨어진 것입니다.

 

 결국 과학적 삼림 관리라는 이상적인 꿈은 그 기술의 ‘내재적’ 논리였을 뿐 그것은 실제로 제대로 구현된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연적 요인과 인위적 요인이 모두 개입했습니다. 환경과 관련해 지형, 화재, 폭풍, 가뭄, 기후 변화, 병충해 등 예측 불허의 상황은 매번 ‘정확한’ 삼림관리를 좌절시키고 실제 모습의 삼림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광대한 삼림을 경비하는 일도 난관이었습니다. 인근 주민은 으레 가축을 방목하고 무단으로 땔감을 채취하고 숯을 만들 뿐 아니라 삼림을 원래 삼림 계획자가 계획한 바가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삼림 감독관을 좌절하게 했습니다. 훗날 문제는 동일 수령, 동일 종의 삼림은 서식 개체의 다양성이 낮을 뿐 아니라 큰 폭풍우 앞에 한층 취약함이 밝혀졌습니다. 즉 생산성을 촉진시킬 것으로 믿었던 종과 수령의 균일성, 통제가 반대로 문제가 됐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다양한 수종을 갖춘 오래된 숲과 마찬가지로 상점이나 오락 시설, 공공 서비스, 주거 선택권, 공적 공간 등이 풍부하게 차별화된 근린 지역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만으로도 한층 탄력적이고 활력에 차 있게 마련입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 도시의 다양성은 경제 침체에도 덜 취약합니다. 동시에 다양성은 상승 국면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도시 내의 다양성이 높은 것이 도시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코로나사테 이후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두 도시 모두 다양성이 높은 축에 속하는 활성화된 도시로 절대 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굳이 상대비교를 해보자면 둘 중에선 뉴욕이 좀 더 높은 다양성을 가집니다. 대표적인 차별 요인을 들자면 도시에 담겨져 있는 산업입니다. 뉴욕은 대부분의 산업이 골고루 존재하는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확실히 IT집약적입니다. 코로나 이후 뉴욕의 부동산 시세는 약 15%정도만 떨어진 반면 샌스란시스코는 30% 이상 하락했습니다. 재택의 일상화 국면 앞에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뉴욕 안에 여전히 머물려 하는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떠나려 한 것입니다.         


[insight] 초개인, 다양성이 만들어 내는 힘


도시에 대한 일련의 통찰은 기업, 조직 내 노동과 개인에 대해 우리가 ‘표준화’를 버리고 ‘개개인성’,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과 노동, 성과 등에 대한 최신연구가 공통적으로 향하는 결론이 있습니다. 성공의 경로에 ‘균일하고’, ‘표준화된’ 단 하나의 길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체형과 감정, 재능은 어느 하나 같지 않고 들쭉날쭉합니다. 심리학자 리사 펠드만 바렛(Lisa Feldman Barret)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ow Emotions Are Mad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과학계에서 1세기가 지나도록 연구 노력을 이어왔으나 단 하나의 감정에 대해서조자 일관된 실질적 특징을 찾아내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사람의 얼굴에 전극을 부착해서 관찰하며 밝혀낸 결과는 보편성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다양성이다.” 


 개인의 재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인간의 지능이 일부 연구결과처럼 13개 차원의 지적 능력으로 구성되어 있고 차원별로 서로 연관성이 낮다고 가정해봅시다. 더 간단한 가정을 위해 각 차원별로 수준이 높음, 낮음, 평균의 3단계로만 나뉜다고 해봅시다. 이처럼 아주 단순한 조건 하에서도 지능의 잠재적 패턴은 수학적으로 무려 150만개 이상입니다. 지능의 구성차원 수를 두배로 늘려 26개로 가정하면 2조개를 넘어섭니다. 이렇듯 현실적으로 따졌을 때에서 지적 능력을 이루는 잠재적 차원 수는 무한대에 가깝고 각각의 차원도 서로 미묘하게 다른 별개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파란색을 구별하는 능력은 빨간 색을 구별하는 능력과 별개입니다. 음악의 멜로디를 기억하는 능력은 또 가사를 기억하는 능력과는 별개입니다.)

 

이는 기업의 현실에서도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바입니다. I. 기준편에서 제시한 케이스를 다시한번 봅시다. 과거 구글 google 직원으로서 인사, 조직 관련 분석업무를 담당했던 토드 칼라일(Todd Carlisle)은 어떤 차원의 재능이 구글에 중요할 것인지를 300가지 이상의 차원에서 분석했습니다. 그는 이 요소들 가운데 사실상 성공적 직원 발굴과 결부된 요소들을 분석하기 휘한 검증을 거듭했습니다. 결과는 위의 논증과 유사합니다. 업무 영역별로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요소가 달랐으며, 심지어 단 하나의 업무 영역에서도 특정변수가 단독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v] 결국 구글이 내린 결론은 구글에서 재능을 발휘할 만한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래서 구글이 채용을 잘하고 싶다면 그 모든 방식에 방심하지 않고 세심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넷플릭스(Netflix)는 어떻게 고객을 위한 영화 추천 알고리즘을 개선했을까요? 넷플릭스는 기존 알고리즘을 개선하기 위해 단순히 많은 돈과 시간을 쏟는 대신 자사의 기존 추천 역량을 10% 개선할 방안을 제시하는 팀에게 상금을 걸고, 표본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2006년 10월부터 최종 우승방안이 제출된 2009년 7월에 이르기까지 5000개가 넘는 팀이 4만 4000여개가 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제안된 방안 중 3분의 2는 넷플릭스 자체 알고리즘보다 성능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은 1/3에 있었습니다. 나아가 90여개의 알고리즘은 5%를 상회했고, 가장 최상위권의 알고리즘은 7%, 그리고 우승 알고리즘은 10% 이상개선된 수치를 보였습니다.

[vi]

[그림] 다양성의 힘

     오픈 이노베이션 채널 등을 통해 조직 안팎으로 다양성을 확대했을 때, ‘평균적’인 관점에서는 기존 전통적인 전문가에 비해 비 전통적인 참가자들의 성과는 저조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 전통적인 참가자 중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가 기존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차이: 다양성의 힘은 어떻게 더 나은 집단, 기업, 학교, 사회를 만들어 내는가_The Difference: How to Power of Diversity Creates Better Groups, Firms, Schools, and Societies』저자 스콧 페이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능력은 중요하지만 때때로 동일한 능력을 모아 놓으면 오히려 성과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vii]


조직 과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및 인구통계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다양한 집단(인종, 민족, 성별, 성적 지향의 다양성을 가진 집단)은 동종 집단보다 더 혁신적입니다.[viii] 심리학자 캐서린 필립스(Katherine W. Phillips) 의 연구에 따르면 특히 복잡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다양한 개인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그룹이 동종 그룹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단순히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양성 높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그룹 구성원들이 서로 간의 논의에 있어 좀 더 잘 준비하고, 대안적인 관점을 예상하며, 합의에 도달하는 데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기대하도록 만드는데 이러한 동역학이 조직의 창의성, 혁신성을 높입니다.’ [ix]



둘째, 권위적(시각적) 질서보다 경험적 질서를.


제이콥스의 핵심 논지는 얼핏 보기에 깔끔한 시각적 질서와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도시 사람들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시스템이 동일할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왜 원활하게 작동하는 건축 환경이나 사회적 장치가 질서와 규칙성에 대한 시각적 개념을 충족시킬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예컨대 그녀는 뚜렷하게 직사각형인 잔디밭을 자랑하는 미국 뉴욕 이스트 할렘(East Harlem) 지역의 새로운 주택 사업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잔디밭은 거주민들에게 대체적으로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곳은 강제 이주 대상으로 이방인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 처지에서 신문 한 장이나 커피 한 잔도 얻을 수 없고 50센트를 빌리는 것도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는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여 졌습니다. [x] 제이콥스가 보기에 도시 계획가들이 범하는 근본적 실수는 건물 형태의 복제와 병렬 곧 순전히 시각적인 질서에서 기능적인 질서를 추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이콥스는 반대로 대부분의 복잡한 시스템은 표면적 규칙성을 잘 드러내지 않으므로 더 심오한 수준에서 질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능적 질서의 복잡한 구조를 혼란이 아닌 질서로 보기 위해서는 이해가 필요하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 비행기 엔지의 내부, 토끼의 내장, 신문사의 사회부 데스크는 공히 이해하지 않을 경우 혼란스럽게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질서의 체계라는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달리 보인다.. 사물의 질서는 겉으로 드러난 질서의 순수한 미적 관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제공되는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xi]


 제이콥스에 따르면 도시에 대한 계획가들의 권위주의적인 관념은 실질적 차원에서 도시 지역의 사회, 경제적 기능과는 물론 그것과 연결된 주민들의 개별적 수요와도 결코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오류는 질서를 전적으로 심미적 관점으로 이해한 것인데, 이러한 오류는 각 기능사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추가적 오류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볼 때 부동산의 복합 용도는 일종의 시각적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었고 단일 용도(하나의 쇼핑지역, 하나의 거주 지역 등)의 분리가 훨씬 우월한 것으로 오판했습니다.


[Insight] 바보야, 문제는 시장이야! (시장, 고객 경험 주도로의 비즈니스 변화)


“도시에 고스란히 겹쳐 놓을 수 있는 논리 따위는 전혀 없다. 도시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며, 도시계획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에게 맞추어야 한다..”


“이렇게 일종의 더 고차원적인 현실이라고 보는 지도에 의지하여, 도시 계획자들과 도시 설계자들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곳에 줄을 찍 그은 뒤 조성하기만 하면 산책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책로라면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제인 제이콥스가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적이며 선형적인 도시계획을 비판하면서 한 말 중 일부입니다.


 그녀의 비판은 과거 기업의 행태와 동시에 현대 소위 ‘혁신 기업’이 강조하는 핵심적인 키워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제품 시장 맞춤(Product Market Fit) 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도시를 시장으로 치환해 다시 읽어보면 이 통찰은 현대 기업에 고스란히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로 탈바꿈됩니다.


 “시장에 고스란히 겹쳐 놓을 수 있는 논리 따위는 전혀 없다. 시장을 만드는 것은 고객들이며, 전략/계획의 초점은 (권위주의적) 제품이 아니라 바로 고객들에게 맞추어야 한다..”“이렇게 일종의 더 고차원적인 현실이라고 보는 전략에 의지하여, 경영진은 단순히 자신이 마음대로 해석해 원하는 것을 그린 뒤 만들기만 하면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이라면 물건을 기꺼이 살 의지가 있고 실제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셋째, 계획하지 않은 것을 위한 계획을


 한 도시의 역사적 다양성, 그 가치와 매력의 원천은 오랜 역사적 관행과 수많은 사람에 의한 비계획적 창조물입니다. 대부분의 도시는 눈에 띄는 전체적 의도와 무관하게 결실을 맺는 수많은 작은 행위의 결과이자 총합입니다. 중앙집권적 계획, 자본주의의 투기꾼에 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도시의 다양성은 공공 활동의 형식적 틀 바깥에서 계획하고 고안된 서로 다른 수많은 생각과 목적을 반영한 것으로서 무수히 이질적인 사람, 그리고 개인적 조직에 의해 만들어진다.”[xii]  


 물론 다양한 이질적인 의도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계획되지 않은 도시의 혼란, 추함, 무질서, 그리고 비효율성을 초래합니다. 하지만 제이콥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도시는 모든 사람에게 무언가 제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오직 도시가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오직 그렇게 만들어 질 때만 가능하기 때문”[xiii]입니다.


 제이콥스는 도시계획의 핵심은 ‘계획하지 않은 것을 위한 계획’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시 계획과 설계의 주된 역할은 – 공공 정책과 공공활동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도시를 다양한 영역의 비공식적 계획, 아이디어 그리고 기회가 번성하는 데 적합한 장소로 개발하는 것입니다.”[xiv]


  르코르뷔지에의 계획가들이 도시 경관의 전반적 형태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의 수학적 효율성을 중요시 한 데 반해, 제이콥스를 따르는 계획가들은 ‘생명력 있는 도시’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예상 밖의 작고, 비공식적이며 심지어 비생산적이기까지한 인간 활동을 염두에 둔 공간을 의도적으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제이콥스는 다른 어떤 도시 계획가보다 도시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생태계와 시장의 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이콥스가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번창하고 활기찬 근린 지역 역시 언젠가는 그들 자신의 성공에 의해 희생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지역이 살기에 한층 매력적인 곳이 됨에 따라 임대료가 오르고 지역의 초기 상업이 바뀌며, 새로운 종류의 사업이 그러한 변화를 촉발한 원조 개척자들을 종종 밀어낼 수 있다는 – 예를 들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xv]과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곧 성공적인 근린 지역은 계획가에 의해 고착되거나 보존되지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도시의 실패는 아니며 그저 유동성과 변화라는 도시의 본성일 뿐입니다. 도시를 디자인하고 안정시키려는 도시 계획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늘 통제를 벗어납니다. 도시는 언제나 거주민에 의해 재창조되고 변형됩니다.


 제이콥스의 도시에 대한 철학과 주장은 앞서 제프리 웨스트가 복잡계 이론 물리학의 시각에서 분석한 도시의 성장과 생존에 대한 데이터와 논거와 일맥상통합니다. 다시 말해 근대 도시계획가들이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한 접근 방식보다 실체적으로 ‘과학적인’ 주장으로 오늘날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도시는 도시인 이상 어떤식으로든 생존하지만 그것을 좀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계획하지 않은 것을 위한 계획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과 우연성을 자극하고 선택의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둘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시도를 잉태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유동과 접촉을 장려하는 계획을 창안해야 한다.. 오직 상상력 없는 사람이나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단지 오만한 사람이나 예측하고 대비하기를 원할 것이다.”[xvi]


[Insight] 계획하지 않은 것을 위한 계획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대부분 고객이 바라는 독창적인 제품, 서비스를 발명한 결과로 그 지위를 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발명’이라고 하는 것에 정밀한 계획과 전략이 차지하는 지분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소위 위대한 제품, 서비스라 불리는 우리 주변의 발명은 대부분 그 결과든 아니면 그 과정이든 계획하지 않은 바를 ‘알아채’ 반영한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코카콜라는 한 약제사가 두통약을 개발하던 중 시도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은 실험을 하던 배양접시를 치우지 않고 여름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세균학자가 우연히 발견한 푸른곰팡이와 포도상구균에서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개발된 것입니다. 전자레인지는 레이더 장비 개발 중에 알아차린 특징을 통해 그 계획이 완전 변경되어 시장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던 와중에 나타난 부작용이 약의 주효능이 된 사례입니다. 탈모 치료제 프로페시아 역시 전립선 비대증 치료약물-피나스테리드-의 부작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차려 재가공한 결과물입니다. 유투브는 사업초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온라인 데이팅 영상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페이스북은 하버드 내 인맥공유 서비스로 그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유투브, 페이스북이 오늘의 유투브, 페이스북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 이후로도 나름의 계획과 한편 예상치 못한 계획 바깥의 수많은 일들이 유기적으로 화학 작용한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과 우연성을 자극하고 선택의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둘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시도를 잉태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유동과 접촉을 장려하는 계획을 창안해야 한다” 도시에 대한 제이콥스의 주장은 비단 도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네 기업, 조직에도 여실히 적용되는 교훈일 것입니다.          






Reference

[i] James C. Scott, Seeing Like a Stake, Yale University, 1998 [전상인 옮김, 『국가처럼 보기』, 에코 리브르, 2010]

[ii] Le Corbusier, The Radiant City, p134

[iii] James Holston, The Modernist City: An Anthropological Critique of Brasili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9), p24 [James C. Scott, Seeing Like a Stake, Yale University, 1998에서 다룬 내용 재인용]

[iv]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New York: Random House, 1961)[

유강은 옮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v] Saul Hansell, “Google Answer to Filling Jobs Is an Algorithm,” New York Times, January 3, 2007

[vi] Alan MacCormack, Fiona Murray, Erika Wagner, ‘Spurring Inoovation Through Competitions’, MIT Sloan, 2013

[vii] Scott E. Page, The Difference: How the power of Diversity Creates Better Groups, Firms, Schools, and Societies (Prins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viii] Katherine W. Phillips, “How Diversity Makes Us Smarter,” Scientific American, Oct1, 2014.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how-diversity-makes-us-smarter/

[ix] Katherine W. Phillips, “How Diversity Makes Us Smarter,” Scientific American, Oct1, 2014.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how-diversity-makes-us-smarter/

[x]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New York: Random House, 1961)[

유강은 옮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P15

[xi] Ibid, P.376

[xii] Ibid., P241

[xiii] Ibid., P238

[xiv] Ibid., P241

[xv]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xvi]Ibid., P195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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