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gile Management | I. 경영으로서의 애자일
[BGM] James Arthur - Falling like the Stars (Lyric Video)
애자일은 전통 경영이 갖는 조직 문화, 일하는 방식과는 꽤나 다른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맥락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는 현 사회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돌이킬 수 없는 기술, 사회, 문화적 전환Transformation 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적응’의 산물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거대한 전환의 흐름과 요구는 곧 기업이 ‘애자일’에 열광하는 이유가 됩니다.
최근 급변하는 경영 환경 덕분에 뷰카(V.U.C.A)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됩니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머리글자를 조합해 탄생한 용어로, 원래는 전장 상황을 설명하는 군사용어로 쓰였다가 정치, 경제, 사회 및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환경 변화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VUCA 시대는 쉽게 말해 ‘기존 논리 체계로는 더 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늘어나는 세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현 시대를 규정하는 또다른 용어가 있습니다. 뉴 노멀 New Normal 입니다. 뉴 노멀은 불확실성 외에 또 하나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합니다. 바로 ‘저 성장’ 입니다. 이는 미국의 벤처 투자가 로저 맥나미(R.McNamee)가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률, 고위험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특성을 제시한 이후, 2000년 대 후반 글로벌 경제침체기를 지나며 현시대의 글로벌 경제환경을 대변하는 상징적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불확실성 시대, 저성장이 표준이 되는 이중고에서 기업이 생존을 위해 꺼내든 대표적 혁신 전략이 있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기업들이 최신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성장 방식에 한계를 느낀 글로벌 기업들은 전통 산업에 ICT를 활용해 차세대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목표를 재수정하고 있습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디지털 아메리카Digital America』라는 보고서를 통해 “산업별로 속도의 차이가 있지만 디지털 혁신은 한때의 유행Fad이 아닌 앞으로 모든 산업에서 끊임없이 일어날 현상[1]”이라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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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기업들이 하드웨어에 안주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소프트웨어 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기업들이 앞장서서 기존 사업들을 혁신해 나갈 것이 자명한 상황이 되었습다. 물리학, 기계공학 등 하드웨어 역량을 중심으로 사업을 발전시켜 왔던 20세기 유수의 기업들조차 더 이상 과거의 익숙한 사업 방식대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환경에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기계장치·장비로 구현되던 기능들이, 전자장치·장비와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는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두고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 투자가인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고 표현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과 비즈니스의 이종 교배가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우리를 둘러싼 비즈니스 환경의 불확실성을 또다시 키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전략이 다시 불확실성을 강화하는 격입니다. ICT의 발달, 융합은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나 범위를 급격히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인공지능(AI), 클라우드(Cloud), 사물인터넷(IoT), 로봇(Robot) 등의 기술은 기업이 지금까지는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아도 됐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차와 같은 자동차 회사는 과거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 등과 경쟁했지만 이제는 구글, 애플과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전통 제조기업인 제너럴일레트릭GE은 산업인터넷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프레딕스(Predix)*를 마이크로 소프트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 에서 구동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었으며, 중국의 화웨이(HUAWEI)와 전략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고 프레딕스 기반의 ‘산업인터넷’ 전략을 공동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프레딕스 Predix
2015년 9월, 터빈, 엔진 등 산업용 중대형 장비와 부품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축적되는 데이터를 분석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E에 출시한 제품입니다.
모호해진 산업간 경계속에서 디지털금융의 新비즈모델 혁신, 자동차 산업의 서비스 분야로의 변신, 전자・제조업 영역의 무한 확장, 기존 방식을 혁신한 유통업의 출현은 전통사업자가 영위해 온 버티컬(Vertical)산업을 뛰어넘는 혁신기업의 등장으로 가속화되고 있습다. 이들은 각 산업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적용시켜 혁신적인 고객가치를 제공하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적용하여 새로운 시장과 고객니즈를 창출하며 기존 사업자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Amazon)은 50년 전통의 월마트 (Walmart)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의 소매업체로 우뚝 섰으며,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 (Airbnb)는 2015년 기준 기업가치 240억달러로 유명 호텔체인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 International)의 기업가치(21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 정의와 전망은 다양한 기술과 개인, 기업, 정부, 경제, 사회, 문화 등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기 때문에 때때로 다소 모호하다고 평가받는 것과는 달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모든 기업이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명확한 전략이자 개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기업들은 기술과 비즈니스의 융합 전략으로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필연적(inevitable)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녹록치 않은 실험입니다.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이는 그 속성상 "매우 급진적(Radical)이고 강도높은(intense) 조직의 총체적인(holistic) 신속하고도 빠른(urgent, fast)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2]" 입니다. ‘애자일 Agile’이 주목 받는 핵심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애자일은 기술과 비즈니스의 융합 전략으로서 필연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뒷받침하고 이끄는 ‘문화’, ‘조직’, ‘관리’, ‘개발’과 관련한 경영 철학이자 방법론을 포괄하는, 쉽게 말해 ‘새 술을 담는 새 부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다시 시장의 메커니즘을 변화시켰습니다. 기술적인 진보와 함께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고객 또는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이 실시간, 개인화 되어 참여를 이끌어 내는 고객경험이 제대로 제공되면서 기존의 구매채널 및 구매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고객들은 제품의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을 넘나들며 적극적으로 탐색, 비교를 하고 저가격, 고품질의 가성비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을 바꾸었습니다.
다시 말해 ‘고객’의 힘을 크게 증가시켰습니다. 라이엇 게임스(Riot Games)의 아흐메드 시드키(Ahmed Sidky) 개발조직 대표(부사장)는 이에 대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기업과 고객의 역학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평했습니다.[3] 과거처럼 기업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팔아서는 고객들에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이 우리 기업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고민하고 고객이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만 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에 적극적인 기업들은 고객의 소비패턴에 맞추어 옴니채널(Omni-Channel)*을 구축하고 개인이 원할 때 즉각적으로 개인의 위치, 성향 등을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디맨드 (On Demand) 방식을 도입하는 등 소비자의 생각과 마음을 발빠르게 읽기 위한 총체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옴니채널 Omni-Channel: 라틴어의 모든 것을 뜻하는 ‘옴니(Omni)’ 와 제품의 유통경로를 의미하는 ‘채널(Channel)’이 합성된 단어다. 소비자가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를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 각 유통 채널의 특성을 결합해 어떤 채널에서든 같은 매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한 쇼핑 환경을 말한다 (출처: 한국경제 용어사전)
고객, 사용자의 접점에서 그들의 니즈(Needs)를 발빠르게 캐치해 제품을 개발하고 비즈니스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기본 철학으로 삼고 이를 이행하는 방법론을 구체화시켜 온 ‘애자일’은 디지털 전환이 가져다준 소비자 주도의 비즈니스 전환과도 결을 같이합니다. 애자일은 현장 중심적인 조직운영철학을 바탕으로 시장 접점의 각 플레이어, 조직에게 과감한 정보공유와 의사결정 권한을 상당한 수준으로 위임함으로써 시장 변화에 기업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현실을 잠시 돌아봅시다. 많은 회사가 하나같이 ‘고객 중심’을 외치며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지배적으로 이끌고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현장과 괴리가 있는 경영진, 고위 리더층입니다. 경영진이 최종적으로 ‘오케이’를 해야 그 프로젝트는 완료가 되고 그 프로젝트에서 나온 결과물은 비로소 살아남습니다. 만약 아무리 열심히 기민하게 결과물을 내놓아도 흔히 말하는 ‘높은 분’들의 의중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결과물은 ‘킬’ 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 지금도 많은 조직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10~20대를 타깃으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최종 평가를 50대 이상의 임원들이 둘러앉아서 하는 모습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애자일은 우리가 시도해야 할 ‘목표’이자, 그간의 일하는 방식과 너무도 다른 ‘이종異種’이기에. 비롯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디지털화(Digitalization)는 이에 익숙한 사람들로 하여금 일에 대한 관념과 문화 역시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술의 흐름이 가져온 대표적 변화 중 하나는 ‘평평화’(Flat) 경향입니다.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로 인해 정보와 자본의 교류, 세계화의 주체는 이제 국가, 기업을 넘어선 ‘개인’이 될 공산이 매우 큽니다.[4] 평평화는 호모스마트쿠스(지식의 상향 평준화)를 탄생시켰습니다. 구성원의 사회문화적 ‘개인화’ 성향도 강해졌습니다. 이제 조직의 젊은 구성원들은 ‘용기’와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평평화’(flat)로 인해 회사의 정보 통제도 쉽지 않아졌습니다. 과거 대한항공 오너 일가에 대한 임직원들의 폭로전이 대표적 예라 할수 있습니다. 구성원은 마음만 먹으면 ‘정보’가 ‘사실’인지, ‘명령’이 합리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수단’과 ‘역량’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 ‘인위적인 권위’는 ‘독’일 수 있습니다.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서도 '침묵'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우리나라 특유의 기업문화. 그 아성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조직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사회의 세대(Generation) 간의 갈등, 조직의 임직원(Staff) 과 전통 리더십(Leadership) 그룹 간의 갈등선과 유사합니다. 균열은 매우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평평화에 자연스러운, 그래서 일에 대한 새로운 관념과 문화를 갈구하는 직원계층, 세대를 콕 찝어 한마디로 정의 내리는 것은 다소 인위적일 수 있지만 전통 경영에 익숙한 집단과 뚜렷하게 비교되면서도 익숙한 개념을 차용한다면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부터 1996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합니다. (대략적으로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세대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밀레니얼 모먼트(Millennial Moment)'입니다.[5] 밀레니얼 모먼트는 금융위기 이후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세대로서 밀레니얼 세대가 도래한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경제 영역에서 뉴 노멀(New Normal)이 도래한 시기와 겹칩니다. UN 인구국의 분석에 따르면 밀레니엄 세대는 이미 현재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 하고 있습니다. 노동인구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2020년에 세계 노동인구의 약 3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심층기사 『'밀레니얼 모먼트millennial moment』시리즈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해는 이제 더 이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강력한 ‘고객’ 층으로서. 더불어 조직 생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허리층으로서. 밀레니얼 세대의 생각과 문화를 읽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통계는 현재 기업, 사회와 밀레니얼 세대의 간극은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014년 실시된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19%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베이비붐 세대의 40%, 1965~1980년에 태어난 X 세대의 31%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입니다. 이들은 기관에 대한 신뢰 역시 낮습니다. 와튼 경영대학원 교수 키스 니이더마이에(Keith Niedermeier)는 “밀레니얼 세대는 정부 및 대기업에 대해 놀라울 만큼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7]"며 기존 질서와 밀레니얼 세대 간의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과거 테일러식 합리주의 모델에 기반한 ‘당근과 채찍’식의 경영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 체제 아래에서 인간은 인간성이 배제된, 하나의 거대한 기계 속 부품에 다름 아닙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동료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이기면 얻고 지면 잃습니다. 1980~2000년에 태어난 것이 왜 불행인지 이야기하는 책 『Kids These Days』의 저자 말콤 해리스(Malcolm Harris)는 베이비붐 세대가 창조한 ‘경쟁’ 중심적인 시스템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고 냉소 합니다. [8]
밀레니얼 세대는 한때 미국의 ‘정신’으로까지 추앙받던, 테일러가 창조한 합리주의 세계와의 이별을 바라고 있습니다. FT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그에 따른 평평화를 통해, 고립/경쟁보다는 연결/협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경영질서와 대립하는 가장 큰 지점은 ‘개개인성(Individuality)'* 입니다. 디지털 소셜 미디어의 보편화로 이미 직업을 갖기 전부터 자신을 표현하고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이것이 다시 타인의 인식과 상호작용함을 겪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간의 개개인성을 묵살하는 전통 경영 문화, 질서는 독(毒)과도 같습니다. 그들에게 물론 직업의 안정성도 매우 중요할테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성 Individuality : 사람마다 고유한 개성, 독자성을 가지고 있어 남들과 구별된다고 여기는 생각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현재 근무하는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잡코리아 2018년 10월 조사), 10명 중 9명이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조사(2019년 1월 사람인 조사)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오늘도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기업마다 평균 30%에 육박하고 ‘퇴사학교’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류의 콘텐츠가 유행을 하는 이면에는, 적어도 현 기업 시스템이 이들이 몰입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이 내재되어 있는게 아닐까요.
애자일이 갖는 속성은 전통 합리주의 경영의 대척점에 서서 철저히 사람 중심적인 철학을 갖습니다. 절차와 도구보다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경쟁보다 협력을, 획일적이고 무비판적인 복종보다 개개인성을 중시한 주체적 행동을, 경직된 계획보다 유연한 적응을, 채찍을 통한 동기부여 보다 목적과 의미를 통한 내적 동기부여를 강조합니다. 애자일은 이런 속성과 철학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 되고 창발적으로 확산되어 왔습니다. 애자일은 시대의 중축이 되는 새로운 세대가 갈구하는 일, 사람, 문화에 대한 관점을 포용하면서도 손에 잡힐 정도로 구체화된 방법론으로 자생, 발전해 온 시스템입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해법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던 일반 기업에 의미 있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 것입니다.
불확실성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으면서도 저성장을 기조로 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단순한 ‘개선’이 아닌 ‘파괴적 혁신’을 꾀해야만 하고 그 중심에 기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업 환경은 한번 더 변화 무쌍해 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장 지형 역시 ‘소비자, 고객’ 중심으로 근본적인 전환(Consumer-led Transformation)을 맞이 합니다. 고객 접점, 현장 중심적인 전략, 운영은 이제 기업의 불가피한 필수 전제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전환을 누구보다도 앞서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 전통 세대의 산물인 저성장의 뉴노멀(New Normal) 시대를 견뎌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는 기존의 경영 질서, 문화와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습니다.
기업이 ‘애자일’에 대해 열광한다면, 그것은 결국 애자일이 일련의 전 방위적 비즈니스 전환(Transformation)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개인, 집단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매우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구체화, 검증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동력삼아 애초 위키피디아와 같이 ‘창발적’으로 확산되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으로서의 ‘애자일’은 그 경계를 넘어 산업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 ‘경영’으로서의 ‘애자일’로 그 외연을 확장하는 모양새입니다.
단상(斷想)
It may be hard for an egg to turn into a bird: it would be a jolly sight harder for it to learn to fly while remaining an egg. We are like eggs at present. And you cannot go on indefinitely being just an ordinary, decent egg. We must be hatched or go bad. - C. S. Lewis -
달걀이 새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달걀이 (썩지 않는) 달걀로써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좀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마치 달걀과도 같습니다. 당신이 단지 평범하고 상하지 않는 계란으로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부화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 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 C. S. 루이스 -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한(하지만 본업은 소설 작가가 아닌 옥스포드 대학의 철학, 문학 교수였던) C.S 루이스는 우리의 삶을 달걀에 비유했습니다. 좀 더 얄궂은 것이 있다면 우리 삶은 한번 부화(변화, 성장)했다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지금 at present', '달걀과도 같은 like eggs 것' 입니다. 이는 '애자일'의 시선, 철학, 속성을 매우 상징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은유(메타포, Metaphor)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명언의 속성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이는 '매우 지당한' 말이기에 오랫동안 남겨진다기 보다는 동시에 '매우 어려운' 것이기에 소멸되지 않고, 우리가 우리 본성을 때로는 거슬러 추구해야 할 하나의 '도전'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애자일'을 화두로, 새로운 사람 중심의 경영을 살피면 살필수록 여실히 깨닫는 점이 있습니다. 애자일 경영은 그간 우리가 간과했던 인간의 심리,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가 가진 연약한 본성을 '의식적으로 거스르기'를 강하게 요구하는 신념 체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애자일이 요구하는 '끊임없는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착되려하는(연령효과, 코호트효과 등)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추후 더 자세히 밝히겠지만, 애자일이 추구하는 성장은 단지 '기술적', '재무적' 성장 뿐만 아니라 '인간적/정신적' 성장, 의식의 성숙에 대한 요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레데릭 라루는 [조직의 재창조 (Reinventing Organizations)]에서 조직의 발달단계를 색(Color)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애자일(속성)이 이상적으로 구현된 조직에 가까운 자기조직화(Self-Organized), 자율경영 조직 형태를 '청록색 조직'이라 일컫습니다. '청록색 조직'이라 일컬을 수 있는 기업의 공통점은 경영 / 운영진부터 일반 직원까지 '온전하고 높은, 성숙한 의식수준'을 요구, 이행하고 있으며 이를 조직 운영 메커니즘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청록색 조직에 대해선 전체 글의 말미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경영자, 실무자들은 경영 방법론을 대할 때 블랙박스에 무언가를 넣으면 알아서 그럴듯한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건데 '애자일'에 대한 접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자일'이 년초 열풍을 일으킬듯하다가 서로 곁눈질하며 잠잠한 것 역시 우리의 이런 관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식적인 공식처럼 조직 구조, 인사 시스템 몇개를 바꾸고 어떤 플랫폼을 도입하고 또 그럴듯한 교육, 트레이닝을 받으면 '애자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데, 아직 뚜렷히 그리했다는 국내 기업을 선뜻 못만났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런 관성은 결코 성공적인 전환(Transformation)을 가져 올 수 없습니다. 애자일 경영은 새로운 포뮬러(Formula, 공식)가 아닙니다. 정치 체계(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시민의식'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리더 / 조직구성원' 의식이 애자일 전환(Agile Transformation)의 질적 성공을 좌우한다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프레데릭 라루는 '청록색 조직'을 견인하는 '청록색 단계의 인간'은 늘 '전인성 wholeness'*을 갖추기 위해 '투쟁'한다 말합니다.[9] C.S 루이스가 말했던 달걀의 메타포, '부화'를 위한 (고통스러운) 변화에 대한 맥락과 맞닿아 있지요. 우리는 이런 뉘앙스, 맥락이 곧 '애자일 경영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이행해가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매우 중요한 실마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또 어쩌면 당신과 당신의 조직이 애자일해질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하겠지요)
*전인성: 마음과 몸, 형혼의 통합을 이루며, 내면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를 키우고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진정성)를 감추지 않는 스스로에게 진실한 태도.
"당신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도전은 길에서 만나는 갈림길과 같다. 당신은 가야 할 길들 - 되돌아 갈 것인지, 전진할 것인지, 그만 둘 것인지, 돌파할 것인지 - 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Ifeanyi Enoch Onuoha, author
당신은 당신 자신, 그리고 당신 조직의 진화/부화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References
[1] Digital America: A Tale of The Haves and Have-Mores, Mckinsey & Company, 2015
[2] Peter Dahlström, Liz Ericson, Somesh Khanna, and Jürgen Meffert, From disrupted to disruptor: Reinventing your business by transforming the core, Mckinsey, 2017
[3] Ahmed Sidky, Mindset & Culture: At the Heart of a Winning Agile Transformation 애자일코리아컨퍼런스 2018 기조연설, https://youtu.be/kHgq_HNzhgo
[4] Thomas Lauren Friedman, 세계는 평평하다 The World is Flat, 21세기북스, 이건식 옮김
[5] FT Series: Millenial moment: the business of a generation, Financial Times, 2018, Publy(
https://publy.co)의 공식 국문 번역(번역: 심재인)본을 이중 참고했습니다.
[6] UN 인구국 UN Population Division, 그래픽: 케일 틸포드Cale Tillford, CFT
[7], [8] John Gapper, How millennials became the world's most powerful consumers, Financial Times, 2018 재인용, (Publy(https://publy.co)의 공식 국문 번역(번역: 심재인)본을 이중 참고했습니다.)
[9] Frederic Laloux, 박래효 옮김, 조직의 재창조 Reinventing Organizations, 생각사랑, 2016, 107p